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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는 왜 神이 되려 하는가? / 神이 되려는 군상들...

기사승인 2020.04.06  20:4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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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신인류(1990년 이후 出生아)들이 세상의 인기와 맘모니즘의 덫에 걸려 버둥대는 모습은 옛 구인류들의 생존권 때문에 버둥거리는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리라.

류언근 목사 / 한민족공동체 의장

기독교의 승리는 죽음이요. 높아짐의 섭리는 낮아짐이요. 목사의 삶은 십자가요. 성도 축복은 구별됨(시 1:1)임을 모르는 기독교인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참으로 묘한 현상은 이 모든 질서가 반대로 이루어지고 있음이다. 목사들은 높아지려는 임계점을 넘어서서 이젠 신이 되려고 몸부림치는 것이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세례 요한을 묵상해 보면 ‘여자가 낳은 자 中에 가장 큰 자’가 사실이라는 생각에 동감하고, 동의하고, 감격한다.

친구 목사 중에 인격적으로 선하고, 인간다운 면모의 친구가 어느 순간에 변하는 것을 보면서 인간은 사회와 환경적 동물이 맞는 듯하다.

그 착한 친구는 목사가 되고자 군소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가 되어 상가 건물 2층에서 개척교회를 하며, 수 년 동안 고생하면서도 함께 해외 선교회를 꾸려서 기도하고, 고민하고, 같이 웃으며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서 신도시가 계획된 곳에 땅을 사고서 신도시가 형성될 때까지 갖은 고생을 다하면서 기도하고, 인내할 때에는 머리가 다 빠질 지경으로 고생을 하더니, 신도시가 들어서면서 교회도 자그맣게 건축했다. APT 입주가 시작되자 요즘 말로 대박이 난 것이다. 사람들이 몰려드는 사태가 ‘홍수’ 그 자체였다. 교회를 증축하다 못해 다시 새로운 건물을 괴물처럼 크게 건축해야만 했다. 당연히 친구는 바빴고, 해외 선교를 하자던 약속은 깨어지고, 만날 수 없는 존귀한 목사가 되었다. 그러더니 그가 소속해 있는 교단의 총회장까지 올라섰다. 각종 방송에 출연하고, 방송 설교로 유명세를 과시했다. 각종 단체의 장과 이사장을 싹쓸이 하고, 그야말로 명성이 하늘을 찌르더니, 급기야 세를 불려 교단을 새로 만들고, 또다시 총회장에 등극했다. 이제 남은 것은 신이 되는 길만 남아 있다. 아니, 이미 신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 착하디착한 친구가 차라리 목사가 안되었으면 훨씬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

시기심도 아니고, 질투심도 아니고, 친구에 대한 연민인 것 같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세례요한에 비하면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흙수저로 태어나서 예수 이름으로 성공하더니(세상적 개념) 이젠 신의 자리를 넘보는 것이 아닌가! 기독교 문화를 통해서 세상을 바꿔보겠다고 말하기도 하고, 세상을 바꾸는데 최선을 다한다는 둥, 그럴듯한 큰소리치는 모습을 볼 때에 이단으로 드러난 집단과 무엇이 다를까, 싶은 생각이다.

지금 이 시대에 세례요한을 불러와 본다면 그는 잉태할 때부터 성령이 충만한 상태였고, 출생 불가의 출생이었다. 그는 예수님과 동시대의 인물로서 더 정확히 말하자면 예수님보다 6개월 앞선 형이었다. 그런데 말라기가 말한 엘리야처럼 나실인의 삶을 자처하여 광야로 나가 빈들의 삶을 시작하였다. 금수저인 출생 성분을 모두 버린 것이다. 제사장 가문과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영광의 그늘을 벗어난 것이다. 조용히 살아가기만 하면 가문의 모든 것을 통째로 누릴 수 있었으련만, 왜 이런 고행의 길, 은둔의 길을 택했을까? 누구를 막론하고 태생으로부터의 기득권을 포기하거나 벗어버리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리라! 아무도 가려고 하지 않고, 가지도 않는 길을 가는 사람들. 그들이 이 시대에도 존재한다면 그들은 정녕 하나님의 사람들이요, 세례요한의 길을 자초한 사람들인 것이다. 요즘은 몫 좋은 곳에 교회를 세우고,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면 OO전도 방법, OO전도 원리 등으로 제목을 붙이고, 힘들고 어려운 개척교회 목사들에게 세미나를 제공하고 교재 대금으로 몇 만원에서 몇 십 만원 씩 받아 대박을 터뜨리고, 그것을 전국으로 확산시켜 이 시대의 인기몰이를 하면서 이 시대의 루터요, 칼빈이요, 본 훼퍼가 환생했음을 은근히 보여주면서 신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신으로 군림하면서부터는 아무도 만날 수도 없고, 만나주지도 않는 귀하디귀한 최고 존엄의 자리에 이르고야 마는 것이다. 그런데 왜? 그 모양새들이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서는 것”으로 영감 되는 것일까?

세례요한은 시대의 기인으로 광야 생활을 하면서 물론 하나님과 깊은 교제의 삶을 살았겠지만, 사람의 인기와 선망을 한 몸에 받기 시작했고, 그의 회개운동의 트레이드마크는 물세례였다. 따르는 자뿐만 아니라, 밀착 제자들까지 생겨났다. 그 힘과 여세를 몰아 여우같은 헤롯을 끌어내리고, 빌라도와 담판을 짓고 더 나은 외교통상관계를 개선하든지, 아니면 로마와 맞짱을 뜨던지 해서 민족의 영웅으로, 제2의 엘리야로 아니면 메시야로 등극할 꿈과 포부를 가질 수 있었을 것인데, 요한은 그 길을 모색하지도 꿈꾸지도 선포하지도 않았다.

