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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가출, [전능신교] 탈출기... 사교(邪敎)의 실상 고발

기사승인 2021.01.26  20: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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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들은 이런 일들을 겪었다...

유영희(51세, 가명) 씨는 과거 [전능신교] 신도로 있을 당시 11년 동안 가출한 적이 있었다.
최근 사교(邪敎) [전능신교]로 인한 상처를 치유하고, 자기와 같은 수많은 피해 가족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기 위해, [전능신교] 내에서 있었던 일들을 간증하기로 결심을 하였다.
자기의 간증이 현재, 장기간 고통을 받고 있는 피해자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하였다.

 

“그들은 이런 일들을 겪었다...” 

원래 나는 기독교인이었다. 남편이 평소에 자상한 면이 없었고, 아내인 나에게 관심도 없었으며 가장으로서 책임감도 적었다. 그 때문에 어려운 생활을 했었다. 그러다가 교회에 다니게 되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예수님께 남편을 변화시켜 달라고 기도했고, 그렇게 될 것을 믿었다.

정신적으로 의지할 데가 생기니까 마음도 평안해지고 매사가 즐거웠다.

그러던 가운데 지인(知人)이 자기와 함께 장사를 하자고 제안을 해왔다. 소규모 무역업이었다. 해외에서 수입된 물품을 파는 일이었다.

그렇게 동업하던 사람에게서 신앙에 대한 교의를 듣게 되었다. 그것이 지속적으로 이어졌다. 나중에 책을 보여줬는데, 바로 [전능신교] 서적들이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전능신교]를 믿게 되었다.

그들은 나에게 인적이 드문 먼 곳으로 오라 하여 강의를 듣게 하였다.

처음, [전능신교] 강의를 들었을 때는 기독교 신앙과 차이가 있어서, 그들이 틀리다고 생각했다.

▲ 경기도 안산시 원곡동 소재, 전능신교 신도ㅡ 영상강의 시청 중

“종말 임박했다며 공포감 조성, 심판 위협” 

그런데 그들은 여러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믿음을 강요하였다. 의심하며 잘 믿지 않으려 하면, 곧 재난이 닥친다며 공포감을 심어주고 위협하였다. 지옥으로 떨어져 재난 속에서 괴멸된다고 하였다.

처음에는 소책자를 보며 공부하게 되었다. 내용은 주로 말세의 재난에 대하여, 그리고 예수가 두 번째로 재림하였다는 내용이었다.

종말이 임박했다면서 오로지 “전능신”을 믿어야만 구원을 받게 되고, 믿지 않으면 모두 괴멸된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에게 “전능신”의 마지막 사역이라고 하였다. 그렇게 차츰 차츰 믿게 되었고, 가정의 일에는 그리 크게 관심을 두지 않게 되었다.

다만, 어떻게 재난에서 벗어나 구원을 받을 것인가에만 모든 생각이 집중하게 되었다. 원래 기독교인이었기 때문에 신앙 용어들을 알고 있었으니, 그들의 가르침들을 잘 흡수하였다.

 

[전능신교]에 깊이 빠질수록 가족과의 관계는 멀어져 

기독교회에 다닐 때에는 좋은 아내, 좋은 딸, 좋은 어머니가 되기 위하여 노력했지만, [전능신교]를 믿게 되면서부터는 종말이 임박했다고 하니, 가족들을 살피기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을 구출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가정을 버리고, 사람들을 구원하려 했다. 인생관이 바뀐 것이다.

가족들은 이전과 달라진 변화된 나의 모습을 보고 염려하며 더 이상 [전능신교]를 믿지 말라고 권면하였다.

하지만, 나는 종말 심판 재난에서 구원받지 못할까봐 두려웠다.

많은 사람들을 구원해야 된다는 강한 집념에, 가정은 멀리하게 되었고, 결국 가출을 단행하게 되었다. 가정을 버리고 많은 사람들을 구출하기 위해 떠난 것이다.

▲ 경기도 안산시 원곡동 소재, 전능신교 신도ㅡ 책을 찾고 있음

“가출종용, 선민으로서의 본분 요구” 

당시에는 오직 “전능신”을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 두 부류로 나뉜 이분법적 사고가 가득 찼었다.

가족들이 나에게 “전능신”을 믿지 못하게 하는 것은 사탄의 역사로, 나를 핍박하는 것이라 여겼다.

