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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는 죽음과 부활을 동시에 말한다

기사승인 2017.03.22  21: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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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은 구속의 완성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말하며, 특히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을 보장하여 주는 첫 열매가 되어짐으로서 중요한 가치를 갖는다고 말합니다.

십자가는 죽음과 부활을 동시에 말한다

평이협 대표 이인규 무엇이든지물어보세요 운영자

춘천 한마음교회(김성로목사)는 부활을 강조하는 교회로서 유명합니다. 특히 기침교단의 신학은 부활을 강조하며, 침례라는 의미를 물에 완전히 잠겼다가 나오는 것으로 인정하며, 그것은 곧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최근에 비록 일부 사람들이지만, 부활을 강조하는 것을 마치 이단적인 주장인 것처럼 비판하는데, 부활을 강조하는 것이 이단적인 주장이 될 수 없습니다. 예를 들면 루터는 칭의를 강조하였고, 캘빈은 중생을 강조했으며, 웨슬레는 성화를 강조하였습니다. 이러한 신학적인 강조의 견해 차이는 그당시 처한 시대와 상황에서 본 관점과 견해의 차이이기도 합니다.

1. 일부 사람들의 오해와 과장

김성로목사가 주장하는 소위 부활복음이란,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부정하거나 약화하는 것이 아니며, 부활만을 강조하는 내용이 결코 아닙니다.

일부 몇사람들은 상당히 좁은 신학적인 스펙트럼을 갖고 있어서, 자신이 알고 있는 신학이 아니면 모두 잘못된 것처럼 주장하는 극단적이고 배타적인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김성로목사에 대해서 “십자가 50%와 부활 50%을 믿으라”고 가르친다는 비난은 소위 부활복음이라는 것을 잘못 이해하고 있거나, 혹은 나쁜 의도를 갖고 고의적으로 조작하는 것입니다.

또 간혹 표현적으로 실수한 설교 동영상 한두개를 문제삼아 그것을 반복적으로 과장하고 확대하는 비난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미 성경해석에 대한 몇가지에 대해서는 사과하고 모두 수정하였습니다)

김성로목사가 강조하는 부활복음은 십자가와 부활의 두 기둥이 모두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100% 십자가 속죄사역과 100% 부활의 성취사역을 함께 인정하고 강조하자는 것입니다. 이러한 비판을 하기 위해서는 그의 책과 모든 설교, 동영상과 교회 양육교재를 보고 전체적인 평가를 하여야만 할 것입니다. 다만 한국교회가 거의 십자가 죽음만을 설교하고, 부활에 대해서는 부활절이 되어야만 한두번 설교를 하는 실정이기 때문에, 부활을 강조하여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모두 함께 믿음의 연장선으로 놓고 말하는 것입니다. 아주 알기 쉽게 말하자면, 십자가도 인류의 죄를 위한 속죄사역으로서 중요한 것이지만, 부활도 그 완성으로서 함께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십자가 복음이 말하는 가장 중요한 두가지 요소는 김성로목사가 그의 책, 부활에서 말한 것과 같이, 예수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서, 어느 한쪽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김성로목사는 <부활> 25페이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십자가 없이는 인간의 죄를 용서할 수 없기에 십자가는 복음의 핵심사건이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17절에서 십자가를 자랑하는 동시에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으면 우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사도바울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고 말한 것은 부활이 전제된 것이다. 이렇게 십자가와 부활은 둘 중에 어느 것이 더 크거나 중요하다는 비교의 대상이 아니라 동전의 양면같이 어느 것 하나도 없어서는 안되는 복음의 핵심사건이다”

또한 춘천한마음교회의 양육교재 첫 머리말에는 춘천 한마음교회의 목적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990년 8월20일에 창립된 기독교한국침례회 한마음교회는 오직 성령의 권능으로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땅 끝까지 증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2. 성경이 말하는 부활의 중요성

어떤 사람들은 부활을 믿지 않아도 이미 십자가만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말하고, 또 부활은 십자가에 저절로 따라오는 열매라고 말하는데, 만약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는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구원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만약 예수가 부활하지 않았다면 사탄이 승리한 것이 되기 때문에 기독교 자체가 존재할 수 없었습니다.

