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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개신교, 식민지 지배민족 의식적인 예속 초래기독교의 반역사적인 치부는 어디까지

봉건주의 사상인 신분타파에 공헌한 부분에 대해서 기독교 역사학자들 인정
일부선교사 가난한 국민과 국운이 흔들리는 나라를 대상으로 장사꾼 행사도

 
기독교, 서양문화 예속에 기여

박순경교수의 저서인 <민족통일과 기독교>(1986, 한길사)의 ‘한국민족과 기독교의 문제’에서 “약소민족의 민족운동은 제국주의, 자본주의, 식민주의 세력에의 항거일 수밖에 없으면서도, 자본주의 문명에 예속되어버린 자기당착의 가능성을 처음부터 내포하고 있었다. 약소민족의 민족주의는 어쩔 수 없이 식민국들의 부르주아 자유주의, 이른바 자유세계라는 것을 표방하고, 지배민족들에의 의식적인 예속을 초래하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사실 한국기독교는 19세기 서구의 자본주의, 식민주의, 세계팽창의 대세에 따라 한국에 들어와 제국주의 선교활동을 경쟁적으로 벌였다. 선교사들은 알게, 모르게 서양의 이러한 팽창주의에 협조하면서, 겉으로는 ‘복음’과 ‘하늘의 뜻’을 외치며, 국민들의 의식화에 철저히 반대하며, 지배자를 대변했다. 오늘 선교사들이 제국주의의 앞잡이라고 비난을 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교회 역시 해외에 선교사를 파송하면서, ‘민간외교관의 역할’을 운운하며, 선교사 파송을 정당화하는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선교초기 이러한 당면 과제를 인식하지 못한 한국개신교는 세계열강들의 지배세력의 정체성을 인식하지 못했다. 오직 한국개신교는 영미의 기독교가 이 땅에 자유와 부를 가져다가 주었다는 말만 되풀하는데 급급하고 있다. 그 결과 한국개신교는 우매한 민족의 눈물을 닦아주지를 못했으며, 목회자들의 입에서는 천박하고, 쓰레기 같은 말이 연일 터져 나오고 있다. 천박하고 쓰레기 같은 말만 듣고 신앙생활을 한 교인들도, 역시 민족의 역사성을 자각하지 못하고, 반민족인 말들을 쏟아내는 주범이 되었다.

사실 한국개신교는 서양기독교 선교와 자유주의 문화와 결탁해서 들어온 것이 사실이다. 이에 대해 일부 신학자는 개신교의 한국전파는 하나님의 구원으로 해석하는 이들도 있다. 분명한 것은 한국과 동양에서의 개신교 선교는 서구 제국주의의 동양 식민지정책인 세력확장과 직결되어 있었다는 것은 오늘 신학자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다. 서양의 선교가 천박하고 미개한 한국을 비롯한 동양의 여러 나라에 대한 예속화와 식민지화, 전통문화의 파괴에 공헌한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이같은 사실은 선교사들의 내한 일지와 선교본부에 보고한 내용에 잘 나타나 있다.

박순경교수는 <민족통일과 기독교>에서, “봉건주의 사회가 뿌리 깊게 내린 상황에서 기독교의 전래는 매우 중요했던 것만은 누구도 부인하지를 않는다. 봉건주의 극복을 위해서 서양의 기독교사상이 매우 필요했다. 당시 개화파 인물들이 서양의 자본주의, 자유주의를 근대화의 사조로 삼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것이 서양 침략세력의 이데올로기 수단이었다는 것에 대해서 간과하지를 못했다. 한마디로 기독교의 전래는 민족의 가부장적인 봉건체제의 극복과 근대화의 잠재세력을 꺾어 버린 침략세력의 지주가 되었던 것이다”고 지적했다.
 

