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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들을 위한 종교로 변질…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한 교회종교개혁주일 특집 - 종교개혁 이전의 중세교회와 판박이
기독교한국신문 | 승인 2014.10.13 10:41

교회재정을 둘러싼 다툼 끊이지를 않으며, 기독교의 정체성 크게 흔들
각종 집회 돈으로 도배, 가난한 이웃을 위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찾자
“사회적 약자 외면하면 할수록 교회는 봉괴된다는 사실 깨달아야 한다”

세계교회는 종교개혁 497주년을 맞았다. 그런데 오늘 한국교회는 종교개혁 이전의 중세교회와 상당히 닮은꼴이 아닌가 싶다. 한국교회의 강단은 중세교회와 마찬가지로 ‘돈’의 소리가 끊이지를 않고 있으며, 교회의 십자가탑은 하늘 높은 줄 치솟고 있으며, 십자가탑은 ‘바벨’의 상징이 되어버린지 이미 오래되었다. 이렇게 한국교회가 부자교회로 변질되면서, 가난한 교인들과 사회적 약자들은 설자리를 잃어버렸으며, 교회공동체는 부자들을 위한 공동체가 됐다. 본지는 종교개혁 497주년을 맞아 지난호(제79호)에 이어, 사이비화 되어가는 한국교회의 현실을 진단하고, 사회적 약자들을 품는 교회로 거듭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 한국교회가 타락한 중세교회를 그대로 판박이 하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부자들을 위한 종교로 변질된 나머지, 가난한 교인들과 사회적 약자들을 외면하고 있다는 비난 여론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타락한 중세교회와 닮은꼴

2005년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개신교의 인구는 급격히 감소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가톨릭의 인구는 기독교인이 줄어든 만큼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지난 8월 14일 교황의 한국방문으로 가톨릭의 인구는 크게 증가 했을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2005년 개신교인수는 1천300만명에서 크게 감소한 861만6천명인 반면, 가톨릭은 10년 전의 295만1천명보다 무려 219만5천명이 늘어난 514만6천 명으로 조사됐다.

개신교인들이 가톨릭으로 많이 유입됐다고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목회자들은 그동안 개신교 교인수가 1300만 정도 될 것이고, 천주교는 정체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예측을 했던 것을 감안하면, 한국교회가 위기에 직면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한국교회는 사회적 약자들을 외면하고, 강단에서 ‘돈! 돈! 돈! 돈에 돈! 돈!’을 외치면서, 교인들은 큰 부담을 안고 교회를 떠난 것이 사실이다. 인구주택총조사를 실시한지 9년이 지난 오늘, 한국기독교의 교인은 500만명도 채 안될 것이라는 여론이 강하다. 그것은 하루 밤 사이에 교회당의 십자가 늘어났던 과거와 달리, 오늘은 하룻밤 사이에 많은 교회들이 사라지고 있는데서 쉽게 알 수 있다.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도 2013년에 발표한 '한국기독교 분석 리포트'에서 타 종교의 성도 수는 증가하고 있는 반면, 유독 개신교만 교인수가 감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교인들의 교회 이탈은 ‘무리한 건축헌금과 십일조 강요’에 염증을 느낀 나머지 교회를 떠나고 있는 것이다. 수십 가지에 이르는 헌금은 어느 종교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한국기독교는 샤머니즘인 무속인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헌금의 액수’로 믿음의 척도를 결정하기도 한다는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것은 보편화되었다는데 문제가 심각하다. 여기에다 교회의 본질인 사회적 약자들을 향한 사랑의 선교에 대해서는 외면하면서, 개신교인은 급감하고 있다. 
 
교인감소는 이미 예견된 것

교회에서의 헌금은 교회를 운영하고,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등 하나님나라 선교를 위해서 매우 귀하다는데 대해서 모두가 인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헌금들이 건강한 교회공동체를 위해서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십자가탑을 경쟁적으로 높이는데 사용되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건강한 교회는 헌금을 바르게 사용한다. 교회당을 관리하고, 구제하고, 선교하고, 교육하고, 교역자들 생활비 지급, 사회 봉사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면에서 헌금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이와 함께 헌금의 사용처를 투명하게 해야 하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문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걷는 대부분의 헌금은 목회자와 교회치장을 위해서 사용된다는 것이다. 매 설교마다 목회자들은 강단에서 거리낌 없이 헌금을 강요하고 있으며, 헌금의 종류가 무려 100여 가지나 된다. 대부분의 교회는 속회를 비롯하여 심방 등의 소모임이 있을 때마다 헌금바구니를 돌리고 있다. 또 주일예배 비롯한 수요예배, 금요예배, 새벽예배 등 예배를 드릴 때마다 헌금을 걷는 교회도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심지어 이것은 주일학교 학생들의 모임에서도 보편화되어 버렸다.