롬 10: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더욱이 부활을 믿지 않아도 된다는 주장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예수를 믿지 않아도 된다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오히려 위험한 주장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고백인 사도신경에도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을 믿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고전 15: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개혁주의뿐 아니라 거의 모든 복음주의의 조직신학자들도 모두 십자가 죽음은 구속의 현재적인 의미를 갖지만, 부활은 구속의 완성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말하며, 특히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을 보장하여 주는 첫 열매가 되어짐으로서 중요한 가치를 갖는다고 말합니다. 많은 조직신학자들은 부활이 없다면 구속은 성취될 수 없으며, 칭의와 중생의 근간도 없어지고, 결국 복음은 헛것이 되며, 장래 우리의 부활도 없게 되므로, 기독교 자체가 존재할 수 없게 된다고 말하는 것을 잊으면 안됩니다. 부활은 조직신학적인 근거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성경적으로도 아주 중요합니다. 더욱이 조직신학자들은 부활은 칭의와 중생의 근간이 되어진다고 말합니다

롬 4:25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벧전 1:3-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롬 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예수님은 부활하심으로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십니다. 즉 부활은 기독론에서도 아주 중요합니다

롬 1: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롬 14:9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


성경은 부활을 죽음과 함께 구원의 완성과 성취로 강조하고 있습니다.

롬 6: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고전 15:21-22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3. 조직신학적인 견해

혹간 부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을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십자가 구속만으로 구원이 이미 완성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자체가 의심스러우며, 그렇다면 예수님이 다시 살지 못하였다고 하여도 우리의 구원이 완성되었다는 말이며, 지금도 살아계신 예수님을 믿지 않아도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까? 캘빈과 루이스벌콥과 웨인그루뎀과 마틴로이드존스 목사도 이단입니까? 우리나라 조직신학자들이 모두 이단이며 다른 복음을 가르쳤습니까?

부활을 강조하는 것은 결코 십자가 죽음을 부정하거나 약화시키자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 죽음만을 믿는 신앙에 그치지 말고, 부활까지를 믿는 신앙의 연속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특히 초대교회 성도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부활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1) 캘빈의 기독교 강요(영한대조 기독교강요, 미성문화원 CD)

16장 그리스도의 부활, 승천 및 하늘에 정좌하심

13. '사흘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다음은 죽은 자 가운데서의 부활이다. 이것이 없다면 지금까지 우리가 논한 모든 체계는 불완전하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죽음과 장사에서는 연약함밖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신앙은 그 완전한 힘을 얻기 위하여 이 모든 사실들을 뛰어넘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죽음을 통해 구원의 완성을 이룬다. 그것은 죽음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과 화해했고, 그의 공의로우신 심판이 충족되었으며, 저주는 제거되고, 형벌은 완전히 치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심은 그의 죽음을 통해서가 아니고,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이다(벧전 1:3). 그가 다시 살아나심으로써 죽음을 이긴 승리자로 등장한 것처럼, 죽음을 이긴 우리 신앙의 승리 역시 그의 부활에만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울의 다음 말이 그리스도 부활의 성격을 잘 표시해 준다.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4:25). 이 말은 마치 그가 "죽으심으로 죄는 제거됐고 그의 부활로서 의는 다시 살아나 회복되었다"고 말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가 만약 죽음에 굴복했다면, 그가 죽었다고 해서 우리를 죽음에서 해방시킬 수 있었겠는가? 또 만약 그가 이 싸움에서 졌다면, 어떻게 그가 우리를 위하여 승리를 쟁취할 수 있었겠는가?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구원의 요소를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써 다음과 같이 구분한다. 그의 죽음을 통해서는 죄가 제거되고 죽음이 소멸되었으며, 그의 부활을 통해서는 의가 회복되고 생명이 되살아나 그의 죽음이 우리 안에서 능력과 효력을 나타내게 되었는데 그것은 그의 부활의 덕분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리스도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느니라"(1:4)고 말하였다.


