- ▶ 역촌 장애인교회 원장, 축복교회, 소망의 집 ‘사칭’... 은행계좌 ‘○경자’로 후원받아
“어려운 사람들과 같이 삽니다.”
“껌을 사 주시면 좋은 일에 쓰겠습니다.”
(서울시내 술집, 식당뿐만 아니라 전국을 다니며 앵벌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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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은평구 역촌동 소재, 5층 ‘축복교회’(간판없이 가정집) |
#1
‘새주님’ 믿고... 종교적 위력에 의한 19년의 삶! 착취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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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주님’으로 믿었던 박순애... 교주 박순애, 호텔에서 생일잔치 |
1999년, 언니가 운영하는 가게 일을 돕던 중 시각장애인 성모씨와 도우미 정모씨가 방문했다. ‘장애인교회’라며 도와달라고 후원 요청을 해 와 그때부터 4년간 후원했다. 그랬더니 2003년에 그곳 공동체에서 함께 살자고 권유했다. 그때 나이 27세!
하나님이 제일 많이 사랑하는 자이고, 기도를 많이 하는 원장님을 소개해 준다며, 교주 박순애를 만나게 되었다(차 안에서 만났는데 별 말이 없었다). 그들이 모금하는 지역, 여관에 갔더니 그 단체 사람들이 있었다. 거기에서 교주 박순애가 이불을 덮고 누우니, 장애인 1명 포함하여 함께 있던 사람들이 3번 경배(엎드려 절함)를 드렸다.
‘입신’에 들어갔다고 했다.
“사람의 말로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여호와 하나님이다. 나는 인간이 아니다. 여기 있는 박순애 원장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자이다. 여성의 몸을 입고 온 ‘새주님’이다.” 그러더니 “운행”을 하였다.(정○망이 기억하는 당시 상황)
정○망 씨는 그 상황을 보고 믿었다! “원장님이 하나님인 줄 느꼈다. 입신예배 후 전도사님이 이분이 하나님이 지상에 오신 여성 주님이라고 소개했다.”고 한다. 그리고 각 지역에서 1등으로 뽑힌 자들이 모인 곳이라며, 본인도 제자로 부름받은 것이라고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박순애가 정○망에게 던진 첫 질문은, “시집 갈 돈 모아둔 게 있냐?”였다.
없다고 했다. 그렇게 헤어졌는데,
“당시 나도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선택된 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위가 안 좋다고 했더니 안수기도를 해주고 시각장애인이 마사지를 해주고 나서, 위가 일시적으로 좋아진 것 같았다. 그리고 3개월 후(2003년 10월 말), 일을 하다가 손가락을 다치고 두통에 다리가 쑤시고 어깨가 아파, 당시 하던 일을 그만 두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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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내 식당, 술집뿐만 아니라 전국을 다니며 앵벌이 |
#2
착취1) 앵벌이 생활... 지정 금액 채워야 했다.
2003년 11월 9일, 경북 포항으로 올 때, 운동화에 청바지 하나만 입고 오라고 해서 갔는데, 그때부터 ‘앵벌이’를 하게 되었다. 그들 표현으로는 봉사활동이라 했다. 정○망 씨는,
“하루에 30만원, 50만원 씩 지정액을 입금하지 못하면 핍박하고, 못 생겼다고 혼내고 억압하고, 밥도 사먹지 말고, 얻어먹으라고 했다. 하나님의 훈련이라며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법을 통과하지 못한다고 했다.”
“하나님의 훈련이라며 밤 11시, 12시, 새벽 1시에 지방 휴게소들 돌고 오라고 했다.”
“전국을 돌면서 앵벌이를 하던 중 우연히 지인이 보고 가족들에게 알린 적도 있다.”
“지방에서 앵벌이 할 때는 추석과 설 그리고 새주님 생일날 서울에 올라왔다.”
