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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통일 향한 분단극복에 참여하는 교회 되자한국교회 분단극복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나(?)

“1910년 이전까지 종로5가와 동대문은,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나라에 대한 소망을 보여주었던 선교의 메카였다. 일본제국주의 아래서 독립운동가들이 자연스럽게 몰려들었던 독립운동의 요람이었다. 또한 목요기도회를 비롯한 기독교농민운동, 기독청년운동, 기독학생운동의 메카로 민중신학을 태동시킨 현장이기도 하다. 당시 가난한 농민들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종로5가를 찾았으며, 노동현장에서 사업주들에게 맞서 싸우던 노동자들의 피난처였다”

   
▲ 선교 130년을 맞은 한국개신교는 분단 극복을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느냐'는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뿌리박힌 지배자의 이데올로기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사는 국민 모두의 최대과제는 분단의 아픔을 극복하고, 남과 북이 하나 되는 민족통일에 있다. 일본제국주의 아래서 한민족의 지상과제는 나라의 독립을 쟁취하는 것이었으며, 개항부터 한일합방까지는 주권수호였다. 1876년부터 1910년까지 조선을 둘러싼 열강들은 경쟁적으로 조선의 주권을 침해했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의 백성은 한일합방 이전까지 국가의 주권수호를 위해 투쟁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절박한 상황에 있던 나라를 위해서 한국개신교가 취한 태도는 무엇이었느냐(?)고 묻는 것은 당연하다. 해방이후 지금까지 대한민국 국민들의 소원이며, 민족사적 지상과제인 분단극복을 위해서 무엇을 했느냐(?)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한국개신교는 반공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반통일적인 모습을 보여 준 것만은 사실이다. 그것은 분단 69년이 지난 오늘도 한국개신교는, 분단극복을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분단을 고착화시키는 세력으로 남아 있다는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렇게 한국개신교가 분단극복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데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개신교의 생태학적 환경이었던 결과적 독소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민족의지를 무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한국개신교의 일부지도자들은남북 간의 화해와 평화를 향한 행진을 벌이기보다는, 이를 저해하는 발언과 행동을 서슴치 않고 있는 등 반통일적인 모습을보여주고 있다.   
   
공군예비역 장군인 한모장로가 한반도 전역에 땅굴이 존재한다는 주장을 펼쳤고, 풀러신학교를 졸업했다는 홍혜선전도사가 12월 한반도 전쟁설을 퍼트려 교인들과 국민들에게 불안과 공포를 조장하고 있다는 여론이 높다. 더 나아가 한국개신교의 목회자들은 SNS를 통해 검증되지 않은 이같은 주장을 퍼 나르기에 바쁘다. 이는 곧 국민들 사이에 위기의식을 불러일으키기에충분하다. 이 같은 한국개신교 일부지도자들의 행태는, 분명 교인들을 미혹에 빠뜨리는 신앙의 일탈행위임에 틀림없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일부 개신교의 목회자들이, 교인과 국민들에게 불안과 공포의식을 불어넣는 잘못된 인사들을 초청, 강단에세우고 교인과 국민들을 불안과 공포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이것은 분명 한국개신교의 신학자와 목회자들이 분단시대의 신학적 과제를 소홀히 여긴 결과라고 할 수 있으며, 국민적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그러면서도 흡수통일등을 운운하며, 겉으로 평화적인 민족통일을 염원하는 말만을 아무렇지 않게 내 뱉는다.
 
사실 한국기독교는 민족의 역사성을 소홀히 한 나머지, 지배자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항상 가진 자의 편, 권력의 주변을 맴돌며, 부자들의 종교로 만들어 놓았다. 분명 지배자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지를 못하는 한국개신교의 단면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이런 한국개신교는 일본제국주의의 국가주의에 쉽게 굴복할 수밖에 없었으며, 교단들이 신사참배를 결의하는 등 하나님과 민족 앞에 큰 죄인이 되었다. 여기에다 한국개신교는 영미선교사들의 교파주의에 사로잡혀, 분열과 갈등을 일삼고 있다.  

이러한 DNA를 물려받은 한국개신교가 민족의 아픔인 분단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 자체가 큰 잘못이다. 한국개신교의 목회자들은 통일과 민족화해를 노래하는 대신, 오직 ‘맘몬’과 ‘바벨’을 노래하며, 부자들의 눈물을 닦아주는데 급급했다. 잠시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노래하던 종로5가 마저도, 이미 ‘범죄 집단’으로 변질됐으며, 분열과 갈등의 모습만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종로5가 한국개신교 메카에서 일어나고 있는 고소고발사건은 도를 넘었다.

한때 한국개신교 통일운동과 민주화운동,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민중운동의 주체였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마저도, 분열과 갈등에 휩싸여, 자기 정체성을 상실한지 이미 오래되었다. 이렇게 분열과 갈등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는 한국개신교가 분단극복을 향한 통일운동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오히려 한국개신교의 지도자들은 분단극복의 반대세력으로 자리를 잡았으며, 대신 교권주의와 명예주의에 사로잡혀 자신의 이득만을 취하고 있다.     