2) 박형용 교수(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명예교수)

박형용 교수가 리차드 개핀 박사의 「부활과 구속」 추천사 일부 중 성도의 구원에 있어서 부활의 중요성에서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결코 분리시킬 수 없는 사건이다. 죽음이 없으면 부활이 있을 수 없고 부활이 없으면 죽음의 의미가 상실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구원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부활은 죽음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고 있다.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 4:25)”

그러나 서방 교회에서는 성도들의 구원 문제를 논할 때 예수님의 죽음을 그의 부활보다 더 강조하여 다루었다. 예수님의 죽음을 속죄(atonement)의 성취로 강조하여 생각하는 태도 때문에 예수님의 부활은 큰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한 것이다. 물론 예수님의 죽음은 아무리 강조해도 잘못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바울 서신에는 부활에 대한 강조가 명백하게 나타나 있다.

바울에게 있어서 예수님의 부활은 구속의 완성, 구속의 종결로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죽음보다도 예수님의 부활에서 구속의 성취를 찾을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죽음과 예수님의 부활을 대치시켜서는 안된다. 그러나 구속의 완성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서 더 결정적으로 성취된 것이다. Gaffin 박사는 바울 신학의 중심주체인 부활을 성도들의 구원과 결부시켜 다룬 다음 예수님의 부활 자체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제공한다.”


3) 이승구 교수(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조직신학)

이승구 교수가 국제신학에 기고한 “그리스도의 부활과 그 의미”를 보면 “부활은 구속사적인 사건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십자가와 함께 객관적으로 우리를 위한 구원의 근거가 되는 사건인 것이다. 이 부활은 십자가의 궁극적 구원적 의미를 드러내는 사건이며, 우리의 구속의 객관적인 근거를 마련하는 사건들 중의 하나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 부활 안에서 구원을 받는다고 할 수 있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분명 부활은 십자가와 함께 구속적 사건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4) 권연경 교수(숭실대학교 기독교학과)

권연경 교수가 목회와 신학에 “부활은 복음이다”에 기고한 글 일부이다.

- 우리가 부활의 하나님을 믿어 의롭게 된다면, 부활이 없는 칭의란 존재할 수 없다. 칭의를 죄 용서와 동일시하고, 이를 전적으로 십자가의 효과로 간주하는 통상적인 경향과는 달리, 바울은 칭의가 십자가뿐 아니라 부활 또한 필요로 하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신 “예수 우리 주”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죽음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죽음으로부터) 살아나셨느니라(롬 4:25). 물론 이는 십자가 죽음이 죄 용서를 위해, 그리고 부활이 칭의를 위해 필요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죄 용서와 칭의가 나누어질 수 없는 것처럼, 십자가와 부활도 그러하다.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우리의 칭의에는 십자가뿐 아니라 부활 또한 필요하다는 것이다.


5) 황승룡박사

1. 부활의 중요성 : 제자들이 행위와 예수에 대한 그들의 태도에 있어서 이렇게 전격적으로 변화된 원인은 무엇이었는가? 신약의 대답은 예수께서 죽은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였다는 사실이다. 사실 부활은 초대 기독교의 중심 메시지였다. 최초로 보도된 기독교 설교는 부활의 사실과 의미를 선포하는 것이었다(행 2:14~36)

2. 부활의 사실성 : 만일 그리스도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지 않았다면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구원하는 구속행위들의 긴 과정은 무덤 속에서 끝나버리고 만다. 만일 그리스도의 부활이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살아 계시다는 확신도 가질 수 없다. 부활은 기독교 신앙 전체적인 본질. 하나님과 하나님의 구속사역의 본질을 포함한다. (황승룡교수의 그리스도론, 452~456쪽 한국장로회출판사)

