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setNet1_2

한국 이슬람의 현실과 교회에 대한 제언(提言)

기사승인 2016.11.27  19:31:06

공유
default_news_ad1

-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가 1526-29년 어간에 쓴 그 글에 의하면 무함마드는 하나님의 채찍과 진노라고 하며 무기로 대항하여 싸우기보다 고통을 감수하며 회개와 눈물과 기도로 싸우라고 권하였다.

Ⅰ. 한국 이슬람의 현실

1. 한국 이슬람의 성장 원인

1) 노동 인력 부족

1986년 아시안 게임과 1988년 올림픽 이후에 국제 무대에서 한국이 서서히 이름을 떨치기 시작할 무렵, 국내 노동시장에는 산업별 노동력 이동 현상이 일어나면서 제조업 분야에 아시아의 많은 국가들이 새로운 노동시장의 판로를 찾아 나서야 했다. 이러한 한국 노동시장의 경제적 요구와 아시아 국가 노동 인구의 요구가 서로 부합되면서, 1990년에 산업 연수생이라는 이름으로 2만 명의 외국이 근로자가 한국에 들어오게 되었다. 2000년에는 재한 외국이 총 수 사 20만 명을 넘어서 인구 중 0.44%를 차지하게 되었으며, 2005년에는 드디어 전체 인구의 1% 이상을 차지하게 되었다. 2014년 8월 기준으로 총 171만 896명이다.

정부는 제1차 외국인 정책 기본 계획(2008-2015년)을 마무리 하면서 2020년까지 350만 명의 외국인이 한국에 정착해서 살게 될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따라서 외국인의 숫자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한국 정부 정책을 이루기 위하여 매년 약 30만 명의 이민자들이 들어와야 한다. 외국인 숫자가 늘어남에 따라서 이슬람 인구도 늘어나고 있다.

2) 저출산

현 사회가 현재와 비슷한 규모를 유지하기 위하여 한 여성이 평균 2.1명의 아이를 낳아야 한다. 그런데 한 여성이 평균 1.6명을 낳으면, 인구 감소가 천천히 늦어지거나 또 그 사이에 아이를 더 낳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에 이를 안전 지대라고 부른다. 만일 그 이하로 아이를 낳으면 인구가 감소하는 것이 아니라 무너진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한국의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한 것은 1965년 ‘산아제한정책’을 쓰면서 시작되었다. 산아제한 정책은 곧 저출산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저출산은 저성장을 초래한다. 일하고 세금 낼 사람이 적기 때문에 당연한 수순이다. 우리나라는 1970년 4.53명의 출산율을 기록한 이래,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는 산아제한정책으로 1980년 2.63명으로 급격히 줄었고, 1990년 1.60명, 2000년 1.47명, 2009년 1.19명이라는 최악의 상황에 이르고 말았다. 사실 1983년에 출산율이 2.1명으로 떨어졌을 때, 신속히 조치를 마련해야 했지만, 정부가 적극적으로 출산 정책을 시작한 것은 2005년 부터였다. 2040년에는 우리나라 인구가 400-500만 정도, 2050년에는 800-1000만 정도가 줄어들게 되었다. 2014년 한국의 출산 인구는 1.20명으로 경제협력기구(OECD) 국가 가운데 최저의 출산을 기록하였다. 만일 출산율이 1.20명이 계속된다고 하면 100년이 지나면 한국에 순수한 한국인은 21.6%만 남는다.

3) 고령화 사회

고령화 사회는 65세 이상의 인구가 14% 이상인 사회를 말한다. 한국은 2018년에 고령사회로 진입하고, 2026년에 인구의 20%가 고령화 된 초 고령사회에 진입한다. 2030년이면 인구의 24.3%인 1,181만 명에 이르는 노인사회가 될 것이다. 2050년이 되면 46%를 넘어설 것이다. 고령화는 평균 생활 수준의 하락, 사회 활력 하락, 농촌 및 중소도시 경제 파괴 등의 문제를 양산할 것이며, 무엇보다도 고령화 사회는 내수시장의 침체를 가져온다. 이는 교회 구성원들의 고령화를 의미한다. 1961년 우리나라의 평균 수명은 51세였다. 50년 만에 87세까지 증가했다. 이런 추세라면 2035년이면 평균 수명이 100세에 이를 것이다.