   
▲ 초기 선교사들은 봉건주의 사상인 신분타파에 공헌한 부분에 대해서 기독교 역사학자들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선교사들은 가난한 국민과 국운이 흔들리는 나라를 대상으로 장사를 하는 등 신민지세력에 나라를 예속시키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사진은 특정기사와 관련없슴)

선교사, 일본침략세력과 결탁

1944년 출판된 해링톤의 저서 <개화기의 한미관계(God, Mammon and the Japense)>는 알렌박사의 활동무대로서, 식민주의적 관점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이 책은 이광린에 의해 번역되었으며, 박순경박사는 이 책이 문자 그대로 ‘하나님, 황금, 일본인’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옳다고 했다.

박박사는 이 책에서 “해링톤은 알렌을 비롯한 침략세력들과 그것들에 대해 어두운 황실과 민족상황을 적나라하게 서술했다. 그 때문에 그의 책은 침략세력들의 불의를 각성시키는 계기를 가져다가 주지를 못했다. 어째든 이 책에 의해서 기독교 선교와 침략세력들의  결탁이 드러나게 됐다”고 강조했다.

해링톤은 자신의 저서에서 기독교선교에 있어서 개화파와 일본이라는 두 세력들 사이에서 선교사들의 활동은 유리했다는 점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이 두 세력은 기독교의 선교가 개화운동에 힘이 될 것이라는 점과 한국을 서양문화에 접하게 하리라는 점에서 일치했다. 서양문화에 의해서 신흥세력으로 등장한 일본은 한국을 일본에 귀속시킬 수 있다고 계산했다. 이 계산은 맞아 떨어졌다.


1876년 개항 이후부터 추진된 개화운동은 서양의 기술문명을 일본을 통해 받아들였다. 이 운동은 봉건체제 해체과정에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이 때 위기의 한국을 알리는 위정척사운동파와 동학의 반서학의 소리, 동학농민전쟁, 척왜양의 소리 등이 일어났다. 분명한 것은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세력들이 침략에 대해 알지 못하고 있었으며, 그 책략에 대해서 방어하지도 못했다. 한마디로 대한제국은 풍전등화와 같았으며, 국운이 일본제국주의와 서양의 선교사들에게 있었다.   

당시 기독교는 개화의 정신적 지주로서 놀라울 정도로 급속도로 수양되기 시작했다. 개화파는 동도파와 서기파로 나누어져 있었다. 정신적주체성을 보존하려고 했던 개화파의 동도는 서양의 기술문명에 의한 근대화의 길을 모색했다. 그러나 동도는 침략세력의 도구였던 서기에 패할 수밖에 없었다. 기독교는 서기파의 비호아래 세력이 크게 확장되어 나갔다. 이렇게 한국개신교는 침략세력의 힘을 빌어 순탄하게 세력이 확장되어 나갔던 것이다.

반민족적인 형태를 그대로 노출

당시 개화파였던 정동교회의 최병헌목사는 동도서기론을 비판하고 나섰다. 서기를 정신적 근거인 기독교와 분리시킨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심일섭은 “개화 그 이상은 기독교입장에서 표현해 즉 하나님의 나라와 같은 것이라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자신의 저서 <일제하 감리교의 삼대성좌>(성광문화사)에서 밝히고 있다.

분명한 것은 19세기의 기독교는 세계 팽창주의의 이데올로기였다. 한국의 기독교 역시 여기에 바탕을 두고 들어왔기 때문에, 기독교선교의 불의에 대해 통찰할 능력을 가질 수 없었다. 그럼에도 한국에서의 개신교는 크게 세력을 확장해 나갔다. 이것은 윤치호장로가 자신의 일기에서 말했듯이 “결국 나라가 심난하면 선교사업은 도움이 된다. 좋은 정부 하에서는 서양의 학문이나, 과학이 회의론과 불가지론 등을 수반하게 되니까요”라고 했다.

이것은 오늘의 상황과 틀리지 않다. 한국개신교는 아서 브라운박사가 자신의 저서 <극동의 지배>에서 밝히고 있듯이, 조선의 백성이 천박하고, 미개하기 때문에 복음을 빨리 받아들였다는 말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도 한국교회가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상황에서 IMF의 위기가 닥쳐을 때, 새로운 교인들이 교회로 몰려왔다는데서도, 그것을 이해할 수 있다.