6) 박윤선 박사

박윤선목사의 다음 주장은 아주 충격적이며 참신한 선포와 같은 내용이었다. 만약 예수님이 부활하지 못했다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승리한 것이 아니라 사탄이 승리하였다는 결과가 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부활신앙이 아니라면 기독교회 자체가 존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 바빙크는 말하기를 만일 그리스도께서 몸으로 살지 못하셨다고 말한다면 죄악의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가 정복되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승자가 그리스도가 아니고 사탄이라는 말이 성립된다.” 하였고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으셨다는 부활신앙이 아니었다면 기독교회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무엇보다도 성경의 증거에 의하여 확실하다. (개혁주의 교리학, 박윤선, 279-280쪽)

박윤선목사는 부활이 곧 예수가 메시야와 중보자가 되는 증표가 되며, 사죄와 칭의 의 완성과 보장이 되며, 우리 부활의 보증이며, 기독교의 기초가 된다고 말한다

- 바빙크의 말을 다시 인용한다면 그의 부활은 그가 메시야이신 증표요,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증표요, 그의 중보자 사역의 완성이요, 그의 높아지심의 방법이요, 우리의 받을 사죄와 칭의의 보장이요, 우리에게 주실 영적 축복과 은사의 근원이요, 우리의 부활에 대한 보증이요, 사도적 기독교의 기초이다. (개혁주의 교리학, 박윤선, 280쪽)

7) 마틴로이드존스 목사

마틴로이드존스는 부활이 구원의 완성이라고 말한다. 또한 우리가 부활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말한다. 또한 종말적으로 예수를 믿는 우리들이 부활을 통하여 죄와 악에서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 구원은 몸의 부활이 없이는 완성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사실이 바울이 고린도전서 15장을 쓴 이유입니다. 돌아다니면서 몸의 부활이 없고 영적인 부활만 존재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그 당시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고전15:17) - 구원이 없습니다. 바울은 실제로 여러분에게 처음 왔을 때 전파한 이 믿음에 굳게 서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전혀 아무 것도 얻지 못하고 구원 받지 못하며 그리스도인이 아닐 것입니다” (마틴로이드존스, 교회와 종말에 일어날 일, 기독교문서선교회, 282쪽)

- 이 부활한 몸의 마지막 특성은 하늘에 속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무릇 흙에 속한 자는 저 흙에 속한 자들과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는 저 하늘에 속한 자들과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고전15:48-49) 부활한 몸은 반드시 이와 같을 것인데 그 이유는 우리 자신이 하늘에 거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도요한이 그의 서신에서 말한 바에 의하면 그날이 이르면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요일3:2)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여러분이 그와 같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덧붙이고 싶은 것은 이 교리로 인해 완전히 변화될 것이나 여러분의 정체성은 상실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정체성이 보존되어 부활한 후의 여러분은 여전히 여러분 자신일 것입니다. 여러분의 구원이 완성되고 여러분의 영은 이미 구원되고 여러분의 몸도 완전히 구속되었을 것입니다. 인류 전체가 전적으로 죄와 악에서 구원되었을 것입니다. 오 복되고 영광스러운 날이여! 오 놀라운 구속이여! (마틴로이드존스, 교회와 종말에 일어날 일, 기독교문서선교회, 288쪽)

8) 루이스 벌콥

루이스벌콥은 이미 조직신학자로서 널리 알려진 개혁주의 학자로서 미국 칼빈신학교 교장이었으며, 그의 저서는 장로교단의 신학교의 조직신학대 교재로 이미 널리 소개되어 있다. 루이스벌콥도 부활이 칭의와 중생, 그리고 성도들의 부활과 연관되어 있다고 말한다. 나아가서 예수의 부활이 성부의 인치심과 수납에 대한 공식적인 선언이었다고 말한다.