“2015년까지 전국을 도는 앵벌이를 했다. 그리고 2017년까지는 낮에는 새주님 심부름을 하고 저녁에는 서울 근교에서 앵벌이를 했다. 밤 8시에 나가서 새벽 6시까지 했다.”고 한다.
착취2) 교주와 가족들이 신도 명의 카드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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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주가 사용한 정○망의 카드들 |
‘새주님’이라 믿었던 박순애가 2015년, 정○망의 카드를 사적인 일에 쓰자고 했다.(필자 주; 神적 존재로 믿었던 이의 종교적 위력에 의한 요구였기에 거부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그때부터 ‘새주님’ 박순애와 그녀의 딸도 정○망의 여러 개 카드를 사용했다고 한다.
카드 사용 내역은 하나님 옷, 갤럭시 정장, 골프웨어, 수입브랜드 옷, 기성복 등 백화점 쇼핑하는데 사용하는가 하면 성형외과에도 모시고 다녔고, 수천만 원 상당의 대출도 받았다.
뿐만 아니라 가족들에까지 거짓말로 도와 달라 하여 9천5백만을 받아 내기도 하였다.
착취3) 교주와 가족들의 종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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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순애가 정○망에게 시킨 ‘하나님 옷’ 리폼 작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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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된 일로 퉁퉁 부은 다리와 손 |
낮에는 새주님 박순애 심부름, 청소 등 3곳의 집을 관리하였고 빨래하고, 목욕시켜 드리고, 백화점 모시고 다니고, 밤에는 시중을 들었다고 한다. 거의 매일 밤 안마를 해주어야 했고, 하나님 옷이라며 ‘새주님’ 옷 리폼 작업을 하였다. 잠을 자거나 졸면 혼났다고 한다.
2020년 10월부터는 교주의 딸이 서울 남가좌동에서 ‘SJ캐시미어’ 옷 가게를 오픈했는데, 거기에서도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일을 했다. 저녁 8시까지 일하다 야시장에 가 옷을 사서 돌아오면 새벽 1~2시, 그 이후 시간에는 ‘새주님’한테 가서 하나님 옷과 옷 리폼을 한 것이다.
그렇게 일한 사람에게 아침에는 또 고등학생 손자를 통학(택시 태워 보냄)시키는 일을 시켰다. ‘작은 하나님’이라 믿은 손자에게는 존칭 사용하며 케어까지 한 것이다.
정○망 씨는 “식비를 주지 않아 음식을 먹을 수가 없어서 생라면과 생오뎅을 먹어가면서 끼니를 때웠다.”고 했다.
*교주의 딸 지명언니와 정○망이 나눈 카톡 내용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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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주의 딸이 운영, 남가좌동의 ‘SJ캐시미어’ 옷가게 |
(2020.04.01. 정○망이 교주의 딸에게)
“언니! 힘드신데 죄송해요. 운찬씨(교주의 손자, 고등학생)가 어지럽고 힘이 없으니까 고기 먹고 숙제도 잘 하고 내일 학원도 잘 간데요. 이해해 주세요. 항상 죄송합니다.”
(2020.11.07. 옷 가게 운영하는 교주의 딸이 정○망에게)
“며칠 일하고 50이나 줬잖아.”(이런 식으로 두 번 받았다고 한다.)
(2021.05.20. 옷 가게 운영하는 교주의 딸이 정○망에게)
“CCTV 봤어. 나도 CCTV 안 보고 싶은데, 네가 자꾸 거짓말해서 CCTV 보고 확인하고, 내가 말한 거지, 증거없이 말한 거 아니라고, CCTV 보고 문 닫혀 있다고 얘기해도 그런 적 없다고 거짓말하고... 일 좀 한다고 뵈는 게 없냐... 내가 말할 때마다 CCTV로 확인하고 말하는 거라고...”
ㅡ 노동력 착취하면서, CCTV로 감시까지 한 것이다.
#3
결국... 19년 만에 탈퇴
탈퇴하게 된 동기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다.
