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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고난 없는 부활은 없다부활절 행사에만 집착할 것이 아니라 십자가와 고난의 삶 실천해야
기독교한국신문 | 승인 2014.04.15 15:31

기독교인 스스로 사회적 신뢰 무너뜨려…진정한 부활신앙 회복 시급

어김없이 부활절이 돌아왔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교회는 십자가 없이 부활의 축복만을 바라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지금 한국교회에 진정한 부활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자신 있게 그렇다고 대답할 사람이 얼마다 되겠는가.

이는 오늘날 한국교회에 십자가의 기도와 찬송과 설교만 있을 뿐 십자가의 삶이 없기 때문이다. 십자가는 지는 것이요, 잃는 것이요, 내려놓는 것이요, 죽는 것이다. 오늘의 한국교회가 다시 한 번 거듭나기 위해서는 십자가의 삶을 살아가는 역사가 다시 일어나야 할 것이다.

십자가 없이는 면류관도 없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십자가가 있어야 부활도 있다는 뜻이다. 매섭고 추운 겨울이 지나고 따뜻하고 생명이 사는 봄이 찾아왔듯이 올해에도 어김없이 부활절은 찾아왔다. 그러나 정말 한국교회에 부활절의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지 우리 모두는 다시 한 번 진지하게 되돌아봐야 한다. 예수의 죽으심이 있기에 다시사심도 있음을 상기해야 한다.

오늘 한국교회 곳곳을 돌아보면 십자가의 삶이 실종되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한국교회는 스스로 자정능력을 상실했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이다. 교회는 사회로부터 신뢰를 잃어버렸으며, 지탄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교회는 스스로 그 어떤 분쟁도 해결하지 못하고 사회법정의 판단만을 기다리는 지경에 처했다.

이는 한국교회와 그리스도인 모두가 지지 않고 이기려고만 하기 때문이다. 포기하지 않고 움켜쥐려고만 하기 때문이다. 내려놓지 않고 높아지려고만 하기 때문이다. 죽지 않고 살려고만 하기 때문이다.

과거 한국교회가 부흥하고 복음의 기적이 일어난 것은 아마도 기독교인들의 열정적인 신앙의 열기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신앙이 한국교회의 생명이었다. 지난 날 여의도 광장에서 부활절의 새벽은 온 국민에게 사망의 권세를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알리는 날이었다.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이날 새벽에는 경건한 마음으로 부활절의 의미를 상기했다.

그러나 언제부터 한국교회 부활절 연합예배의 열기가 시들어가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각 지역별로 따로따로 예배를 드리고 있다. 한국교회가 초라한 모습으로 전락한 느낌이다. 그러나 이것이 현실이다. 교회가 세상을 염려해야 하는데 오히려 세상이 교회를 걱정할 만치 위험 속에 빠져 있다. 이러한 한국교회의 현실을 세상 사람들은 다 알고 있으나 정작 당사자인 기독교인들과 목회자들은 까맣게 모르고 있다. 바로 이것이 위기의 징조가 아닌가. 일부 단체와 교단들은 부패와 비리의 온상이며 한국교회 위기의 진원지로 전락했다. 그럼에도 교회 지도자들은 그것을 모르고 있다. 모두가 교회를 음해하여 무너뜨리려는 반 기독교인들의 소행쯤으로만 치부하고 있다. 자신의 죄를 보지 못하고 모든 잘못을 남 탓으로 돌리는 목회자들과 이를 믿고 있는 성도들이 한국교회를 무너지게 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부활하지 않았다면 그를 따르던 사도들도 모두 흩어지고 말았을 것이다. 그들은 죽음에서 다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온 삶을 바쳐 복음을 세상에 전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독교를 생명의 종교라고 일컫고 있다. 기독교는 분명 우리 역사의 빛이었다. 근대의 여명을 비추게 한 교회는 민족의 희망이었으며 새로운 생명을 얻게 한 부활의 그 자체였다. 복음의 기적을 이룬 것은 바로 부활신앙의 결과이다.

한국교회는 부활절이 단지 헌금을 더 걷어내는 특별한 날이 아니라 그동안 타락과 부패 속에서 잊고 지내온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메시지를 상기하는 날로 여겨야 한다. 그리고 다시 복음의 열기를 되살려 이 사회를 구원하는 생명의 교회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이러한 신앙의 의미를 되살리지 못하면 부활절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지난 날 한국교회의 연합운동은 오늘날처럼 정치 목회자들의 비리 온상이 아니라 사회정의와 민주화 운동의 중심이었다. 교회의 위상은 오늘 날과 비교가 되지 않을 만치 국민들의 절대적인 신뢰 속에서 당연 최고였다. 목회자들과 기독교인들에 대한 존경심도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기독교인이면 성실성과 정직 그리고 충직한 마음자세를 갖춘 엘리트로 여겼고 직장에서 꽃이었다. 교회가 부흥한 것도 이러한 교회 위상의 결과였던 것이다. 오늘 한국교회의 위기는 바로 이런 신뢰가 무너진 탓이다.

한국교회가 다시 한 번 사회를 향해 예언자적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는 한국교회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해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지금의 교회는 제 맛을 잃어버린 소금이며, 빛이 꺼진 등불이다. 단순히 부활절만 기념하는 부활절 행사만을 치르고 있는 것은 이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부활절 행사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삶, 고난의 삶, 진정한 부활신앙이 있어야 한다. 한국교회는 이제 져야 한다. 잃어야 한다. 부귀와 명예를 내려놓아야 한다. 한국교회가 죽어야 예수님이 다시 사실 것이다.

우리 모두 진정한 예수의 부활을 믿고 소망을 가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아픔과 희생의 십자가가 선행되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십자가가 없는데, 부활의 승리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부활의 승리와 소망은 나를 부인하고 내게 주신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결단이 있을 때만이 얻어지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와 성도들은 십자가 없이 부활의 영광만을 바라보는 그릇된 인식에서 벗어나 십자가를 통해 부활의 승리를 믿고 사는 교회와 성도들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또한 목회자와 성도들은 죄에 가려 닫힌 신앙의 눈을 뜨고 사망의 권세를 이기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똑똑히 바라보아야 한다. 한국교회가 죽은 신앙을 일깨움으로써 부패한 교회를 개혁하고 새롭게 믿음을 바로 잡아 다시 복음의 기적을 일으켜야 할 것이다. 이것이 부활절의 진정한 의미임을 깊이 인식해야 할 것으로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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