2. 한국 이슬람의 전망

1988년 7월 11일, 서울 올림픽이 시작되기 전에 아랍 연맹에서 발행되는 아랍 뉴스(Arab League News)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지금으로부터 100여년 전에 한국은 기독교인이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러나 현재 전체 인구의 25%에 달하는 천만 명 가량이 기독교인인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사상 유례가 없는 놀라운 증가 추세를 보면, 한국인은 상당히 종교성을 가진 나라이다. 한국에는 현재 3만여 명의 무슬림들이 있다. 한국인의 조교 성향을 볼 때 향후 수십 년 만에 이슬람 세력이 기독교 세력을 앞지를 수 있을 것이다. 머지않아 한국은 이슬람 국가 중의 하나로 불리게 될 것이다.

당시에는 허황된 예측인 것 같았지만, 지금은 현실로 나타나서 한국인의 이슬람 인구는 증가하고 있다. 1970년에는 3,700명에 불과했지만, 1980년에는 22,000명, 그리고 2005년에는 40,000명, 2009년에는 70,000명으로 증가하였다. 2005년부터 매년 7,000명 이상의 한국인이 이슬람으로 개종하고 있는 셈이다. 통계청 자료를 분석해보면, 현재 한국에는 약 14만 명의 외국인 무슬림이 합법적으로 거주하고 있으며, 2007년 대비 2011년 12월 말, 이슬람권 국가 국민의 국내 체류는 34.4% 증가하였다. 또한 이슬람권 출신 국가의 불법 체류 비율은 21%에 달한다. 한국의 현재 이슬람 인구는 외국인 무슬림과 한국인 무슬림을 포함하여 공식적으로 약 25만 명에 달한다. 비공식적으로 현재 한국의 이슬람 신자는 40만이 넘는다.

한국에서의 이슬람 성장도 유럽과 마찬가지로 이민, 다산, 결혼, 개종, 난민에 의하여 증가하고 있다. 무슬림 여인들의 다산은 이슬람 성장에 큰 역할을 한다. 만일 100원을 저금통에 넣고, 다음 날 200원을 넣고, 다음 날 400원을 넣고 계속 두 배로 저금을 한다면, 한 달 후에 이 저금통에는 얼마나 모였을까? 믿기 어렵겠지만 한 달 뒤에 10억이 넘는 돈이 된다. 이것을 증식의 원리라고 부른다. 무슬림 그들은 가족이 많다. 각각의 자녀들도 대가족을 이루게 된다. 그 다음 세대에도 대가족이 된다. 한국으로 오는 이슬람 유학생들이 증가하고 있다. 인구의 감소로 인하여 대학교에도 학생 수가 줄어들자 지난 2011년 ‘외국인 유학생 유치 확대 종합 방안’을 발표하며 유학생 정책에 가속도를 붙여나가고 있다. 한국에 들어온 유학생 숫자는 1970년 학귀 과정에 321명, 75년에는 559명, 80년에는 1,105명이었으나, 2000년 이후 빠른 속도로 증가하며 2013년에는 85,923명의 유학생들이 한국에 들어왔다.

