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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억울한 죽음을 알려주세요”... [육빛나라 감기 사망사건] 반석교회 이인강, 당신이... 목사입니까?

기사승인 2021.06.21  18: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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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신이 부활할 거라며 수일 동안, 교회 2층 방에 방치 지시

▲ 사망한 육빛나라 가족들

언니의 억울한 죽음을 알려주세요.

 

안녕하세요. 이 글을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할지요...
지난 2005년 9월경 인천반석교회(연수동) 때부터 저희 가족은 이인강 교회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때 제 나이 21살이었고, 한 살 터울인 친언니(亡 육빛나라)는 당시 나이 22살이었습니다. 언니는 인천교회 2층 203호에서 죽음을 맞이했었습니다. 이 억울함을 어디서 풀어야 하나요... 죽은 나사로가 살아나는 것처럼 시체를 방 안에 5일 동안 방치했다가 점점 부패하는 시체를 보다 못해, 의사를 불러 사망 진단서를 작성하고... 그렇게 검안서를 작성한 후, 밤에 교인 몇몇 분들이 들것에 실어 인천 가족공원에서 화장시켜 합동 매장했습니다.
언니가 죽고 나자, 저는 반석교회에서 운영하는 서울 불광동 2층 회집 ‘기쁨미소’ 식당에서 서빙을 하게 되었고, 엄마는 야채 장사와 ‘기쁨포차’ 주방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무임금 노동을 하였습니다. 그렇게 몇 년간 일을 하다, 2012년경 기회를 엿보며 엄마와 맨몸으로 도망을 쳤습니다...잊고 살아야지 하며 매일 눈물로 지새우다 이렇게, 용기 내어봅니다... (동생의 제보)

 

▲ 사망 전, 육빛나라... 당시 38kg

그 교회 사망사건... 묻혔다!

육빛나라(1984년생)는 운동도 잘 하던 건강한 청년이었다. 2006년 가을 무렵부터 감기에 시달렸으나, 이인강 목사는 자신의 눈안수 기도로 나을 수 있다며, 약물치료나 병원치료는 신앙이 없는 행위라 했다.

감기를 앓던 빛나라는 2007.04.16. 서울 은평보건소에서 폐결핵 진단을 받았다. 이후에도 병원치료는 받지 못했다. 이인강의 말에 순종하는 것이 믿음의 행위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3개월 후, 인천 반석순복음교회(담임 이인강, (現)순복음은혜충만교회) 203호에서 피를 토하며 숨을 거뒀다.

이후 부활한다며 5일간 시신 방치... 당시 상황 ‘사실확인서’ 작성한 증인만도 10여 명이 넘는다.

이인강은 사망한 빛나라가 부활할 것이라며, 5일 동안 안방에 방치하도록 지시했고, 그 과정을 어느 신도를 시켜 동영상으로 촬영하기도 하였다.

▶ 지난 날, 이인강의 후계자로 지목받았던 어느 부교역자의 ‘사실확인서’ 내용 일부이다. 

인천 연수동 반석순복음교회(현, 순복음은혜충만교회)는 지하가 예배당이고, 1층은 교회 식당, 2층과 3층은 7세대가 살 수 있도록 되어 있었고, 4층은 교회 사택이었다.

육빛나라는 어머니, 여동생과 함께 2005년 9월, 203호에 들어와 살게 되었다.

당시 이인강은 ‘신사도영선훈련원’도 개원하여 서울과 인천을 오가며 집회를 인도하던 때였다.

육빛나라 가정이 교회에 들어와 산 지 2년이 될 무렵인 2007년 6월경, 빛나라는 감기가 지속되었으나 치료를 하지 않아 결국 결핵 판정을 받았다. 그 때부터 이인강은 집중적으로 눈안수 기도를 하였다. 어머니 박 집사는 혈육끼리는 떨어져야 한다며 거의 신경을 못 쓰게 하였다. 간병하는 이도 따로 있었다.