“2022년 중순경, 옷 가게 매출을 90만원 정도로 팔 때, 밥도 못 먹고, 화장실도 못 가고 끝나서 야시장에 가는데 온 몸과 특히 다리가 많이 아파 걸음을 잘 못 걸어서 갈 때 쉬고, 올 때 쉬고 했는데, 중·고등학교는 졸업했냐? 그러면서 주인 언니의 언어폭력과 무시, 억압, 술주정, 손자 ○운찬 씨의 폭행, 새주님의 금전적 요구가 심하고,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장례식에 가지 말라고 했다.”면서 “자꾸 시골 부모님의 전답을 팔아서 헌금을 요구하였고, 그것이 심해져서 많이 괴롭고 힘들었다.”
그러면서 이제까지 카드 사용한 것도 빚이 많은데, 그 돈을 감당하기에 너무 많이 힘든 상황임에도 계속 돈을 요구하니 견딜 수가 없었다고 한다.
정○망 씨의 하소연:
밥은 얻어먹으라고 했다.
나의 대출금은 ‘○’원이었다.
옷은 얻어 입고, 거지가 따로 없었다.
구타를 당하며 온갖 구박을 받으면서도 하나님이 진짜 계시는 줄로만 알았다.
이보다 더 한 삶이었는데 말로 풀기에는 부족하다.
현재까지 19년이라는 세월을 이렇게 살아오면서 금전적인 것으로 인해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받다가 결국은 뛰쳐나오고 나니 세상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그때는 이미 늦었더라.
지금 고민은, 거기서 생활하면서 그분들이 사용한 카드 값과 대출금이 급선무다.
우리 가족들에게서 가져 간 돈도 있다.
나를 생각해 가족들이 내가 아프다고 하니 보내준 것이다. 생활할 때는 몰랐는데 나의 통장을 대포 통장으로 만들어서 앵벌이 한 것을 입금하면 바로 그들이 그 날 카드로 찾아가는 것으로 마감을 했더라.
카드도 내 카드로 사용하고 자기들 이름으로는 안 썼다.
지금 카드 내역과 통장 내역을 보니 전부 내가 뒤집어쓰게 되어 있고, 내가 그 집을 나와서 일주일 넘으니, 시골집으로 짐을 보내왔더라.
지금도 그 집에서 나처럼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이용당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진짜 하늘로 환생할 거라는 것만 믿고 가고 있다.
전국에서 후원금이 들어오고 있다.
그리고 옷 가게에서는 매출이 한 달에 900~1000만원이 넘는데 간이과세자로 되어 있다.
“이런 생활을 하면서 많은 학대에도 불구하고 여성 하나님이 지상에 와 있는 줄 정말로 믿었고, 가족 구원도 해준다 해서 가족을 위하는 길인 줄 알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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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하나님’으로 믿었던 교주의 손자 |
‘새주님’인 줄 알고 믿었던 19년 세월, 앵벌이에 종살이 생활 중 제대로 입지도, 자지도, 먹지도 못하며 지낸 것은 물론 각종 폭언과 하대(下待)를 당했다. 교주는 신도 카드로 고가 옷 매입 등 쇼핑하고, 사적으로 이용하였고, 본인 생일잔치를 호텔에서 했다. 교주의 딸과 손자까지 종 부리 듯 부렸다. 장애인 돕는다고 들어오는 후원금과 매일같이 앵벌이(봉사활동)로 벌어들인 것들은 교주 가족들의 호화로운 생활에 쓰인 것으로 보인다.
*사실 확인 위해 박순애 씨의 딸, 기사 이모 씨, 서모 목사에게 전화했으나 모두 부인하였고, 아들은 전화를 받지 않아 문자를 보냈으나 응답이 없었으며, 교주와 손자의 전화번호는 바뀌었다. 박순애 씨의 집으로 찾아갔으나, 신도들이 밖에서 기다리라 하고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오명옥 omyk7789@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