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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민족을 위한 교회로 거듭나라”기독교인과 애국심은 밀접한 관계…대한민국 발전의 주춧돌 역할
기독교한국신문 | 승인 2014.05.28 09:24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한국교회가 선교 초기 나라와 민족을 위해 헌신했던 애국심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고조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나라와 민족, 애국심은 뗄레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다.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기독교가 전파된 이후, 나라와 민족을 위해 사명을 다했다.

선교 초기 병원과 학교를 지어 병들고 무지한 민중들을 일깨우고 희망과 소망을 심어 줬으며, 일제의 압제 속에서는 독립운동에 앞장서며,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기 위해 피를 흘렸다. 군부 독재 시절에는 민주화를 부르짖으며, 정의와 평화, 인권을 위해 싸웠다. 이러한 신앙선배들의 나라와 민족을 향한 애국심은 대한민국을 발전시키는데 주춧돌 역할을 했다.

한국교회는 선교 초기 민족을 위한 종교였다. 초창기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애국자들이었다.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이 곧 애국자가 된다는 의미와 같았다. 아펜절러 언더우드 헐버트 알렌 벙커 등 초기 선교사들의 헌신과 희생, 섬김은 기독교 민족애를 고양하는 중요한 전기가 됐다.

1895년 명성왕후가 시해당하고 생명의 위협을 느낀 고종황제를 지켜준 사람들은 대신들이 아니라 기독교인들이었다. 아펜젤러 언더우드 헐버트 알렌 벙커 등 초기 선교사들은 고종의 침실 옆에 있는 황실 도서관에서 번갈아 가며 불침번을 섰다. 또한 아펜젤러는 배재학당을 설립해 수많은 기독교 애국자들을 배출했고, 그 영향을 받은 기독교인들은 충군애국정신을 널리 고취시켜 나갔다.

1897년 11월 21일 명성왕후 2주기 때 정동감리교회에서 열린 추모예배에서 설교를 맡은 언더우드는 비명에 간 명성왕후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면서 “하나님께서 나라를 도우사 교회가 흥왕케 하시기를 원한다”며 민족의 위기로 실의에 빠진 교인들에게 기독교 민족애를 불어 넣기도 했다.

이러한 선교사들의 헌신은 초기 한국교회 지도자들에게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제임스 게일이 고결한 한국인이라고 예찬했던 월남 이상재, 1894년 배제학당을 졸업하고 그 학교 교사로 임명받은 이승만, 언더우드에게 세례를 받고 신학반을 이수한 홍정후, 미국 밴더빌드 대학을 졸업하고 귀국한 윤치호, 독립신문 창시자 서재필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이 가졌던 고결한 애국정신과 민족의식은 역사 속에 맥을 이어 고당 조만식, 남강 이승훈, 소양 주기철을 비롯한 수많은 지도자들에게 이어졌다. 1896년 4월 7일 배재학당 안에 사무실을 두고 윤치호, 이승만, 주시경이 중심이 되어 창간된 독립신문은 근대 신문의 효시로 독립정신 양양, 국민계몽, 민주주의 발전, 기독교 문화 창달에 이르기까지 지대한 공헌을 했다.

초기 한국교회가 갖고 있던 교회와 민족의 일체감은 태극기와 십자가가 한데 어우러진 것에서 알 수 있다. 당시 교회마다 태극기를 걸어놓고 집회를 가졌다. 태극기가 교회마다 펄럭였다. 하나님이 이 민족을 축복하시기를 염원했고, 하나님이 이 민족을 축복하실 것이라는 확신이 이들 모두에게 있었다. 교회와 민족은 이들에게 별개가 아니었다. 기독교인은 곧 애국자라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형성됐고, 기독교인들은 실제로 이를 온 몸으로 실천에 옮겼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언제나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일본제국주의시대 한국교회의 강단에서는 출애굽기에 나오는 모세의 자기 민족에 대한 사랑과 민족구원 사역을 설교하면서 기독교의 나라사랑에 대한 성서적 근거를 찾았다. 확실한 성서적 근거를 확보한 한국 기독교는 독립운동과 항일투쟁에 선도적으로 나서게 되었다. 당시 조선 총독부는 이와 같은 교회의 활동에 대해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었고, 성서를 불온서적으로 분류하기도 했을 정도였다.

기독교인들은 민족이 위기를 만날 때마다 위험을 무릎 쓰고 앞장섰다. 진정한 애국자들이 기독교인들 가운데 무수하게 배출됐다. 교회는 수많은 학교들을 설립했고, 병원을 세웠으며, 성경번역과 문서출판을 통해 문맹률을 낮추고 국민의 지적 수준을 향상시켰다.

또한 서양의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사상을 심어주어 근대 한국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발전에 기초를 놓았다. 이처럼 초기 한국교회는 민족을 선도하는 구심점이었고, 한국교회는 사회와 민족의 희망이었다.

성서를 통해 민족과 애국심을 살펴보면, 민족을 극진히 사랑한 바울의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다. 바울이 얼마나 동족을 사랑했던가? 동족이 자기를 사랑해서가 아니다. 가는 곳마다 자기의 앞길을 가로막고 한사코 죽이겠다고 대드는 사람들이 유대인들이었다. 생명의 주인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것도 동족인 유대인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끝까지 자기 동족인 유대인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는 자기 민족 유대인을 지극히 사랑한 나머지 “내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진다 하더라도 내 민족 이스라엘만 구원받을 수 있다면 내가 원하는 바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바울의 고백은 예수님과 그의 관계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결코 예사로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사도 바울이 인생을 사는 한 가지 목적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었다. 그런 사람이 예수와 관계가 끊어져버린다면 어떻게 되는가? 그에게서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게 될 것이다.

그런데도 내 동족을 위하는 일이라면 그 일까지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바울의 애국심과 민족애가 어디에서 온 것일까? 그것은 예수님에게서 왔다. 그는 민족 사랑을 예수님에게서 배웠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시기 하루 전에 제자들을 이끌고 감람산에 오르셨다.

당신을 배척하고 처참하게 망해버릴 예루살렘도성을 바라보시면서 예수님은 비통해 우셨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이렇게 비통해 하시며, 슬피 우셨다. 예수님은 민족을 사랑하는 애국자였다. 예수님에게서 민족 사랑을 빼버린다면 복음은 빛을 잃고 말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이 절규하듯 부르짖던 민족 사랑이, 바울의 애틋한 동족애가 자신의 가슴에 파도처럼 밀려와 민족 한 가운데로 강이 되어 흐르게 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에는 국경이 없지만 그리스도인에게는 국경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어느 민족이든 그 민족의 무서운 힘과 추진력은 애국심의 발로였다.

애국심이 강하면 그 나라는 흥하고 애국심이 약하면 망한다. 우리 한국교회도 비록 짧은 역사이기는 하나, 빛나는 신앙심과 조상의 숭고한 얼을 이어왔다. 우리도 이 애국심으로 이 시대의 민족혼을 일깨우고, 민족정기를 일으켜 세워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우리는 애국이라는 말을 잊고 살아가고 있다. 애국이라는 말은 예전처럼 많이 사용되지 않는다. 일각에서는 애국이나 민족주의는 시대에 뒤떨어진 편협한 이데올로기쯤으로 치부해버리기도 한다.

우리는 6월에 순국선열들과 민족을 사랑한 신앙의 선배들을 기리면서 성서에 도도히 흐르고 있는 애국심을 배워야 한다. 또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민족의 근대사와 현대사, 그리고 미래의 흥망성쇠를 한국교회가 책임지고 있다는 강한 책임감을 가지고, 그 사명을 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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