이인강은 육빛나라를 그 시험에서 통과하게 하여 자신과 같은 능력(?)의 목사를 만들겠다고 했다. 그래서 빛나라도 이인강의 말을 찰떡같이 믿고 시키는 대로 복종했던 것이다. 그러나 빛나라는 차츰차츰 집 밖 출입도 못하게 되었다. 이인강은 당시 매일같이 203호에 방문하여 눈안수 기도와 육빛나라의 가슴을 내리치는 기도를 하였다. 인천집회 때는 지하 예배당으로 남자 부교역자들이 업고 다녔다.

그러다가 결국 육빛나라는 피를 토하며 사망(2007.07.30.)하고 말았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이인강은 육빛나라가 다시 살아날 것을 주장하였다. 203호 안방에 5일 동안 시신을 방치했다. 본인도 사망한 날부터 3일 간 방문하였다.

이인강은 서울교회 교인들을 데려 와 육빛나라를 보여주면서 살아날 아이의 얼굴을 보라, 입술이 아직도 빨갛지 않느냐면서 다시 살아날 것을 주장했다.

본인은 빛나라가 사망한 지 3일 째 되던 날, 수요예배를 마치고 밤 11시쯤, 203호에 들어가 이인강 대신 시신을 지켰다. 시신의 코에 날파리가 날아들기 시작하면서 어머니 박 집사가 이를 차단하고자 코에 가재 수건을 올려놓았었다.

그리고 사망 5일 째 되던 2007. 08. 03. 이인강의 지시에 따라 교인들도 모르게 새벽예배 시간을 이용하여 육빛나라 관을 교회 봉고차에 실어 부평 화장터로 옮겼다.

이인강은 장례를 치른 그 이후에도 공식적으로 육빛나라의 사망 사실을 교회 앞에 알리지 않았다. 그저 과거지사로 덮어질 것을 바랐던 것 같다.

ㅡ 그녀의 소망대로 실제, 빛나라의 사망 사건은 묻혔었다!

▲ 사망 4개월 전, 육빛나라(왼쪽 흰옷 입은 장발의 청년)


딸기우유 2개와 어머니

14년이 지난, 2021년 6월 1일, 어머니 박 집사는 빛나라가 좋아하던 딸기우유 2개를 들고, 인천 가족공원 합동분묘를 찾았다. 장례 후 처음이다. 옮긴 장소도 모르고 있었다. 한참을 헤매다 합동분묘 장소 계단을 오르는데, 다리에 힘이 풀리고, 분향단이 보이자, 그 자리 입구에 털썩 주저앉았다.

연신 거친 숨을 쉬다가, 겨우 힘을 내어 분향단 앞에 나아가 우유 두 개를 놓고는... 그대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셨다...

.............

그때, 지켜주지 못 했던 미안함과 죄책감 같은 것들 때문에, 그동안 무척이나 힘든 세월을 보냈다. 폭행으로 인한 육체적 고통과 과도한 노동, 정신적 학대로 인한 후유증으로 지금까지 정상적 사회 적응도 어려운 상황이다.

그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몸 이곳저곳에 남아 있었다.

▲ 14년 만에 찾은 딸의 유골이 묻힌 합동분묘 앞

 

당시, 엄마는 이인강의 말을 믿었다.

“엄마, 아빠에게도 엄마, 아빠라고 부르지 못하게 했다. 저는 딸에게 밥도 제대로 못 해주고, 챙겨주지도 못했다. 죽은 딸 빛나라는 건강했던 멀쩡한 청년이었다. 2006년 가을 경, 기침 감기에 시달리게 되었다. 반석교회는 약을 먹거나, 병원에 가면 믿음이 없는 것으로 찍히게 된다. 그것이 두려워 딸도, 저도, 약을 먹을 수도, 병원에 갈 수도 없었다. 아픈 딸인데도 제대로 챙겨주지도 못했다. 보건소에서 폐결핵 판정 받은 것 모두 이인강에게 보고됐다. 그런데도 2개월 동안 하루에 3번씩 눈기도 받자고 했다. 그 눈기도로 빛나라의 병을 고치려고 했다... 누워있는 빛나라에게 눈기도를 한 후, 귀신 나가라 소리치면서 가슴을 주먹으로 위에서 내리치면서 기도했다. 아이는 그야말로 뼈만 남을 정도로 말라갔다. 당시 몸무게가 38kg이었다. 이인강은 귀신만 쫓으면 된다고 했다. 그렇게 2개월 동안 하고는 다음 날인, 7월 31일, 12시경 빛나라가 피를 토하며 사망하게 되었다. 사망 전에야 병원에 데려가든지 알아서 하라고 했다.”