재미있는 것은 오늘 한국기독교는 헌금을 잘 걷는 목사가 대접받는 풍토가 되어버린 지 이미 오래되었다는 것이다. 돈이, 곧 신이 되어버렸다. 돈을 잘 걷는 목회자와 부흥사는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으며, 이들의 집회초청은 끊이지를 않고 있다. 이렇게 한국기독교가 타락하고 있는 것은, 교회가 너무 부자가 되었다는데 있다. 교회당은 가진 자들로 채워지고 있으며, 또 가진 자들만이 장로를 비롯한 권사, 안수집사 등의 직분을 맡을 수 있다. 한마디로 한국기독교가 ‘돈’이 바로 ‘신’이 되면서, 가난하고, 천박한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 설자리를 잃어버린지 이미 오래되었다.


과거 한국기독교는 어려운 가운데서도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과 함께 하나님나라 선교를 감당했다. 한국교회가 크게 성장 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땅의 가난한 사람들의 인권과, 이들을 깨우는 일에 앞장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기독교가 돈의 노예가 되면서, 사이비로 전락했고,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잘못을 정당화 해주는 이념적 정치종교로 변질됐다.


그렇다 보니 가진 교회들은 작은 교회의 교인들을 빼앗는데 혈안이 되어 있고, 작은교회의 목회자들은 큰 교회를 만들기 위해 대형교회의 목회자들이 해온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 한국교회의 교인이 감소하는 것은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사실 한국기독교는 본지 제79호에서 지적했듯이 부자들을 위한 종교로 변질된 나머지, 교회 전체가 돈을 많이 가진 자들이 판을 치는 ‘사이비화’되었다는데 이의가 없다.

‘돈’이 바로 ‘신’이다

심지어 이들의 주변을 맴돌며, 이들의 주머니에 기생하는 ‘파리떼’들도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한국교회가 이단사이비로 규정한 단체들과 협력하는 교계신문사의 국장, 이들의 약점을 이용해서 돈을 뜯어내는 목회자, 문제의 단체에게 면죄부를 주고, 여기에 상응하는 대가를 받아내는 목회자 및 심부름을 하는 목회자 등등의 파리떼들이 한국교회의 질서를 어지럽히며, 한국기독교의 사이비화를 가속화시키는데 중심에 서 있다. 더 이상 한국기독교 안에서의 문제는 이단이 아니다. 가속화되고 있는 사이비집단이라는데 문제이다.
한국기독교의 사이비화에 대해 신성남목사는 당당뉴스에 게재한 글에서 “교회 집회가 온통 돈으로 도배되어 있다. 그리고는 하시는 말씀이 ‘헌금에 부담이 되면 적게 내도 된다’고 해명을 하고 있다. 어떤 경우이든 헌금이란 본래 자율적인 것이므로 부담이 크면 덜 내도 되겠지만, 교회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경제적 능력에 따라 자유롭게 헌금을 내고, 자신있게 교회에 다닐 교인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면서, “신약교회에 ‘의무적 십일조’란 없다. 사도들조차 십일조를 하지 않았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 이후에 성전과 제사장이 사라졌는데, 무슨 십일조가 있었을까. 따라서 현재의 강요적인 한국형 십일조는 일부 교권주의자들이 돈을 더 걷기 위해 자작한 ‘구약 율법의 위조품’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가톨릭교회를 포함한 전세계 절대 다수의 교회들이 ‘현대 십일조를 의무로 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고 잘못된 십일조헌금을 지적했다.
‘세례교인 모두 십일조를 의무화하자’는 내용의 헌의안건이 대한예수교장로회 A교단 제99회 총회에 상정돼, 부결되기는 했지만, 오늘 한국기독교가 돈에 미쳐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렇지 않아도 오늘 한국기독교의 교인이라면, 십일조를 안 하고서는 교인행세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의 ‘십일조 의무화’ 헌의 그 자체는, 교인들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다. 사실 한국교회의 교인들 중 상당수는 헌금으로 상처를 받고, 헌금으로 인해 교회를 떠나고 있다. 