2013년 6월 법무부 통계를 근거로 보면, 한국인과 결혼해서 국내에 머물고 있는 국제결혼 비자 체류자는 14만 8,746명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이 가운데 주요 12개의 이슬람 국가 출신이 모두 4,935명에 이른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주요 12개 회원국에는 속하지 않지만 전체 인구의 10% 정도가 무슬림인 프랑스와 같은 나라들도 있다. 이러한 나라들에서 온 무슬림들 그리고 그들과 결혼한 내국인들까지 계산하게 된다면 국내 무슬림 수는 더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전 세계 인구의 23.2%에 해당한다. 외국인의 약 20%는 이슬람 인구로 볼 수 있다. 외국인 정책본부통계연보(각 년도)에 의하면, 2030년까지 531만 명의 외국인이 존재한다면, 그 가운데 약 20%인 백만 명은 무슬림일 것이다. 따라서 한국은 15년 안에 이슬람 인구가 약 백만 명에 육박할 가능성이 크다. 나아가 지금의 추세라면 2050년에는 이슬람 인구가 300-400만 명을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한국의 기독교 인구는 1985년에 16%에서 1995년에 19.7%로 성장했다가 2005년 18.7%로 감소하기 시작했다. 2005년 정부가 시행한 인구 주택 조사 결과 개신교 인구는 870만(18.7%) 정도였다. 전문사들의 의견에 따라서 약간의 차이가 나겠지만 870만 중에 150-250만 정도를 이단으로 본다면 개신교인의 숫자는 2005년 기준으로 620-720만에 불과하다. 2050년에 기독교는 한국 종교 순위에서 4위로 곤두박질 칠 것이다. 1위는 불교, 2위는 천주교, 3위는 이슬람 순이다. 2050년 한국은 역 선교국 대상이 될 수도 있다. 이슬람과 기독교 간에 분쟁국이 될 수 있다. 이슬람이 시작되기 전 약 4세기 동안 중동이 비잔틴 기독교 제국이었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유럽이 이슬람화 되어가는 것에 대한 모델은 이미 중동에서 있었다. 오늘 날 중동은 이슬람 국가들이 되었다. 한국교회는 이를 교훈 삼아야 한다. 이를 위한 몇 가지 모델을 제시하고자 한다.

Ⅱ. 한국의 이슬람화에 따른 교회에 대한 제언(提言)

이슬람에 대한 반응에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일 것이다. 루터는 터키인의 위협을 하나님의 심판으로 보고 하나님 앞에 회개할 것을 사람들에게 촉구하였다. 그는 이미 1529년에 쓴 두 편의 글에서도 기도와 회개를 거듭 촉구했다. “목사와 설교자는 백성들로 하여금 회개하고 기도하라고 부지런히 경고해야 한다.” 또한 마르틴 루터는 십자군의 이름으로, 또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수행되는 전쟁을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마르틴 루터가 이슬람을 적그리스도로 인식한 것은 아닐지라도 꾸란에 대한 그의 논박은 강경하고 단호했다. 루터가 무함마드와 꾸란을 비난하는 논점은 악마가 무함마드를 교사하고 있기 때문에 꾸란은 악마의 작품이라는 것, 그리고 이슬람의 확장은 전쟁의 결과라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루터는 기독교의 반 이슬람 논쟁자들의 반열에 서 있다. 그에 의하면 이슬람은 사탄의 세력으로서 기독교 신앙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재정하신 모든 세속적인 질서도 파괴한다고 주장했다. 루터는 이슬람의 성장과 위협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고 우상을 섬겼을 때, 이스라엘을 공격했던 앗수르나 바벨론 제국으로 이해하였다. 오늘 날 한국에서의 이슬람의 성장을 기독교인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보고 한국교회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1. 이슬람을 알아야 한다.

기독교인으로서 이슬람에 대하여 처음 연구하였던 사람은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커스에서 살았던 요한네스(Johannes)였다. 그는 무함마드(Muhammad, 570-632년)가 죽은 지 약 20년 후에 태어났다. 만수르(Mansour)의 명문가 출신인 그의 아버지는 이슬람 군주 무아위야 1세(Mu'awiyah I, 602-680년) 아래에서 재무부 장관을 지냈다. 무아위야 1세의 뒤를 이은 왕이 기독교에 적대적인 정책을 펴자, 요한네스는 예루살렘 근처의 마르사바(Mar Saba) 수도원에 은신하였다. 그는 자신의 신학적 저술인 『지식의 근원』 “제2부 이단에 관하여”에서 이슬람을 이단으로 간주하였다.