“기도를 받으면, 둘째 딸 빛나라가 나을 줄 알고, 더욱 교회 일을 열심히 했다. 오전에는 노상에서 야채장사... 쫓겨 다니면서 더 열심히 해서 매출액을 이인강에게 갖다 주었다.”

“7월 30일 사망 후, 8월 1, 2, 3, 4일, 5일 동안 시신을 방에 방치했다. 그때까지도 빛나라는 다시 살아난다고 했다. 그러나 딸은 살아나지 않았고, 무더운 날씨에 부패해서 파리가 끓어 코에다 수건을 덮어놓기도 했다... 악취가, 썩는 냄새가 진동하여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어서 의사를 불러 사망 날짜를 2007년 8월 2일로 속이고, 감기로 갑작스레 죽었다고 허위 진단서를 끊게 하여서 수의도 못 입히고 이○○ 집사가 대충 관 속에 넣어 인천 부평 화장터(인천가족공원 소재)에서 화장했다. 전교인들은 모르게 몇 명만 새벽에 화장터로 갔다.”

당시, 엄마는 이인강의 말을 믿었다.

빛나라를 화장하는 중에도, 다시 살아나올 것을 믿고, 화장이 끝났는데도 계속 기다렸다.

이인강은 성경에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 만에 다시 살아났듯이 빛나라도 살아난다고 세뇌시켰다.

그래서 화장이 끝나가는 데도 아이가 살아날 것을 기다렸었고, 불에 탄 뼛가루를 수거할 때,

그제야... 아이가 돌아오지 못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다가 2012년 12월 쯤, 교회를 나왔다.

이후 과다한 스트레스, 심한 피곤으로 병원에 입원을 하기를 여러 차례... 심한 노동, 정신적인 고통으로 아직까지도 생활하는데 힘들다.

“너 사는 곳 다 뒤를 밟아 놨다”

이 말에 더욱 두려움에 시달렸다. 무서워서 집도 몇 번 옮겼다.

지금도 아이를 생각하면, 살아갈 힘이 없어질 때가 많다.

이인강은, “마지막 때 먹어야 할 양식” 설교에서, (19:15-19:38) “CRPS도 고치고, 정신병자도 고치고, 이런 역사가 일어나지 않고는 안 몰려온다. 지금 정신병자 고치는 역사 없이는 못한다.”고 하였다.

그 교회에서는 고혈압, 당뇨, 대장암, 관절염, 시력, 변비... 하다못해 모기 물린 곳도 치료됐다며 홍보하고 있다.

 

이인강, "내가 개 취급할 텐데, 개 취급을 해도 따라와야 돼

▲ 이인강의 생일잔치, 신도들은 이씨에게 “엄마 사랑해요”

※ 이인강, 아멘충성교회에서의 2013년 녹취파일(1:43:55-1:44:05)

“짐 가져갈 때 따라가고 집도 다 알아요, 내가. 집도 다 알아, 내가, 내가 그거 못 붙들어 오는 거 아니거든.”

“목사한테 원망이나 하고 하며는 귀신이 훌럭 잡아 버린다니깐, 아시겠어요? 귀신이 훌럭 잡아 먹어버려.”

“그리고 와 가지고 나 눈기도 좀 해줘요, 그러잖아, 여러분 보다시피. 그러니까 지금 엄청나게 좋아. 이게 아는 거야. 내가 눈기도를 받아야 산다... 이게 간질병자는 이거 딱 하면, 눈기도 하면 그냥 나아버려요, 그 간질이 떠난다니까. 약을 먹어도 사람이 지혜가 없는 거예요.”