남북갈등, 남남갈등 조장

한국개신교 목회자들의 입에서 천박하고, 쓰레기 같은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가난한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던 교회들마저도, 변질돼 분열과 갈등을 일삼고 있는 상황에서 더욱 그렇다. 가난한 민중들을 위해 일하겠다고 고백하며, 고난 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일하던 단체도, 분단의 아픔을 극복하고, 북한동포를 끌어안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개신교의 인사들도, 이제 더 이상 민족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지 못하고, 자리다툼에 연연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인해 한국개신교는 더 이상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하는 종교로 전락하고 말았다. 가난하고, 노동현장에서 탄압받던 노동자들과 가난한 교인들은 교회를 떠나기 시작했다. 또한 한국개신교의 일부목회자들은 통일을 노래하며, 민족화합과 화해를 부르짖는 인사들을 향해 ‘용공’ 또는 ‘좌경’으로 매도하는 작태까지 서슴없이 벌이고 있다. 한마디로 오늘 한국개신교 목회자들에게서, 화해와 평화, 그리고 용서와 분단극복의 의지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연합기관이 몰려 있는 종로5가는 분열과 갈등의 상징이 되어 버린 지 이미 오래되었다. 그것은 맘몬의 기독교연합회관이 건축된 시기부터 시작되었다. 연합회관의 건축은 ‘맘몬’을 노래하는 한국개신교의 상징되어 버렸다. 1910년 이전까지 종로5가와 동대문은,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나라에 대한 소망을 보여주었던 선교의 메카였으며, 일본제국주의 아래서 독립운동가들이 몰려들었던 독립운동의 요람이었다. 또한 목요기도회를 비롯한 기독교농민운동, 기독청년운동,기독학생운동의 메카로 민중신학을 태동시킨 현장이기도 하다. 당시 가난한 농민들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종로5가를 찾았으며, 노동현장에서 사업주들에게 맞서 싸우던 노동자들의 피난처였다.

이 뿐만 아니라 1970년대 이후 종로5가는 한국개신교의 민주화운동의 중심센터였으며, 통일운동의 물꼬를 튼 장소이기도 하다. 이러한 역사와 전통을 지닌 종로5가가 통일의 노래소리, 민족의 화해와 평화의 노래 소리가 끊어진지 이미 오래되었으며, 분열과 갈등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한마디로 ‘종로5가’는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범죄자들이 모이는 장소로 변질되었다. 뿐만 아니라 종로5가 기독교기관에서 운영하는 강당은, 돈과 축복, 그리고 바벨과 맘몬을 노래하는 장소가 되었다.
    
사실 종로5가에 둥지를 튼 단체의 일부 목회자와 장로들은, 민족통일과 화해를 노래하던 모습 대신, 남남갈등과 남북갈등,노사 간의 갈등, 지역 간 갈등, 세대 간의 갈등을 조장하고, 교회의 연합과 일치대신 분열을 노래하며, 한국개신교를 극한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들에게서 분단극복을 위해서 기도하는 모습을 찾아본다는 것은 옛말이 되어버렸다. 사실 한국개신교의 지도자들은 북한을 탈출해 남한에 정착한 인사들을 앞 다투어 강사로 초청, 반통일적인 강연을 아무렇지 않게 듣고 있다.
      
이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내용 대부분은 반통일적인 발언이며, 한국개신교의 목회자와 교인들은 자유이주민의 말에 힘찬 박수를 보낸다. 반통일적인 발언, 전직대통령을 아무렇지 않게 비하하는 발언은 과연 분단극복에 도움을 주는 것인지(?) 아니면 분단극복을 방해하는 것인지 국민들은 전혀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몇몇 교단장들이 모여, 유명무실해진 교단장협의회를 새롭게 복원하고,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통일화합나무심기 국민운동을 벌여 주목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 단체마저도 일부교단의 지도자들이 또 하나의 교단장협의회를 구성하면서, 분열의 위기를 맞고 있다. 한마디로 1930년대 장로교 우월주의의 악령이 다시 살아나고 있는 것이다.
  

분단극복의 주역이 되라

이렇게 분단극복의 저해요소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개신교가 분단극복에 기여하리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오히려 세상 사람들은 한국개신교를 향해 분단극복을 이야기하기 이전에 먼저 300여개로 갈라진 교파주의를 극복하고, 하나의 한국교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민족과 세상 속으로 가까이 가지를 못하는 한국개신교의 목회자와 교인들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한국개신교가 지배자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이 땅의 사회적 약자들과 분단극복을 간절히 염원하는 국민들에게 어떠한 희망도 줄 수 없다는 결론이다. 그리고 분단의 아픔을 가슴에 품고, 통일을 고대하며 북한의 가족과 상봉하기를 기다리다가 지친 이산가족의 눈가에는 주름만 늘어나고 있다.
 
한국개신교도 130년의 역사를 가졌다. 그동안 한국개신교는 일본제국주의, 한국전쟁, 분단, 독재정권 등 질곡의 역사의 터널을 지나오면서 대한제국, 동학혁명, 의병항쟁, 삼일운동, 임시정부 등이 역사에서 탈락되는 비극꺼자 일어났다. 이제라도 한국개신교는 새 시대를 향해 끊임없이 달려가야 한다. 하나님나라의 선교를 다시 써야 한다. 그것은 평화와 통일, 그리고 화해를 향한 행진에 교회가 적극 참여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한마디로 모두가 서로를 인정하는 인정미 넘치는 새로운 친교의공동체, 희망의 공동체를 만들어 내야 한다. 그리고 한국개신교는 분단극복에 기여하는 모습을 적극 보여, 역사의 죄인이 아니기를 간절히 소망해 보는 것이다. 이제 한국개신교는 늦어지만 사회적 약자와 이산가족들에게 희망을 주었던 1970년대로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지적의 목소리를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유달상 기자  yds127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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