그 이유는 “무함마드가 이단이었던 아리우스파 수도사로부터 정보를 받아서 이슬람이 시작되었으며, 꾸란에서 예수님은 비록 알라의 말씀이며, 영으로 언급되지만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기 때문에 이단이다”라고 했다. 꾸란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17번 부정하고 있다. 제네바의 종교개혁자였던 칼빈(J. Calvin)은 1550년에 집필한 데살로니가후서 2장 2절을 주해하면서, “무함마드가 배교자가 되어 그의 추종자들인 터키족을 그리스도에게서 따돌리게 되자 이 배신이 더 넓게 확대되었다.”고 하였다. 칼빈은 그의 저서에서 무함마드는 거짓 선교자이고, 이슬람은 삼위일체를 부인하는 이단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였다. 또 요한일서 4장 2절과 3절을 근거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신 것을 부정하는 이슬람은 기독교 이단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슬ㄹ람은 기독교와의 관계성 속에서 발전되어 왔다. 유럽인들은 무슬림 이민자들은 가장 현대적이며 세속주의자들이고 유럽 사람처럼 행동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유럽에 대규모 이민이 발생하면서 이슬람은 현재 유럽인들이 가장 걱정하는 문제 중에 1위를 차지하였다. 2004년 프랑스의 국가 인권 컨설턴트위원회(National Consulting Committee on Human Rights(CNCDH))의 연구에 따르면 주요 종교에 대한 유럽인들의 응답자들은 이슬람에 대해서는 23%만 긍정적인 견해였으며, 부정적인 견해는 66%에 달했다. 2007년 독일에서 실시한 여론 조사에서 유럽인들에게 “이슬람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무엇이 생각나느냐”라는 지룸네 대하여 ‘여성에 대한 학대’가 93%, ‘테러리즘’이 83%, ‘급진주의’라고 말한 사람이 82%에 육박하였다. 이슬람 종교에 대한 이해가 없기에 이슬람을 받아들임으로써 유럽은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례를 보면서 한국교회는 반드시 이슬람에 대하여 알아야 한다.

2. 교회가 건강해야 한다.

2013년 5월에 한국기독교목회자 협의회에서 조사한 ‘2012년 한국인 종교생활과 의식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교회를 다니다가 나가지 않는 이유로 ‘목회자들에 대한 좋지 않은 이미지’(19.6%), ‘교인들이 배타적이고 이기적이어서’(17.7%), ‘헌금을 강조해서’(17.6%) 등의 응답이 많았다. 유럽과 미국에서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사람들의 약 80% 이상이 교회에 출석하던 교인들이다. 이슬람의 다수를 차지하는 수니파에는 교리적으로 성직자가 없다. 시아파에 이맘이라는 성직자가 있으나 시아파는 이슬람 전체 인구의 12% 정도 된다. 또한 이슬람에는 헌금이 없다. 이슬람의 교리 가운데 5행(行) 중에 자카트(Zakat)가 있다. 이는 자기 수입의 2.5%를 떼어서 구제금에 사용하는 것이다. 꾸란에 언급된 구제금에는 이슬람 사원에 갖다 내는 항목이 없다. 개인적으로 구제하는데 사용하면 된다. 이 또한 강제성이 없기에 자유롭다. 이슬람에서의 예배는 어디에서나 하루에 5번씩 메카의 카바 신전을 향하여 예배하기에 꼭 모스크에 가야 한다는 부담이 없다. 그런데 이슬람에서는 기독교의 하나님과 이슬람의 알라는 같은 하나님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교회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이 똑같은 하나님을 섬기는데 부담이 없는 이슬람으로 개종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영국과 비교하여 다행인 것은 영국에서 기독교 인구가 줄어들면서 무신론자들이 급증하게 되었다. 그러나 한국은 종교 인구가 매년 성장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교회의 건강성이 회복되면 얼마든지 교회 성장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3. 다문화시대에 맞게 교회의 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

한국에서 다문화시대는 이미 시작되었다. 외국인 노동자와 외국인 배우자, 새터민들이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2013년 정부 통계에 의하면, 한국의 결혼 이민자 및 혼인 귀화자는 2012년 220,687명으로써 매년 늘어나는 추세이다. 그 외 한국 국적 취득자도 2012년 47,040명이다. 다문화 자녀들 또한 168,583명으로써 매년 급증하고 있다. 결혼하는 인구의 10쌍 중 한 쌍이 외국인과 결혼한다. 다문화 가정 초, 중, 고생도 8년 만에 7배 늘어났고, 2017년에는 10만 명이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다문화 가정의 증가는 한국교회에 기회가 되거나 혹은 어려움이 될 수 있다.