- (3) 그리스도의 부활은 역시 그들의 칭의와 중생 그리고 마지막 부활과 도구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롬4:25, 5:10, 엡1:20, 빌3:10, 벧전1:3) (벌콥조직신학 하권, 71쪽)

- 오히려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부활이 구성요소로서 구속사역의 본질, 따라서 복음사역의 본질에 관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교회의 가장 큰 기초석 중 하나이다. 그리스도의 속죄적 사역은 만일 그것이 전적으로 유효적이었다면, 죽음이 아닌 생명에서 종결되어야만 하였다. 더 나아가 부활은 그리스도의 완성된 사역에 대한 성부의 인치심이었으며 그것은 수납(acceptance)에 대한 공식적인 선언이었다. 마지막으로 부활은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셔서 놓여지신 교회의 머리와 보편적 주님으로서 새로운 생활에 들어가신 것이었다. 이것은 그로 하여금 구의 구속사적 사역의 열매들을 사용케 하셨다. (벌콥조직신학 하권, 74쪽)

9) 웨인 그루뎀

웨인그루뎀은 미국 일리노이즈의 Trinity Evangelical School의 조직신학교수로서, 그의 저서가 우리나라에 여러권 발행되었다. 웨인그루뎀도 루이스벌콥과 마찬가지로 부활이 우리의 중생과 칭의를 보장하여 주며, 우리의 부활을 보장하여 준다고 말한다.

- 부활 교리의 중요성

a.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의 중생을 보장해 준다 : 벧전 1:3

b.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의 칭의를 보장한다 : 롬 4:25

c.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도 완전한 부활의 육신을 받게될 것을 보장한다. 고전 6:14, 고후 4:14, 고전 15:20 (웨인그루뎀 조직신학 중권, 167-170쪽)

10) 마크 드리스콜, 게리 브레셔츠

게리 브레셔츠는 웨스턴신학대학의 신학교수이며 신학 연구 학과장이다. 또한 마크 드리스콜은 시애틀의 마스힐교회를 세운 목사로서 사도행전29장 교회개혁네트워크 대표이고 부활선교 신학협회를 설립한 목사이다.

- 예수님이 지금도 죽어 계신다면 기독교도 죽은 것이다. 예수님이 살아계신다면 기독교도 살아있다. 바울 자신이 고린도전서 1517절에서 그렇게 선언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으면 구주도 없고 구원도 없고 죄 용서도 없으며 영생의 부활에 대한 소망도 없다. 부활이 없으면 예수님은 또다른 선하지만 죽은 인간에 불과하게 되고, 따라서 이 세상에서나 죽음의 순간에 우리에게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한다. 쉽게 말해서 부활이 없으면 오늘날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예배하는 수십억 명의 사람들은 쉽게 속는 사람들이다. 내세의 부활 생명에 대한 그들의 소망은 그들에게 생명을 주겠다는 한 죽은 사람을 신뢰하는 어리석은 바보들의 소망이다. 결과적으로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교리는 의문의 여지없이 매우 의미심장하며 극히 세심한 숙고와 고찰이 필요한 교리이다.(기독교 교리, 마크 드리스볼, 게리 브레셔스 공저, 부흥과개혁사, 371-372쪽)

4. 결론 : 이단연구가 본연의 자세

오늘날 너무나 많은 이단들이 한국교회를 위협하고 미혹하고 있습니다. 이단연구가들은 협박을 당하고 고소와 고발을 당하면서 사역을 하고 있으며, 심지어 폭력을 당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이단을 옹호하고 지지하는 일부 교단의 목사들이 이단연구가를 공격하고 괴롭히면서, 이단을 교단에 영입하고 후원을 하기도 합니다.

이단연구가들은 아군을 공격하는 일을 삼가야 하며, 비난을 위한 비난, 개인적인 감정에 의한 정치적인 공격을 삼가야 합니다.

특히 자신이 알고 있는 좁은 스펙트럼의 신학과 다른 정통신학을 모두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자기의 견해와 지식과 다르면 공격하는 사람들이 있고, 정치적인 목적이나 자기의 이익을 좇아서 이단연구를 하는 사람들도 간혹 있는데, 이들은 한국교회의 암적인 존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단연구를 하는 이유는 나를 위하여 누군가를 정죄하기 위함이 아니라, 주님을 위한 사역, 좁게는 한국교회를 위한 복음의 진리성이 그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종교와 진리 webmaster@churchheres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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