기독교의 승리의 본질인 장렬한 죽음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물세례에 흠뻑 취해 있는 弟子들에게 뒤에 오시는 분의 성령세례를 받을 것을 요청했고, 자기는 그분의 신발을 벗기고, 신겨주는 종이요, 노예보다 못한 자라고 사실적 고백을 하였다. 이것은 고등한 겸손이 아니다. 우리도 내면으로는 내가 저보다 낫다고 생각하면서 세례요한의 고백을 이용해서 “신들매도 감당키 어려운 자”라고 쇼적인 언어를 구사하기도 하지만 요한은 달랐다. 진정으로 예수를 높이고, 예수만을 위한 그 분의 길을 예비한 자였다. 이 시대의 진정한 목자의 모델이요, 바라봄의 대상이 아닐까!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그분을 위하여 존재하는 일꾼들이다. 내가 원치 않았으나, 높아졌다면 한없이 낮아지고 숨어 들어가고, 나 때문에 예수님이 가려지니 그것 또한 불경스러운 죄라고 생각되어야 할 텐데, 어떻게 하든지 높아지려 하고, 어떻게 하든지 한탕 재미를 보려고 하고, 대박을 치려고 몸부림을 치니, 그것 또한 한강 모래사장을 가득 메워 군중을 웃기고 울린 시대의 生神강림의 감람나무 박태선과 다를 바가 무엇이며, 스스로 신이 된 안상홍이나, 신천지의 교주와 다를 바가 무엇인가!

그들을 이단으로 주목하여 시선을 빼앗기고 있을 때, 수풀 속에서 독버섯처럼 자생하는 것처럼 제도권 교단과 기성교회의 음지에서 자라난 신인(神人)들을 무수히 발견하게 된다.

“가만히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에게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마 13:29-30)”

우리 모두는 세례요한보다 더 클 수는 없는데, 예수님보다 더 크고, 더 위대한 신이 되려하니 이것이 무엇일까? 정녕 배도의 세대 풍경이 아닐까?

초림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러 보낸 자가 세례요한이라면, 재림하실 예수님의 길을 예비할 자들은 이 시대의 목사들이 아닐까? 그렇다면 세례요한이 목사들의 모델이요, 성도들의 삶의 바라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기인의 삶을 요구할 수는 없으나, 신이 되려는 욕망은 접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교인만 몇 백 명 운집해도 신이 되고, 설교만 잘해도 신이 되고, 남다른 학위만 가져도 신이 되고, 방언만 잘해도 신이 되고, 안수기도로 병만 나아도 신이 되어가는 세상은 요즘 유행되는 시대정신과 유사하다. 몸神, 공부神, 얼짱神, 海神 등등. 모든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삶에 권태를 느꼈는지 모두 다 神이 되려하는 욕망에 사로잡혀있다.

물론 스포츠영웅들이나 예술적 문화적 천재성을 가진 자들이 부럽긴 하다.

요즘 골프 여걸들이 참으로 많은데, 세계적인 기량을 가진 선수들을 보면서 나 또한 춘몽 같은 꿈을 꾸기도 한다. 보스톤에 사는 친구 장로와 중학시절 퍼팅장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꾀나 적중률이 높았는데, 그때 그 길로 갔으면 지금쯤 골프 영웅의 인기를 누릴 수 있지 않았을까! 아니면 사격실력이 뛰어난 군 생활을 떠올리며 사격이나 양궁 선수가 되었으면 지금쯤 꾀나 호화로운 생활과 여유를 갖고 살지 않았겠나 싶은 상념에 잠기기도 한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일장춘몽과 같은 세상의 부귀와 영화의 꿈이라는 사실을 알았고, 영원한 나라와 영광스런 그분의 나라 국적을 취득했으니 부러운 것도 아쉬울 것도 없음이 마냥 기쁘고 행복하다.

요즘 신인류(1990년 이후 出生아)들이 세상의 인기와 맘모니즘의 덫에 걸려 버둥대는 모습은 옛 구인류들의 생존권 때문에 버둥거리는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리라.

조용히 묵상해 보자. 내가 세례요한으로 출생하였다면......

금수저 물고 살았으리라! 제사장 세습하며 살았으리라! 아니어도 광야에서 데모 군중 이끌며 혁명군 대장으로 살았으리라! 헤롯을 향하여 화살을 겨누었으리라! 로마를 향하여 외교담판을 맞짱 떴으리라! 그 군중과 무리와 인기로 정당을 만들었으리라! 그 함성으로 정치를 했으리라! 그 군중의 힘으로 교회를 개척하여 세계적 교회를 이루고, 교주 아닌 교주로, 神 아닌 神으로 좌정하였으리라! 그 권세로 경제를 손에 쥐었으리라! 권력을 잡았으리라! 그리고 사정없이 휘두르고, 쓸어버리고, 잘라버리고, 뻐겼으리라! 또다시 피어오르는 세력과 맞짱 뜨고, 기존 기득권 세력과 맞짱을 떴으리라! 아무도 견줄 자도 겨룰 자 없이 오직 하늘의 신과 견주고 겨룰 것이리라! 그러니 서례요한으로 태어나지 않음이 얼마나 감사하고, 고맙고, 기쁜 일인가!

류언근 목사 / 한민족공동체 의장/ 총신대 대학원 / 연세대 대학원 / 합동신학대학원/ 북경대 경제대학원 / 서울대 국제대학원/히브리대 기밧하임기브츠연구 /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미네소타 AACF THERAPIST / PAXdaym제자육성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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