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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장로교신학회 학술발표회 - “창조와 신앙고백”

기사승인 2018.03.17  19: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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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조는 “성경이 가정 먼저 선언한 진리”이며, “성경은 창조에 대한 이해가 신학적으로 구속에 대한 이해보다 우선함을 분명히 한다.” 따라서 “신학의 출발점은 구원이 아니라 창조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이다.”

 

금일 3월 17일, 제31회 한국장로교신학회 학술발표회가 “창조와 신앙고백”이란 주제로 개최되었다.

구약신학에 있어서 창조의 진정한 회복(권오윤(ACTS) 교수의 발표에 이어 박덕준(합신대) 교수의 논평)과 공교회 신조와 개혁주의 신앙고백서에 나타난 창조교리와 현대적 도전들에 대한 재조명: ‘무로부터의 창조’(Ceratio ex Nihilo) 교리를 중심으로(김은수(백석대) 교수의 발표와 장호광(안양대) 교수의 논평), 그리고 루터의 창조론에 나타난 과학적 사고를 살펴보고(이신열(고신대) 교수의 발표와 백충현(장신대) 교수의 논평), 개혁신학의 관점으로 평가한 진화 창조론에 대하여 - 과학시대의 도전과 성경적 기독교의 응답(우병훈(고신대) 교수의 발표와 박재은(총신대) 교수의 논평) 등 소논문을 발표하고 이에 대해 논평하며 질의응답을 받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한국교회는 어느 나라보다도 더 많은 기독교적 형태를 갖춘 이단들과 사이비 기독교와 유사 기독교, 불건전한 신비주의, 혼합주의가 만연해 있다. 한국 기독교 역사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불건전한 메시지를 선포하는 이단적 가르침이 독버섯처럼 많이 자라나고 있는 이 때에 정통 개혁주의 신학사상에 입각한 창조론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신학적으로 대단히 중요하다. 박재은(총신대학교, 조직신학) 교수께서 논평하시며 언급하신 것처럼, 창조론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본질과 속성, 인간 존재의 목적과 구성, 그리스도의 성육신 이유, 구원의 목적과 과정, 인간들의 연대성, 하나님 나라와 교회의 보편성 등의 성격 또한 완전히 바뀌기 때문이다. 현재의 가장 큰 문제는 성경과 정통의 전통적 가르침을 수정하거나 거부하는 흐름을 소유하는 것이 시대적으로 트렌디(trendy)한 것이고 쿨(cool)한 것이라는 현대인의 나이브한 생각이 증폭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건전한 “성경적 대응”과 “신학적 응전”이 반드시 필요하다.

우병훈(고신대 신학과, 교의학) 교수가 발표한 것처럼, 개혁주의 언약신학은 인간의 언약적이며 영적인 연대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그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인류의 육신적 연대 역시 중요하게 생각한다. 헤르만 바빙크는 원죄를 올바르게 설명하기 위해서는 “실재론”과 “언약론” 모두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모든 인류가 가지는 언약적 통일성은 반드시 육체적 통일성의 기초 위에 수립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담은 모든 인류의 조상이어야 하고, 동시에 그는 모든 인류의 언약의 머리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조들이 가르치는 것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6장 3절, 웨스트민스터 대교리문답 22문답, 26문답, 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 16문답에서 아담의 죄로 인한 사망과 부패한 본성은 “보통 생육법으로 그들에게 태어난 모든 후손들에게 전수되었다.”라고 가르친다.

이처럼 개혁신학은 인류의 혈통적 연대성과 통일성을 전제로 하고, 동시에 언약적 연대성을 가지고 원죄론을 설명하기 때문에 아담이 모든 인간들의 공통 조상이며, 한 사람이며, 역사적인 인물이라고 가르친다.