이제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말 중에 ‘헌금을 많이 드리는 사람이 많은 복을 받는다’는 말이, 너무나 익숙해져 있다. 따라서 헌금을 많이 드리는 사람만이 목회자의 머릿속에 남고, 대접을 받는 교회의 풍토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로 인해 교회당은 부자교인들의 정서에 맞게 건축해야 하고, 목회도 이들에게 맞게 목회를 해야 하는 세태가 되었다.

믿음의 척도를 ‘헌금의 액수’로 결정하면서, 목회자와 교인들의 갈등은 끝을 보이지 않고 있으며, 일부 부자교회 목회자들은 수백억원대 교회헌금 횡령을 둘러싼 법적다툼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 일부 힘 있는 교회의 장로 및 집사들이 가세하면서, 하나님의 교회는 힘있는 자들에 의해서 난도질을 당하고 있다.    

헌금의 액수로 하늘나라 결정

돈을 좋아하는 교회마다 매주 나오는 주보의 광고란 아래에 게재된 헌금자의 명단은, 교인들간에 헌금을 많이 드리도록 부채질하는데 이용되고 있다는 지적의 목소리도 높다. 심지어 대부분의 교회들은 헌금의 액수에 따라 헌금자의 명단을 차례로 게재, 헌금을 적게 드린 교인을 위축시키는가 하면, 목회자는 헌금기도를 통해 헌금을 적게 드린 교인에 대해서 나중에 많이 드릴 수 있도록 독려하기도 한다.

수년전 대전의 B교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 교회 담임목사는 교도소에서 갓 출소한 장로에게 금식을 명령하고, 하나님의 뜻이라며 10억원의 헌금을 요구했다. 이 장로는 10억을 드리고, 계단을 내려오다가 쓰러져 최후를 맞았다. 이날 저녁 이 교회에 집회를 온 직통계시의 대명사로 알려진 C목사는 하늘나라도 특급에서부터 D급까지 있는데, 이 장로는 특급에 안식했다고 말해 가족들로부터 항의를 받는 해프닝도 일어났다. 그리고 지역목회자들로부터 전형적인 사이비 목사의 모습을 드러내는 결과를 낳았다.

목회자들의 돈을 향한 타락은 여기에서 끝이 어니다. 헌금함을 들여다가 보면서, 두꺼운 봉투를 슬쩍 자신의 주머니로 넣는 타락한 목사도 있다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E목사는 C교회와 S기도원에서 이같은 일을 저지르다가 기도원 원장과 회계집사에게 들통나 망신을 당했으며, 10배, 100배의 축복을 강조하며, 교인들의 주머니에서 돈을 나올 때까지 ‘축복’, ‘축복’을 강조하는 목회자도 있다. 심지어 목회자가 교인들을 대상으로 ‘돈 놓고, 돈 먹기식’의 다단계를 조직했다가 사기혐의로 구속되는 사태까지 몰고 갔다. 최근 대형교회 몇몇 목사의 구속 및 불구속 사건은 헌금 횡령과 관련되어 있다는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같은 한국기독교의 물량주의를 걱정하는 일부목회자와 교인들은 교회가 가난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는 것도, 사이비화되어가는 한국교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것은 교회의 위풍당당한 교회의 십자가가 가난하고, 천박한 교인들을 억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많은 헌금을 드리지 못하면, 스스로 교회 내에서 소외되고, 차별을 받는 것이 뻔하다. 

한국기독교 스스로 가난해지지 않으면, 이 땅의 빽 없고, 가난한 교인들은 설자리가 없다. 그리고 사회적인 약자들은 교회를 행해 절규하지를 않는다. 분명히 우리의 하나님은 가난하고, 억눌린채 광야를 떠돌던 하비루들의 해방운동을 위해서 일하셨으며, 이집트의 부호세력에 맞서 싸운 가나안 농민들의 농민해방운동을 주도하셨다. 이들에게는 교회에 드릴 헌금이 없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한의 소리’를 들으시고, 다시는 이들이 노예로 살지 못하도록 10계명이라는 율법을 주셨다. 한국기독교는 종교개혁 497주년을 맞아 사회적 약자를 외면하면 할수록 교회는 봉괴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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