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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 보다 더 무서운 것이 사이비와 종교집단신비주의와 열광주의가 교회질서 파괴한다

돈 주면 이단이 아니다

(1면에서 계속)어정쩡한 문제의 목회자들은 이단전문가와 힘 있는 목회자들에게 몇 푼의 돈을 건네고, 이단의 굴레에서 벗어났다가 문제가 된 경우도 있다. 정치적인 목사들이 각 단체 및 교단의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 위원으로 들어가려고 안간힘을 쏟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심지어 기자들까지도 이단해결사를 자처하고 나섰는가 하면, 해결의 미끼로 수천만원의 돈을 받고, ‘나 몰라라’한 경우도 있다. 심지어 문제의 해결을 위해 억대의 돈을 요구한 경우도 있고, 과거 이단전문가로 자처한 목사가 문제의 교회에 수천만원의 돈을 요구해 물의를 빚기도 했다. 또한 교계신문의 지도급 인사들이 문제의 교회에서 돈을 받은 사실은 큰 충격이기도 했다. 이것이 바로 한국교회에 당면한 문제이며,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한번 이단 및 사이비로 규정되면, 문제의 교회와 단체, 그리고 인사들은 이단에서 헤어나기 위해 교인들이 낸 하나님의 헌금을 물 쓰듯이 사용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래도 이단으로 규정된 단체나, 교회나, 목사들은 신념이라도 있지만, 사이비적인 목회자들은 신념도 없고, 예수의 이름을 팔아 교인들의 주머니를 털어내며, 교회질서를 무너트리고 있다는데 일조하고 있다.

또한 한국교회는 이들을 대접하며, 능력 있는 목사로 평가, 사이비적인 행각을 부채질한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이것이 바로 한국교회가 말하는 신앙이며, 믿음이다. 여기에다 이단연구가들 중에는 신학적인 바탕이 전혀 없는 인사가 목사 및 선교사의 과거의 행적을 들고 나와 괴롭히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의 잣대로 이단으로 규정된 단체와 목회자, 그리고 교회를 둘러싼 논쟁은 당연하다. 이 굴레에 있는 교회와 단체, 그리고 인사들의 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와 한국교회연합의 분열도 이단논쟁에서 출발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풍토가 조성되면서 언제부터인가 한국교회에 희망이 없다는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 교인들은 교회를 떠나고 있으며, 국민들은 교회를 외면하고 있다. 또한 많은 교인들이 다른 종교로 개종하고 있다. 따라서 교회당의 빈자리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으며, 이 빈자리를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이웃교회의 교인을 빼앗는 교인쟁탈전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교인들을 빼앗긴 작은교회의 목회자들은, 대형교회를 향해 규탄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국교회의 목사들은 더 이상 존경받는 성직자가 아니다. 과거 가난한 사람들의 친구이며, 이들로부터 존경받던 목회자들은 목사가 아니라 ‘먹사’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한국교회는 박수무당 먹사를 비롯해 미래의 길흉화복을 예언하는 먹사, 봉투를 좋아하는 먹사, 교인들의 주머니를 사정없이 긁어내는 사이비 먹사, 교회의 강단을 회칠하는 춤꾼 먹사, 최면술로 교인들을 미혹시키는 먹사, 호텔 모임을 좋아하는 먹사, 금가루를 뿌린다는 신비의 먹사, 열광주의로 교인들의 혼을 빼는 먹사, 교회의 헌금을 횡령해 쇠고랑을 찬 먹사, 성령의 이름으로 여성교인을 성폭력 및 성추행 한 먹사, 이단 및 사이비먹사의 주변을 맴돌며 기생하는 쓰레기 먹사, 직통계시로 교인의 주머니를 긁어내는 먹사 등등이 공존하며, 교회의 질서가 무너지고 있다. 문제는 이들을 양산하는 전문학교가 생겼다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중세의 타락한 교회로 돌아가고 있다.

목사를 먹사로 부른다

한국교회의 일부목회자의 목회는 성서의 교훈과 진리, 그리고 복음을 전파하기보다는, 특별한 치유나, 방언과 같은 기적과 은사에 목적을 두고 있다. 이 같은 극단적인 열광주의와 신비주의, 성령주의, 종교집단주의는 건전하게 발전하지를 못하고, 한국교회를 파행으로 이끌어 가고 있다. 이들은 교인들에게 과도한 헌금 강요 등 세속적 목적을 달성하는데 자신들의 업적을 드러내고 이용하고 있다. 한국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대부분의 사이비·이단문제는 여기에서 출발하고 있으며, 종교집단주의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목사가 교인들이 낸 하나님의 헌금을 횡령한 것을 알면서도, 무조건 따르겠다고 말하는 교인들 하며, 목사의 여성교인과의 부적절한 관계가 들어났음에도 무조건 따르겠다는 교인들, 당회장실에서 젊은 여성을 영적인 권위로 성폭행 한 목사, 교회 내 가난한 청년들을 대상으로 성폭행 한 목사, 목사의 부도덕적한 행위가 들어났음에도 묵인하는 교인들 등등. 이것이 종교집단주의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한국교회를 걱정하는 교인들은 묻고 있다.