영국에 기대를 가지고 들어온 흑인들에게 영국교회는 인종적인 차별을 보임으로써 정체성 문제로 낙담한 흑인들은 이슬람으로 개종하였다. 2012년 한국 여성 가족부가 전국의 1만5천 다문화 가구를 대상으로 실태 조사한 결과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이나 무시를 당한 적 잇다’는 응답이 41.3%에 달했다. 이는 영국보다 심각한 현실이다.

예수님은 인종에 대한 편견을 가지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동안 세 차례 예루살렘을 올라가셨는데, 마지막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실 때, 사마리아에 들어가서 수가 성 여인에게 복음을 전하였다. 사마리아인들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었다. 유대인들이 바벨론 포로생활을 할 때, 많은 이방인들이 이 지역에 옮겨 살게 되었고 남아 있던 유대인들이 이방인들과 혼혈하여 살게 되었다. 유대인들이 포로생활을 마치고 자신의 땅으로 돌아왔을 때, 다른 이방인과 혼혈을 이룬 사마리아 지역 사람들을 경멸하였고, 같은 민족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들에게 다가가서 대화를 나누었고, 복음을 전하셨다. 더 나은 삶을 찾아서 한국에 온 외국인들에게 우리는 성경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음이니라”(신 10:19) 이 외에 많은 성경 구절이 이방인 혹은 나그네에 대한 구절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무슬림에 대해서는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대해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그리스도 되심을 부정하기에 종교 개혁자들에 의하여 이미 이슬람은 이단으로써 그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4. 기독교 신앙 전승률을 높여야 한다.

신앙 전승률이란 부모가 믿는 신앙을 자녀들에게 전승하는 것을 말한다. 한국에서 불교의 신앙 전승률은 97%이다. 그러나 개신교의 신앙 전승률은 아버지 혼자 믿으면 57%, 어머니 혼자 믿으면 70%에 불과하다. 2013년 한미준 연구 보고서에 의하면 기독 청년 84.5%가(중학교 이전에 65.1%, 중학교 이후에 19.4%) 부모로부터 신앙이 전승되었다.

반면에 이슬람의 신앙 전승률은 100%에 가깝다. 영국에서 이슬람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이슬람 방식의 옷을 입히고 학교에 보낸다. 기독교인들이 복음을 전하면 무슬림들은 담대하게 거절한다. 또한 이슬람 가정에서는 자녀들이 타락한 유럽 문화에 물들지 않기 위하여 어린 시절부터 꾸란을 암송시킨다. 경제적 여유가 있는 가정은 이만(Imam)을 초대하여 꾸란 과외공부를 시킨다. 타임지에 의하면, 영국의 무슬림 사라(Sara Ege)는 7살 아들이 꾸란을 암기하지 않는다고 하여 때려서 살해한 일이 있었다.

5. 선교해야 한다.

