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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세례와 초자연적 은사

기사승인 2017.09.02  08:4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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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은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전달과 확증을 위한 것이었고 사도 시대 이후에 사라졌다고 본다.

성령의 세례와 초자연적 은사

김효성 목사 /계약신학대학원 교수, 합정동교회 담임목사연세대학교 철학과(B.A.) 총신대학교 신학연구원[신학대학원](B.D.equiv.) Faith Theological Seminary(Th.M. in N.T.) Bob Jones University(Ph.D. in Theology)

오늘날 은사운동은 예수 믿고 구원얻은 신자가 성령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감리교와 성결교의 교리 사상과 비슷하고 D. L. 무디의 협력전도자 R. A. 토리의 사상과도 통한다.

오순절 사건

성령세례는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과 관계된다. 그 사건은 이중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특수한 의미

오순절 사건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과정에서 시대적 분기점을 이루는 몇 가지 특수한 의미를 가진다.

첫째, 오순절 사건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의 성취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 성령 강림을 약속하셨다. 이사야 32:15, “필경은 위에서부터 성신을 우리에게 부어주시리니.” 에스겔 36:27,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요엘 2:28-29,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주리니,” “그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줄 것이며.”

예수께서도 공생애 말기와 승천 직전에 성령 강림을 약속하셨다. 요한복음 14:16-17,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사도행전 1:4-5,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오순절 사건은 바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약속의 성취이었다.

둘째, 오순절 사건은 성령께서 오셔서 교회 가운데 거하시는 사건이었다.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속죄사역에 근거하여 성령께서 세상에 오셔서 신약교회 속에 영원히 거하시게 되었다. 신약교회는 구약교회가 경험하지 못했던 성령의 영원한 내주(內住)하심을 경험하게 되었다. 요한복음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셋째, 오순절 사건은 성령께서 일하시는 시대의 시작이었다. 사도행전에 보면, 교회 시대에, 부활하신 주께서 직접 일하기도 하셨지만(행 9:4-5, 10, 34; 18:9), 특히 성령께서 주로 일하셨다. 4:8,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8:29, “성령이 빌립더러 이르시되.” 8:39,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간지라.” 10:19, “성령께서 저더러 말씀하시되.” 13:2, “성령이 가라사대.” 15:28, “성령과 우리는.” 16:6,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16:7,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 18:5, “바울이 성령에 이끌리어(전통본문).” 20:28,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이런 의미에서, 오순절 사건은 단회적이다. 헤르만 바빙크는 다음과 같이 적절히 말하였다:

오순절에 발생했던 성령의 이러한 보내심은 기독교회의 역사상 독특한(unique) 사건이다. 창조와 성육신같이, 그것은 오직 한번 발생하였다. 중요성에 있어서, 그것과 동등한 성령의 어떤 허락하심이든지 그 전에도 그 후에도 없었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잉태시에 인성을 취하셨고 결코 그것을 다시 버리지 않으시듯이, 성령께서도 오순절에 교회를 그의 거처와 성전으로 택하셨고 결코 거기서부터 다시 분리되지 않으신다.

일반적 의미

그러나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사건은 제자들이 처음 성령을 받은 사건이라는 일반적 의미도 가진다. 성령께서는 이 날 신자들 속으로 처음 들어오셨다. 성령께서 신자들 속으로 처음 들어오신 사건이라는 의미에서 오순절은 반복된다. 즉, 죄인들이 구원받을 때마다 성령께서는 그들 속에 들어가시고 그들을 인치신다. 성령께서는 베드로의 전도를 듣고 믿는 고넬료의 가족들에게 내려오셨고 그들 속으로 들어오셨다(행 10:44). 에베소의 제자들도 사도 바울의 전도를 듣고 믿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받고 안수받을 때 처음으로 성령을 받았다(행 19:6). 이와 같이, 이미 지상에 오신 성령께서 교회의 새 회원이 되는 이의 심령 속으로 들어가시는 것이다.

성령세례

성령세례의 의미

그러면 성령세례란 무엇인가? 성령세례란 전통적으로 생각해 온 대로 성령께서 신자들 속에 처음으로 들어오시는 사건인가, 아니면 오순절파나 은사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대로 이미 믿어 구원받은 자들이 처음으로 성령 충만함을 얻는 것인가?