부도덕한 목사들의 잘못이 드러났음에도, 목사들과 교인들은 매우 관대하다. 이들의 모습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모습이라고는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이것이 바로 한국교회 열광주의와 신비주의, 성장주의, 성령주의의 폐해이다. 마이너스 성장에서 벗어나지를 못하는 한국교회를 더욱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데 모두가 동의하면서도, 이를 고치지 않는 데는 목사와 교인들이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하는 심정이기 때문이다.

열광주의와 신비주의, 성령주의자들 중 일부는 돈을 받고 예언기도를 해 주고, 복채를 받고 복을 빌어주고, 불치의 병을 낳게 해 준다며 거액의 헌금을 요구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빌어 직통계시를 하는 등 중세교회의 잘못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심지어 최면을 걸어 교인들을 쓰러트리고, 쓰러지지 않으면 다리를 걸어 쓰러트리는 사이비적 열광주의자도 있다. 또 쓰러지지 않으면, 믿음이 없는 사람으로 낙인찍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목사가 장풍을 넣으면, 일부러 쓰러지는 사람도 나타나고 있다. 일부 신비주의자는 자신을 외국의 유명부흥사인 빌리 그레함 목사 등에 비교하기도 한다. 이것이 바로 한국교회가 말하는 신비주의이고, 열광주의, 성령주의이다. 그리고 이것을 믿음의 척도로 가늠하고 있다.

피폐해진 마음의 평화는 열광과 성령

사이비와 이단, 그리고 종교집단주의에 빠진 교인들은 한결 같이 교회성장과 현대 문명이기로 피폐해진 교인들에게 마음의 평안을 찾아주기 위해서 어쩔 수 없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분명한 것은 이들의 열광주의와 신비주의는 왜곡된 성서해석으로 인해 이단과 사이비 교주를 만들어내고, 교주는 이들 위에 군림하며, 타락한 중세교회의 현실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고 있다. 또한 검증되지 않은 이단감별사도 등장하고, 이들의 주변에서 먹고사는 파리 떼도 등장, 무질서한 한국교회를 더욱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

또한 열광주의와 신비주의는 자신의 교파 이외의 것과 타종교에 대해서 무조건 배타적인 모습을 보이며, 상대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짙다. 홍익대학교 장승 훼손사건, 부처의 이마에 빨간 십자가를 그려 넣은 사건, 단군상 훼손사건, 최근 일어나고 있는 WCC 부산총회 반대운동 등은 열광주의자와 신비주의자, 그리고 보수적인 목회자와 교인들이 타 교단에 대해서 인정하지 않으려는 배타적이며, 극단주의에 사로잡힌 전형적인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분명하게 말 할 수 있는 것은 타종교의 기물을 훼손하고, 무조건 배격하는 그리스도인들의 극단적인 행동은 올바른 자세는 아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자신 없는 비겁한 행동이다. 오히려 교회에 대한 반감만을 일으키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그것도 하나님을 유일신으로 고백하며 믿는 그리스도인 간의 극에 이른 진보와 보수의 갈등은 더더욱 아니다. 이것은 기독교의 고립을 자초하고, 기독교의 사회적 신뢰성을 상실하게 만들고 있다.

WCC 부산총회를 앞두고, 한국교회 안에서 곧 기독교전쟁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긴장된 분위기이다. 보수적인 목회자와 교인들의 집단적인 행동은, 결코 선교의 경쟁력을 높일 수 없다. 오늘 한국교회가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하고, 마이너스 성장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더더욱 그렇다. 문제는 목회자와 교인 대부분은 이것이 진리이며, 계시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최근 기독교, 천주교와 불교 사이의 종교간 대화는, 앞으로 종교 간의 협력과, 이 땅의 평화를 위해서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들에게 화해하게 하시고, 화해의 직분을 맡겨주셨다. 그리고 용서하고 사랑하게 하셨다. 열광주의적인 그리스도인들은 반공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화해의 직분을 망각하고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중심이 되어버렸다. 그렇다 극단적인 광신주의와 열광주의는 인간성 자체를 파괴하고, 교회의 존립자체를 파괴한다는 사실에 대해 기독교인 모두는 깨달아야 한다. 또한 분열과 갈등을 부추기며, 기독교를 화해와 생명, 화합과 평화의 종교를 상실하는 결과를 가져다가 준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또 한국교회의 선교에 방해되는 모든 행위는 사이비적인 사고에서 나왔다는 것에 모두가 주지해야 한다.
 

추양지 기자  webmaster@c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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