이전에는 모두 사랑하는 마음으로 남편, 아들 딸, 시아버지, 시어머니를 대하였는데, 후에는 “전능신”을 믿는 것이 가장 우선이 되었고, 가장 중요한 일이 되었다.

[전능신교]에서도 가족들이 반대하면, 가출을 조장하며 선민으로서의 본분을 다 할 것을 요구하였다.

또한 내가 찬양대 지휘자이었기 때문에, [전능신교]에서도 나를 이용 가치가 있는 사람으로 여겼다. 만약 무능한 사람이었다면 큰 관심을 두지 않았을 것이다.

[전능신교]에서 가출 조장하며 호출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필요에 합당한 사람들이다.

즉, 비교적 소통에 능하고, 강의를 잘 하여 새로운 사람들을 끌어들일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을 내부적으로는 “관개(浇灌)”라고 한다.

젊은 형제자매들은 밖에 나가서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능력이 수월하다. 하지만 연세가 많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신체 건강 상황이 허락되면 접대 가정을 꾸리게 하거나, 밖에서 집을 세 맡게 한다. 만약, 순종하지 않거나 거역하면, 다시 말해, 믿음이 경건하지 않으면, 절대 가출하도록 요구하지 않는다. 후일에 꼬투리가 잡힐 수 있기 때문이다.

 

충성 맹세하는 “서약서” 강제 

나는 가출 후, 타 지역으로 가서 접대하는 집에서 일을 맡게 되었다. 그곳에서 리더로 있었다.

가출한 후에는, 당연히 자유를 제한 당했다.

우리는 모두 아래와 같은 “서약서”를 써야 했다.

“이미 신을 따르기로 결정한 이상 죽어도 뒷걸음을 치지 않으며, 만약 뒷걸음치면 곧바로 신의 저주를 받게 되리라.”(既然跟従神, 死也不回頭, 回頭就要遭神詛咒。)

 

가족들과는 연락을 할 수 없었다. 또한 연락도 하지 못하게 했다.

매일 강의를 듣게 하고, 기도하고, 책을 보고, 전도 모임을 가졌다.

사교(邪敎) 서적에는 텔레비전을 보지 말며, 핸드폰을 하지 말라고 쓰여 있다. 기도할 때에도 오직 책만 보게 하고, 다른 것은 모두 허락하지 않았다.

내가 가출할 때, 아들은 10세이었고, 딸은 겨우 5세였다. 떠날 때, 헤어지기 아쉬워 마치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처럼 슬피 울었다. 하지만 “전능신”의 가르침에, 마음 속에 신(神)을 가득 담아야 한다고 했기에, 신(神)께 보답하기 위해 작은 가정을 버리고, 많은 사람을 구원하러 떠나야 했다. 때문에 아무리 헤어지기 아쉽더라도 반드시 떠나야 했다.

“전능신”은 큰 사랑을 위해, 작은 가정을 버리고 가출하여, 더 많은 사람들을 구하라고 하였다.

 

“우리 가족은 사기당한 피해자였다.” 

가출 후에 지냈던 곳은 딱히 한 곳으로 정해지지 않았다. 위치는 고정되어 있지 않았고, 보통 집에서 100여리나 혹은 2, 3백리 거리였다. 어디에 수요가 생기면 곧 그 곳으로 가야 했다.

그곳에서의 생활은 매일 아침 5시 30분에 일어나 신(神)의 말씀을 읽고, 기도한다. 그리고 세수하고 아침밥을 먹은 후, 자전거를 타고 새로운 사람을 찾으러 가거나 혹은 모임을 갖는다. 매일 같은 패턴이었다. 주로 신분증 검사가 필요 없는 자전거를 이용한 것이다.

신(神)의 말씀에서는 집에 돌아가 아이를 보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가정을 버려야 했다. 부모 자식 간 천륜도 끊어야 했다. 오직 신(神)을 만족시켜야 한다고 했다.

“전능신”은 인간의 감정으로는 사람을 구원하지 못한다, 재난이 닥칠 때, 어느 누구도 구원할 수 없다, 오직 신(神)을 따라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 집안 일은 신(神)께서 모두 대신 보상해주시겠다고 했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을 미혹했다.

 

“외부 세계와는 단절, 매일 교리세뇌” 

만약 성실하게 믿지 않고, 진심으로 추구하지 않는다면 곧 도태되고, 지옥에 떨어져, 구원받을 수 없게 된다고 하였다. 외부 세계와는 단절된 채 “전능신” 말씀과 가르침에만 집중하게 했다.