성령세례라는 말은 신약성경에 사도행전 1:5과 11:16과 고린도전서 12:13에서만 나온다. 사도행전 1:5의 성령세례는 오순절 사건을 가리켰다. 오순절의 성령세례는 성령께서 신자 속에 처음 들어오신 사건인 동시에 충만히 부어지신 사건이었다(행 2:4). 사도행전 11:16의 성령세례는 성령께서 고넬료의 가족들에게 처음 들어오신 사건이었다. 이 경우에는, 사도행전 1:5의 경우와 달리, 예수 그리스도를 처음 믿는 자들에게 일어났다. 마지막으로, 고린도전서 12:13의 성령세례는 그리스도와의 신비적 연합을 의미한다. “[우리가]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동일한 사건이다.

이상의 세 구절을 다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은 성령세례가 성령께서 신자들 속에 최초로 들어오시는 사건이라는 전통적 개념이다. 이것은 앞에서 말한 오순절 사건의 일반적 의미와 동일하다. 성령세례란 성령께서 신자들 속에 처음 들어오시는 사건이다. 그것은 곧 신자의 중생 사건과 동일하다. 신자는 중생 시 성령을 받으며 그것이 성령세례인 것이다. 중생 시 받는 성령을 성령세례라고 부르는 것은 그 시간 성령께서 우리의 더러운 죄를 씻으시고 우리의 죽었던 영혼을 살리시기 때문이다. 그것은 성령의 구원하시는 사건이다.

오순절파는 사도행전 1:5에 근거하여 신자가 두 번째의 경험으로 성령세례를 받는다고 주장하지만, 오순절 이전의 제자들과 오늘날 우리는 상황이 다르다. 오순절 이전의 제자들은 성령을 받기 전이었지만, 오늘 우리는 믿을 때 이미 성령을 받았다.

성령세례의 시간

성령세례의 시간에 관해서는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사건 이전과 이후를 구분해야 한다. 오순절 사건 이전에는, 사람들이 예수 믿은 후에 성령을 받았다. 제자들은 성령을 받기 전에 예수님을 믿었고 이미 중생하였다. 요한복음 13:10,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요한복음 15: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그러나 제자들은 아직 성령을 받지 못했었고(요 7:39) 오순절 때에, 즉 주께서 승천하신 지 10일 후에야, 성령을 받았다. 그들의 경우 예수 믿는 때와 성령받은 때가 달랐다.

그러나 오순절 사건 이후에는 사람들이 예수를 믿을 때 성령을 받는다. 사도행전 10-11장의 고넬료의 경우, 예수 믿는 것과 성령 받는 것 즉 성령세례는 동시적이었다. 그것들은 별개의 사건들이 아니었다. 사도행전 19장에 기록된 에베소 제자들의 경우도,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듣고 믿고 그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안수받을 때 성령을 받았다. 고린도전서 12:13도 성령세례와 중생 사건을 동일한 사건으로 증거한다. “우리가 . . .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우리는 중생함으로 한 몸이 된다.

더욱이, 신약성경은 예수 믿는 자들이 다 성령을 받았다고 가르친다. 로마서 8:9,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성령]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에베소서 1: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성령의 내주(內住)하심이 인치심이다. 요한일서 2:20, 27,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고린도전서 12:3,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또 세례(洗禮)는 죄씻음을 뜻하는데, 신약성경은 예수 믿는 자들이 성령 안에서 씻음을 얻었다고 말한다. 그것은 성령세례와 같은 뜻이다. 고린도전서 6:11,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디도서 3:5,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단지, 사도행전 8:15-17에 기록된 사마리아 교인들은 예외적이었다. 오순절파는 이 구절에 근거하여 예수 믿는 것과 성령세례 받는 것이 다르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도행전 8:16은 사마리아 교회의 경우가 예외적임을 보인다: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라.”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이라는 표현은 사마리아 신자들이 성령받지 못한 것이 통상적 일이 아니었음을 나타낸다. 이 구절은 오순절 사건 이후에는 일반적으로 예수를 구주로 믿고 세례받을 때 성령을 받는 법인데 사마리아 신자들은 예수를 믿고 세례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성령을 받지 못했다는 뜻이다.

사마리아 교인들의 경우가 예외적이었던 이유는, 사마리아인의 특별한 신분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마리아인은 유대인과 오래도록 종교적 간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유대인 보기에 반쯤 이방인이었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만일 처음부터 사도들이 그곳에 내려가 전도해서 예수 믿는 자들을 얻었다면, 성령 강림도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한 자는 사도가 아니고 집사 빌립이었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사마리아인에게 성령 내리시는 일을 지연시키셨던 것 같다. 그러나 예루살렘에서 사도들이 내려와 그들을 위해 기도할 때 성령께서 강림하셨고 사마리아 교회와 유대 교회와의 영적 일체성이 확립되었다.