해밍톤에 의하면 선교사들은 미국문명을 가르치고, 기독교가 서양문명이라는 것을 가르치기에 바빴다. 당시 한국의 백성은 선교사들의 생활양식이 선망이었다. 이들은 한국의 미개하고 천박한 백성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했다. 또한 일부는 미국의 수출업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스파이 노릇을 했다. 이러한 선교사들의 과오는 ‘네비어스’의 선교정책에 따라 진행되었으며, 자립경제를 이루기 위해 ‘복음’과 ‘부흥’이 크게 강조됐다. 원산부흥운동과 평양대부흥운동도 여기에 기인하고 있다. 

언더우드는 석유, 석탄, 농기구를 수입해 한국인에게 되팔았으며, 알렌의 선교직원이었던 그레함 리와 모펫 등은 압록강 채벌권을 얻어내 3천 그루의 나무를 벌목해 이득을 챙겼다. 우스운 것은 한국정부가 세금을 부과하자 이들은 세금요청이 불법이라며, 생떼를 쓰기도 했다. 알렌의 이 같은 장사는 여기에서 끝나지를 않았다. 

황실의 외교고문관 나아가 미공관의 외교관으로 있으면서, 최초의 전차노선, 최초의 도시발전소, 상수도, 전화시설, 현대식 관청건물 등을 얻어내 미 사업가들에게 중개하기도 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운산의 금광채굴권을 따 내기도 했다. 운산금광을 통해 알렌은 엄청난 이득을 챙겼다. 그는 3천명의 노동자에게 1년간 지불한 임금이 10만달러라고 저임금을 자랑하기까지 했다. 한마디로 알렌에게 있어서 한국은 제국주의자의 지배 활동무대였으며, 알렌을 협력하던 선교사들 역시 사업가로서 명성을 날렸다.

민족교회 비판하기 바쁜 목회자

선교사들의 이같은 형태는 이런 제국주의의 한국 예속화를 정당화 해주었다. 한국을 ‘보잘 것 없는 곳’, ‘자치능력이 없고, 종주국을 가져야 한다’ 등 조선의 백성을 비하하며, 종속주의적인 의식을 거침없이 발휘했다. 이 때 일본과 미국은 비밀리에 비밀협정이 진행되고 있었으며, 루스벨트 대통령 역시 ‘일본은 미국을 대신해서 싸운 나라’로 극찬했다. 이때부터 일본의 조선침략은 미국의 비호아래 노골화되었다.

이같은 굴절된 역사 앞에서 한국교회가 할 수 있었던 일은 무엇인가(?) 어려운 시절 미국교회로부터 원조를 받았다는 이유로 잘못된 선교사들을 극찬하기에 급급하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이것은 오늘도 마찬가지이며, 목회자들은 강단에서 선교사들의 업적을 나열하며, 우리도 해외로 나가 제국주의 선교를 그대로 실현해야 한다는 말을 서슴지 않고 있다. 한국선교사들이 해외에 나가 물의를 일으키는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일부 한국교회 양심 있는 전덕기목사를 비롯한 정순만 등 기독교인들은 일본의 패권주의와 영미 선교사들의 서양문화 예속에 맞서 민족교회를 주창하고 나섰다. 이들은 민족과 세계의 죄악에서부터 해방시키고, 자유하게 하는 역사적 과업을 수행하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보여 주었다. 그리고 기독민족주의를 형성, 항일투쟁을 벌였으며, 한국적 상황에 맞는 교육사업을 펼쳤다.

하지만 이들 역시 서양지배이데올로기에 깊게 빠져든 한국기독교인들의 의식을 바꾸는데는 실패했다. 더욱이 심각한 것은 반민족적인 모습을 보여 온 한국개신교는, 민족교회론에 입각하여 설립된 교회를 이단으로 매도하는 범죄까지 저질렀다. 이러니 국민들이 한국교회에 무슨 희망을 걸겠는가(?)  

유달상 기자  yds127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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