매일 반복되는 생활을 했는데, 모임을 갖는 곳은 세 맡은 집이거나, 어느 곳은 온 가족이 모두 “전능신”을 믿는 집이었다. 그런 집에서 모임을 가졌다. 보통 3, 5명이 함께 모였다.

집세는 헌금으로 모아서 냈고, 일상 생활 비용은, 우리처럼 가출한 사람들인 경우, 접대 가정에서 책임지고 주식을 해결해주었다. 보통 접대 가정은 부부가 모두 [전능신교]를 믿는 가정들이었다. 그런 가정들이 접대 가정이 되어 우리의 주식을 해결해 준 것이다.

입는 옷은 모두 형제자매들이 공급해 주었는데, 사이즈에 따라 맞는 사람들이 입었다. 매달 똑 같이 생활비를 주어 자기의 생활용품을 살 수 있게 했다.

그래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입지 못하고... 그 고생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이용 가치가 있는 사람만 요구... 늙고 병들면 퇴출 

“전능신” 사교(邪敎)는 오로지 이용 가치가 있는 사람만 필요로 했고, 이용 가치가 없으면 도태시키고 아예 요구하지도 않았다.

신도들이 질병에 걸리면 신(神)께서 시험하고 있으니, 자기 자신을 반성하고 회개해야 한다며, 신심으로 자신의 병을 치유해야 한다고 했다. 교회는 관여하지 않았다. 한 자매가 맹장염에 걸렸었는데 접대 가정에서 의료비를 지불해 줘서 치료받았다. 그때 아주 고생스러웠다. 감기 같은 작은 병은 자기 스스로 이겨내야 했다. 경제 수입이 없으니 말이다.

같은 마을에 있는 가출한 신도가 있었는데, 그녀의 병이 매우 위중해지자 바로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녀를 아들의 집 문 앞까지 데려다 주고, 자기 스스로 돌아가게 했다.

그 외에도 병이 위중하여 죽게 되면 곧바로 도태시켜 집으로 돌려보냈다. 더 이상 이용 가치가 없으면 퇴출시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가출한 지 여러 해가 지나면, 다시 집에 돌아가더라도 가족들이 받아주지 않을까봐 계속 그곳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아르바이트를 하며 집세를 내려 해도 교회가 동의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래도 말을 안 들으니 소량의 돈을 주고 쫓아내기도 하였다.

어느 자매는 가출한 지 수년이 지난 후에, 다시 집에 돌아가니, 이미 남편이 다른 여자와 결혼하여 새 살림을 꾸린 상태였다. 그녀는 갈 곳이 없어 다시 전능신교회로 돌아갔지만, 교회는 다시 그녀를 쫓아냈다. 하는 수 없이 친척집에 가서 투숙하면서 식당에서 일하며 살았다. 아주 불쌍했다.

그러한 일들을 목격하면서 나의 마음도 자꾸 의심이 생기고, 이런 생활에 회의를 느끼게 된 것이다.

 

“인간의 감정은 버리라 한다” 

전 가족이 [전능신교] 신도일이라도 각자 헤어져서 생활하게 한다. “전능신”은 감정을 버리라고 한다.

“전능신” 안중에는 인간의 감정은 적(敵)이다. 감정은 난관을 넘을 수 있도록 사람을 도와주지 못한다고 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사랑이 있으면 바로 감정이 생기고, 감정이 있게 되면 가족을 구원할 수 없으며, 복음 전파만이 신(神)의 자녀로서의 사명이라고 한다.

 

“전능신” 사교(邪敎)의 가르침은 기독교와 다르다. 

기독교는 사람을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하고, 또 신(神)을 사랑하라고 가르치지만, “전능신”은 기독교는 지나간 옛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지금은 오직 “전능신”을 믿어야만 된다고 한다.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 두 가지 부류로 나누는데, 감정이 있으면 안 된다고 한다. 기독교와 상반되는데, “전능신” 사교(邪敎)는 인정미가 없다. 당시에도 이해되지 않을 때가 있었지만, 오직 “전능신”께 순종해야만 구원받을 수 있고, 반드시 복종해야 한다고 강요하기에 고민 끝에 받아들이고 말았던 것이다.

 

“신(神)은 징벌과 저주를 내리는 두려운 존재로 만들어” 

처음에 ‘서약서’를 쓰는 것도, 징벌이 두려워 작성하게 된 것이다.