사도시대에 이 한가지 경우 외에, 신약성경은 전체적으로 오순절 사건 이후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때와 성령받는 때 곧 성령세례의 때를 분리시키지 않는다. 그러므로 신약성경은 신자들에게 성령을 받으라든가 성령세례를 받으라고 명령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그들이 예수를 믿었을 때 즉 중생했을 때 이미 성령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자는 다시 성령받기를 구하거나 성령세례 받기를 간구할 필요가 없다. 단지 이미 오신 성령께서 우리 속에서, 우리의 영육의 각 부분과 각 기능에서 충만히 역사하시도록 그에게 겸손히 복종하고 그를 의지해야 한다.

아브라함 카이퍼는 다음과 같이 적절히 말한다.

오순절에 성령의 부으심은 그가 교회 속으로 최초로 그리고 실제로 오심이었다... 그리스도의 몸의 새 부분들은 외부로부터 교회에 추가되며, 성령께서는 몸으로부터 새 지체들 속으로 부어지듯이 그 새 부분들 속으로 부어지셨다... 이것은 또한 오늘날 왜 새 회심자들이 오직 일상적인 방식으로 성령을 받는가 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또한, 성령의 다른 하나의 부으심이나 세례를 위한 기도가 부정확하고 참된 의미가 없다는 것이 명백하다. 그러한 기도는 실제로 그 오순절 기적을 부정한다. 왜냐하면 오셔서 우리와 함께 거하시는 그 분은 우리에게 더 오실 수 없기 때문이다.

H. C. G. 무울도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서신서들이 이미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 성령세례를 구하라고 가르치지 않는 것은 중요하다... 보다 더 효과적 봉사를 위해 성령세례를 기다리는 행위는 잘못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이미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을 이루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우리가 이미 소유한 것으로 충만해지기 위해 가장 겸손한 신앙으로 우리 영혼과 삶의 모든 길과 부분들을 여는 것이다.

레만 스트라우스도 같은 신념에서 말하기를, “성령세례를 중생 경험과 별개로 보는 가르침은 성경과 일치하지 않는다... 성령세례는 봉사의 능력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것은 하나님의 가족으로 다시 태어난 자들로 그리스도의 지체를 이루게 하는 것과 관계된다”고 하였다. 이와 같이, 성령세례는 신자가 예수 믿을 때 성령께서 그 속에 들어오셔서 그의 죄를 씻으신 사건이며, 신자는 예수 믿을 때 이미 성령를 받았고 또 성령세례도 받은 것이다.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

은사운동은 성령세례뿐 아니라, 성령의 은사, 특히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를 강조한다.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란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 고치는 은사, 능력 행함, 예언, 영 분별, 방언들, 방언 통역 등을 말한다(고전 12:8-10).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의 목적

사도시대에 주신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의 목적은 무엇이었는가? 성경 역사에서 기적은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한 방편이었다. 이와 같이 사도시대에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은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전달과 확증을 위한 것이었다.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예언, 영 분별, 방언들, 방언 통역은 계시 전달에 관계되고, 믿음, 병고침, 능력 행함은 계시 확증에 관계된다. 마가복음 16:17-20은 주께서 제자들에게 귀신을 쫓아냄, 방언, 뱀을 집거나 독을 마셔도 해를 받지 않음, 병 고침 등의 표적을 주심으로 친히 복음 진리를 확증하셨다고 말한다. 또 히브리서 2:3-4는 하나님께서 기적들과 성령의 은사들을 통해 복음을 확증하셨다고 말한다.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의 성격이 그러했으므로, 그것들은 비록 사도 시대의 성도들에게 어느 정도 경험되고 그들에 의해 행해졌을지라도 주로 사도들에 의해 행해졌었다. 그러므로 사도행전 2:43과 5:12는 사도들을 통해 기적들이 많이 일어났다고 증거하였고 고린도후서 12:12는 기적 행함을 사도의 표라고 말하였다. 사도들은 신약 교회의 기초를 닦은 자들이었으므로(엡 2:20),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과 기적 행하는 능력을 주심으로 하나님의 특별계시들을 전달하고 확증케 하셨던 것이다. 워필드는 적절히 말하기를,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은 특별히 사도들의 증명서이었다. 그것들은 교회를 설립하는 하나님의 권위적 도구로서의 사도들의 신임장의 일부분이었다”라고 하였다.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의 사라짐

언제 사라졌는가?

교회 역사는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이 사도시대의 교회의 특징이며 그 후 시대에는 사라졌음을 증거한다. 따라서 교회들은 전통적으로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의 중단 혹은 폐지를 인정하고 가르쳐 왔다. 우리는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에 대해 증거하는 신약성경의 말씀들을 들어 역사적 사실에 반론하려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역사상 그렇게 섭리하셨다면, 우리는 그것을 겸손히 인정해야 한다.