이슬람의 예언자 무함마드는 진리를 찾고자 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당시의 기독교의 중심은 비잔틴 기독교 제국이었다. 비잔틴 기독교 제국은 아라비아 반도에 선교사를 파송한 흔적이 없다. 이슬람권을 향해 최초로 선교적 접근을 한 사람은 아시시의 프란체스코(1181-1226)였다. 그 후에 프란체스코 수도사들이 1219년 다섯 명이 선교사로 모로코로 갔다. 그러나 1년 후에 순교하였다. 레이몬드 룰 Raymond Lull(1235-1316)은 82세의 노구를 이끌고 튀니스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베자야 해변에서 돌에 맞아 순교하였다. 헨리 마틴 Henry Martyn(1781-1812)은 캠브리지 대학을 졸업하고 영국 성공회 목사로서 인도로 가서 동인도회사의 전임 사목으로 있다가 힌두교 성경을 번역했고, 이란으로 가서 이란 성경을 번역했지만, 결핵으로 인해 겨우 31세의 나이에 터키 토카트에서 죽었다. 그 후에 이슬람 선교의 아버지로서 불리는 사무엘 쯔머(Samuel Zwemer, 1867-1952)이다. 학생 신앙 운동에 작극을 받고, 헌신하여 아랍선교회를 세우고 그의 친구들과 아랍어를 배우기 위하여 레바논에 들어갔으며, 1900년대 초반에 이집트에서 사역을 하였고, 40년 동안 20여명의 개종자를 얻었다. 이슬람권에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사실을 미국에 알렸다. 이것이 20세기 초까지 무슬림을 위하여 사역한 사람들이다. 기독교가 번성했던 서구에서 이슬람권으로 선교사를 파송하기 시작한 것은 이제 불과 100여년이 지났을 뿐이다. 이런 무관심으로 인하여 성경이 아랍어로 번역된 것은 무함마드에 의하여 이슬람이 시작된 지 227년이 지난 837년이었다. 아랍어로 성경이 번역되었다고 해도 정작 아랍어 성경이 출판된 것은 1516년이다. 기독교의 중심이었던 서구의 이슬람에 대한 심리적 원수 관계로 인하여 이슬람 선교를 외면하였다. 따라서 전 세계 무슬림들의 80%는 복음을 들어보지 못하게 되었다. 앞으로 이슬람 선교는 더 많은 희생과 순교를 각오해야 할 지 모른다.

초대교회의 교부 터툴리안(Tertullian)은 “교회는 순교자의 피 위에서 성장한다”고 했다. 이미 그런 징조들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복음을 무슬림들에게 가지고 갈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 사역에 한국교회와 한국 기독교인들이 쓰임 받기를 원한다.

 

나가는 말

이슬람에 대한 연구는 종교개혁자들에 의하여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오스만 터키의 술래이만 대제(Suleyman the Magnificent)는 과거 비잔틴 제국의 영역을 모두 정복한 후에 유럽을 공략하였다. 1521년 베오그라드를 함락했고, 1523년 로도스 섬을 함락했으며, 1526년 헝가리를 함락시켰다. 1529년에는 오스트리아 빈이 포위를 당했다. 따라서 이러한 이슬람으로 인한 위기의식 가운데 종교개혁자들은 이슬람을 연구하였다.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가 1526-29년 어간에 쓴 그 글에 의하면 무함마드는 하나님의 채찍과 진노라고 하며 무기로 대항하여 싸우기보다 고통을 감수하며 회개와 눈물과 기도로 싸우라고 권하였다. “터키인들과는 교황과 그의 추종자들이 가르치는 육체적인 방식으로 싸워서는 안 되고... 그들이야 말로 그리스도인들이 고통을 감수해야 하거나 회개와 눈물과 기도로 싸우고 내몰아야 할 하나님의 채찍과 진노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또한 십자군의 이름으로, 또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수행되는 전쟁을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루터가 무함마드와 꾸란을 비난하는 논점은 첫째, 악마가 무함마드를 교사하고 있기 때문에 꾸란은 악마의 작품이라는 것 둘째, 이슬람의 확장은 전쟁의 결과라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루터는 기독교의 반이슬람 논쟁자들의 반열에 서 있다. 그에 의하면, 이슬람은 사탄의 세력으로서 기독교 신앙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재정하신 모든 세속적인 질서도 파괴한다고 주장했다.

이제 우리는 기독교가 발전하고 융성했던 곳들이 이슬람으로 대체된 것에 대하여 심각하게 생각하여야 한다. 기독교가 종교적 욕구를 채워주지 못하고, 골고다 산상의 십자가를 자신을 위한 도구로 전락시킬 때, 이슬람이 몰려왔고 그에 대항할 만한 능력을 상실한 채 시간이 지나면서 기독교는 그 주권을 이슬람에게 내어주고 말았다. 한국 기독교는 초대교회의 원시적 복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므로 어디에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는 요한계시록 2장 5절의 성경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유해석 선교사FIM 국제선교회 대표총신대학교 기독교 교육학, 영국 웨일즈대학교 신학부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파송 선교사저서; 우리 곁에 다가온 이슬람 등 다수

종교와 진리 webmaster@churchheresy.com

<저작권자 © 종교와 진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4
default_side_ad1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etNet2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