헤르만 바빙크는 일찍이 이 지점을 날카롭게 통찰했다. “인류의 단일성”(the unityof the human race)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바빙크는 성경이 이 부분에 있어서 너무나 확고한 반면에, 성경 계시 바깥에서는 결코 인정된 적이 없었다고 주장한다. 일반 사상사에서는 “다원발생론”(polygeneticism)이 주된 견해였으며, 신학에서도 역시 “아담 이전의 존재들”(Praeadamitae)에 대해서 줄곧 얘기한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성경은 아담에게서 기원한 인류의 통일성을 가르친다. 바빙크는 다윈주의 진화론도 다원발생론적인 지적 흐름 가운데서 파악한다. 바빙크는 “다윈주의의 입장에서 인간의 발생과 연대에 대한 질문은 대답이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동물에서 인간으로의 전이는 아주 느리게 발생하기에, 사실상 첫 번째 사람은 존재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한다. 다윈주의 진화론에서는 역사적 아담에 대해서 성경적으로 말한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바빙크는 인류는 아담과 하와에서부터 나온 단일한 종족인 것을 주장한다. 그는 언어와 민족들의 다양성을 창세기 11장에서 인류 발전에 개입한 하나님의 행위로부터 도출한다. 반대로 바빙크는 창세기 10장은 모든 인류의 통일성을 견고하게 가르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바빙크는 “다윈주의는 이러한 통일성에 대해 사실상 그 어떤 반대도 제기할 수 없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인간들 사이의 차이보다 언제나 훨씬 더 크기 때문이다. 만일 인간이 동물로부터 진화될 수 있었다면, 왜 인간의 공통적 기원 그 자체가 반대를 받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쉽게 말해서 동물로부터 인간이 나왔다고 보는 다윈주의 진화론자들이 왜 한 인간으로부터 이 정도의 다양성을 가진 인간이 나올 수 없다고 보는지 알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어서 바빙크는 인간이 가진 육체적, 언어적, 문화적, 도덕적, 사회적, 정치적, 인지적, 종교적, 역사적 측면에서의 통일성과 공통점들을 자세히 열거한다. 그리하여 “성경이 가르치는 바 인류의 통일성은 이 모든 증거들에 의해 가장 강력하게 확정된다.”라고 주장한다. 앨빈 플란팅가도 역시 인간이 가진 (1) 도덕적 의무감, (2) 적절한 기능(proper function)에 대한 인식, (3) 지각 능력(cognitive faculty)은 자연주의로써는 설명이 안 되고, 오직 신에 의한 인간 창조를 가정할 때만 합리적으로 설명 가능하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바빙크가 말한 바와 매우 흡사하다.

바빙크는 인류의 단일성 문제는 너무나 중요한데, 그것이 종교와 도덕의 전제가 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첫째, 인류가 단일할 때 서로 연대할 이유가 있다. 둘째, 인류가 단일할 때 원죄의 교리가 성경적으로 설명된다. 셋째, 인류가 단일하다고 생각해야 그리스도의 속죄 교리도 설명된다. 넷째, 인류의 단일성은 하나님의 나라의 보편성의 근거가 된다. 다섯째, 인류가 단일하다고 생각해야 교회의 보편성 역시 설명된다. 여섯째, 인류의 단일성은 진정한 이웃 사랑도 가능하게 한다. 따라서 바빙크에 따르면, 동물로부터 다양한 경로로 인간이 진화되었다고 보는 견해는 복음의 핵심을 파괴할 뿐 아니라, 인간의 윤리·도덕적 토대 역시 무너뜨린다고 하였다.

칼빈은 과학을 비롯한 여러 학문들은 성령의 은사의 산물이라고 보았다. 그 학문들은 인간이 성령의 보편적 사역 가운데서 이성과 지성을 활용하여 정립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기독교인인 사람들이 자연 은사 또는 일반 은사를 통해서 밝혀낸 과학을 성령의 선물로써 그들의 기독교 신앙 여부를 떠나서 유익하게 사용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푸치우스(Gisbertus Voetius, 1589-1676)가 지적했듯이 인간의 이성은 죄의 영향을 받아서 잘못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연과학으로부터 반기독교적 유추가 나올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박형룡 박사는 벌써 한 세기쯤 전에 작성한 논문에서 성경을 과학 교과서로 봐서도 안 되지만, 반대로 과학에 휘둘리는 책으로 봐서도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진화론의 가설이 정말로 합리적으로 보이려면, 반드시 하나님을 고려해야 한다. 왜냐하면 순수하게 기계론적인 관점만으로는 진화의 시작과 과정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영적인 존재인 인간을 억지로 유물론적 진화의 틀 속이 넣으려는 시도는 쓸모없는 짓이다. 따리서 그렇게 하려는 시도는 반드시 영적인 것들을 부인하게 된다.”라는 통찰력 있는 말을 남겼다.

권오윤(ACTS) 교수가 언급한 바와 같이, 창조는 “성경이 가정 먼저 선언한 진리”이며, “성경은 창조에 대한 이해가 신학적으로 구속에 대한 이해보다 우선함을 분명히 한다.” 따라서 “신학의 출발점은 구원이 아니라 창조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이다.” 상실된 창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성경을 “신앙고백”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로 여기는 것이 필수적이다. 즉 “성경을 하나님의 권위 있는 말씀으로 보는 것”이다. 더 나아가 “성경적 논의”를 통해서 창조 교리를 회복할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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