주후 4세기 말 콘스탄티노플교회의 대주교장이었던 크리소스톰은 고린도전서 설교에서 방언은 이미 그쳤고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하였고, 주후 5세기 초 유명한 어거스틴도 요한일서 설교에서 방언은 유대 기독교인에게 주신 초기 표적이었고 이전 시대에 이미 사라졌다고 말하였다. 칼빈도 사도행전 10:44 주석에서 “방언의 은사와 및 그 밖에 그와 같은 것들은 교회에서 오래 전에 중지되었다”고 말하였다. B. B. 위필드는 말하기를, “종교개혁 이후의 신학자들은 은사들이 사도시대와 함께 중지되었음을 매우 밝히 가르쳤다...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은 사도시대 교회의 특징이었고 오직 사도시대에 속하였다... 18세기 초에는, 은사들이 [교회 역사의] 처음 3세기 동안 계속되었고 4세기경에 사라졌다는 견해가 지배적이었지만, 이 견해는 사실과 조화되지 못한다”고 하였다.

왜 사라졌는가?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이 사라진 까닭은 두 가지 때문일 것이다.

첫째,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은 그 독특한 목적 때문에 사라졌다.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의 독특한 목적은 하나님의 특별계시들의 전달과 확증이었다. 그런데 그 목적은 사도시대에 신약성경의 기록이 완성됨으로써 성취되었다. 요한계시록 22:18-19는 하나님의 특별계시들이 성경에 충족히 기록되었음을 증거한다. 신약성경의 완성으로 하나님의 특별계시가 더 이상 주어질 필요가 없게 되었으므로,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은 사라지게 되었다. 워필드의 표현대로, “그것들[초자연적 은사들과 기적들]의 기능이 그것들을 특별히 사도교회에 제한시켰고 그것들은 필연적으로 그 교회와 함께 사라졌다.”

사실, 이것은 과거 수천 년 동안 자신의 뜻을 나타내신 하나님의 방식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선지자들을 통하여 자신의 뜻을 계시하신 후 그것을 책에 기록하게 하셨다. 그것이 구약성경이었다. 모세에게 주셨던 기적들은 그 후에도 반복되도록 의도된 것이 아니었고, 단지 모세에게 계시되고 확증된 하나님의 말씀이 성경에 기록되어 후시대에 전달되도록 의도된 것이었다.

둘째,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은 그것들의 일시적, 초보적 성격 때문에 사라졌다.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의 독특한 목적은 그것들의 일시적, 초보적 성격을 보인다. 초자연적 은사들은 영속적인 것이 아니고, 또 하나님의 계시에 관한 한 온전한 것도 아니었다. 그것들은 일시적이었고 부분적이었다. 고린도전서 13:8-12는 그것들이 어느 날 폐지될 것이며 부분적이며 어린아이의 일같이 초보적이며 놋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다고 증거하였다.

특히 그것들은 ‘온전한 것’이 올 때 사라질 것이었다. ‘온전한 것’은 하나님의 계시에 관한 한 신약성경의 완성을 가리킨다. 사도시대의 초자연적 은사들을 통한 계시의 단편적 내용들에 비교하면, 신약성경은 하나님의 충족하고 온전한 계시의 책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온전한 계시의 저장소인 신약성경이 완성되었을 때,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 곧 일시적이고 부분적이고 초보적인 성격의 것들은 자연히 폐지되고 사라지게 된 것이다.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은 건물을 지을 때 설치하는 비계목들에 비교할 수 있다. 비계목들은 건물을 짓기 위해 일시적으로 설치하는 것이다. 일단 건물이 완성되면 그것들은 철거되어야 한다.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도 그와 같았다.

유명한 설교자 스펄젼은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의 일시적이고 초보적인 성격을 나무의 지지대에 비유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만일 과수원에 나무를 심는다면 흔히 그 곁에 큰 지지대를 세워 붙들게 한다. 그러나 아무도 과거 50년간 있었던 사과나무를 지지하기 위해 기둥을 세우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늘날 하나님의 교회는 기적과 이상(異像)의 지지가 필요치 않는 나무다. 여러분은 이상보다 나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과 성경과의 관계는 마치 유치원과 대학교의 관계에 비유할 수 있다.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은 영적인 유아들을 위한 것이요 교회의 유아 시절을 위한 것이었다. 신구약성경을 가진 자들이 그러한 은사들을 구하는 것은 마치 대학생이 유치원에 등록하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우리는 초보적인 일들을 구하려 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영적으로 성숙한 단계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성령의 초자연적 은사들은 하나님의 특별계시의 전달과 확증을 위한 것이었고 사도 시대 이후에 사라졌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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