“전능신”을 믿는다면 신을 사랑해야 하고, 신을 두려워해야 한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곧 징벌과 저주를 받게 되고, 구원을 받을 수 없게 된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곤란하더라도 절대로 신께 복종해야 하고, 그래야만 구원받아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가출한 후, 다른 가정이 단란히 모여앉아 화기애애하게 이야기 나누는 장면을 볼 때마다 집에 있는 부모와 자식들이 그리웠다. 하지만 신(神)이 집안 모든 일을 책임져 준다고 했고, 당시에는 나의 포교활동 효율도 좋다보니, 집에 돌려보내지 않았다. 또한 평소에 아주 바쁘게 보내다보니 가족들을 그리워하는 마음도 지나쳐버리곤 하였다.

 

“말세사역 곧 끝난다더니, 아직까지도 안 끝나” 

[전능신교]에서는 처음 믿을 때부터, 신(神)의 사역이 곧 끝나게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큰 재난이 곧 닥쳐오니, 신의 새로운 사역에 발맞추어야 구원을 받게 되고, 빨리 사람을 구원해야 하고, 믿지 않으면 곧바로 멸망받게 되고, 믿으면 영생을 누리게 된다고 한다.

계속해서 사역이 곧 끝난다고 했지만, 아직까지도 끝나지 않았다.

외부 세계와는 접촉할 기회가 없다. TV도 보지 못하고 핸드폰도 메모리 카드를 자주 교체한다. 전화 할 때마다 암호를 풀고 했다. 그러면서 매일같이 “전능신”의 말씀을 보고, 찬양을 듣고, 모임을 가졌다. 그러니 외부 소식은 듣지 못했다.

 

“가출하여 해외로 출국하는 사람들의 조건은?” 

젊고, 컴퓨터에 능숙하고 번역할 줄 알고, 포교활동 능력이 뛰어나고, 효율성이 높고, 절대로 순종해야 출국하게 한다. 순종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내 주위에서 출국하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아주 적었다.

만약 출국했다가 도태되면 생활은 자기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내가 집에 돌아왔을 때...” 

아들은 결혼하여 아이가 있었고, 딸은 16세였다. 남편은 이미 세상을 떠났고, 집은 빈털터리였다. 가출한 지 11년이 되다보니 딸은 나에 대한 감정이 별로 좋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집에 돌아오는 것을 환영했다. 집안 어른들도 나에게 잘 대해주었다.

나는 집에 돌아온 후, 부지런히 집안 일을 했고, 노력하여 생활비를 벌면서 그동안 다 하지 못한 의무를 만회(挽回)하려고 했다. 지금은 딸과의 감정은 회복되었다. 가족들도 모두 화목하게 지내고 있다.

내가 집에 돌아온 후에도 [전능신교] 신도들은 계속해서 찾아와 “전능신”을 믿으라고 하였다. 하지만 나는 거절했다. 그들은 이용 가치가 있으면, 반드시 다시 찾아온다. 만약 가족들이 반대하면, 가출하여 본분을 지키라고 한다. 지속적으로 가출을 종용하였다.

나에게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전능신교]에서 아직 이탈하지 못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잘 대해 주면서 천천히 감화시켜, 설득하며, 도리를 가르쳐야 한다. 아무리 사교(邪敎) 신도라 할지라도 강압적으로 대하거나 난폭한 말을 하면서 상대하면 안된다. 그렇게 하면 그들은 더 가출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신도들이 지속적으로 찾아오면, 어떻게든 그들과의 연결고리를 끊어버려야 한다. 동시에 그들보다 더 지식을 쌓고, “전능신”의 모순점들을 분석하여 알아야 한다.

 

[전능신교] 신도들에게 ‘코로나19’는... 

금년에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지나갈 것이다. 그러면 [전능신교] 신도들은 반드시 또 가출을 단행할 것이다. 종말이 임박했다면서 더 많은 사람들을 구출해야 한다면서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그들을 개종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전능신교] 신도들에게 ‘코로나19’는, 모두 과학자들과 의료진들이 사람들을 살리기 위해 노력한 결과로 잡은 것이지, 그들이 믿고 따르는 “전능신”이 구원해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 주어야 한다.

더욱 많은 사람들이 사교(邪敎) [전능신교] 집단에서 구출되어 가정으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바란다.

오명옥 omyk7788@daum.net

<저작권자 © 종교와 진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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