“개같이 취급을 하는 거예요, 목사가 여러분들에게 개 취급을 하는 거예요. 아시겠어요?”

“지금 내가 개 취급할 텐데. 개 취급을 해도 따라와야 돼. 이것이 귀하니까. 엄청나게 귀한 거예요, 이거.”

“개같이 안 살았어요, 여러분. 개 취급을 받아야지. 그래야 죄가 끝이 난다. 그리고 나같이 비밀을 가르쳐 줘. 자식도 잘 되고, 다 잘 되게 해줘.”

“개 취급을 받으면서 끝까지 가야 되는 거예요. 개 같은 짓을 해놓고 왜 개 취급은 안 받으려고 그래. 개 취급을 하게 하는 거여.”

“여기서 완전하게 치매병 환자만 고치면, 치매병 환자가 얼마나 많아요. 정신병자만 고치면 이거 끝내주는 거예요. 돈도, 돈도요 필요도 없어요. 그냥, 그냥 뭐 온 세상에서 다, 다 쫓아온다니까. 돈 가지고 온다고. 근데 왜 빨리 안 하느냐, 우리 교인들 더 만들라고. 교인들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거 아니야, 일꾼들이 먼저 만들어져야 돼. 아직 덜 됐잖아요. 덜 됐다니까.”

“여기에 오면, 약 안 먹고 되거든요. 지금 약 떼었잖아요, 그 양평에. 양평 딸. 딱하니 정상으로 돌아와. 이 몸도 정상으로 돌아와. 얼굴도 막 이래갖고 이랬거든요. 그런데 지금 다 나았잖아요. 그러니까 약을 안 먹고도 하는 그런 엄청난 기적이 있고, 병원에서도 약도 없는 병, 그런 것을 고치면 그 병이 정신병자들 있잖아요. 그게 약을 먹어도 안 되는 사람이 있더만요. 그것도 고친다고.”

“종살이부터 시키는 거요. 종살이 안 하면요 절대 하나님의 뜻을 좇아갈 수가 없습니다. 그거부터, 종살이부터 먼저 시켜.”

 

신도들은, 이인강에게 "엄마"라 불렀다!

▲ 이인강의 생일잔치, 신도들은 이씨에게 “엄마 사랑해요”

2007.04.16. 임○○의 “소아 마비된 내 팔을 잡아 비틀며 펴주신 예수님”이란 간증 글을 보면,

“새벽 예배시간이 되어 목사님이 강대상 쪽으로 올라가시는데 음성이 들렸습니다. “봐라 너희 엄마다” “내가 저를 사랑한다. 내가 저와 함께한 자들과 함께 하리라... 너는 순종하고 나를 섬기듯 섬겨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저희 목사님이 여자 분이셔서 그렇게 표현을 해주셨던 것 같습니다. 영의 어머니라는 의미로 주셨고, 또 저희 목사님이 하나님을 많이 사랑하고 또 엄청나게 어려운 일들까지도 순종하면서 하나님만 경외하시기 때문에, 저에게도 하나님을 사랑하듯 목사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라고 하셨습니다.”

신도들까지 이인강의 영향을 받아 직통계시, 꿈, 환상, 예언, 대언 등 비성경적 개인 신비체험에 의지했다.

이인강의 생일날이면, “엄마 사랑해요”란 플레카드를 걸고, 잔치를 한다. (사실 확인 위해 교회에 전화했으나 받지 않았고, 이인강의 휴대폰은 다른 이가 받고 끊어버렸다.)

▲ 눈안수 기도 장면... 이인강은 이단으로 규정되었다.

#신사도운동, 비성경적 신비주의 등으로 이인강은 이단으로 규정되었다.

... 남은 가족들의 마음이 이제 조금, 조금은 부담이 덜어졌으면.

 

 

 

 

 

오명옥 omyk7788@daum.net

<저작권자 © 종교와 진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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