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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약자 외면하는 자는 기독교인 아니다”물질(맘몬)과 샤머니즘적 축복주의로 변질된 한국개신교를 진단한다

복음을 상품화시킨 한국교회

한국교회가 물질만능주의, 샤머니즘적인 축복주의의 온상으로 대두된 지 이미 오래되었다. 개신교는 19세기 중엽 이래 식민지 지배체제 아래서, ‘정교분리’를 내세워 경건운동과 각성운동을 세계적으로 벌였다. 그것은 영혼과 육신을 분리하는 선교신학에 기초하고 있다. 영혼구원만 고집함으로써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관계성에 있는 인간을 도외시하는 선교활동을 벌였다.

한마디로 삶의 현장에서의 인간구원을 도외시 한 채, 영혼구원만을 이야기하며, 샤머니즘적인 축복주의 신앙만을 강조했다. 이것에 대해 진보적인 신학자들은 추상적으로 영혼구원만을 강조하는 현대교회를 향해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보수적인 신학자와 교회의 모습은 종교개혁자 루터가 주창한 ‘이왕국론’을 왜곡한 것이라는데 문제가 있다. 한국 개신교가 선교초기부터 내세운 ‘정교분리’는 한국개신교의 목회자와 교인들의 정치적 봉사를 철저하게 막았으며, 교인들을 교회 안에 매몰시키는 결과를 초래, 교회와 사회가 분리되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

한국개신교의 선교신학적, 사회윤리적, 정치적 이탈과 왜곡은 1970년대 미국의 성장동기배경론으로 탄생한 ‘교회성장론’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이 때부터 한국교회는 ‘삶의 현장’과 동떨어진 ‘맘몬’을 노래하기 위한 물질만능주의와 샤머니즘적 축복주의를 부르짖게 됐다. 한마디로 복음을 상품화시킨 보수적인 한국개신교는 사회적 약자들을 돌볼 겨를이 없었으며, 오히려 무제약적 경제논리로 몰아가는 잘못을 범했다.

무제약적인 경제논리, 상품화시킨 복음에 힘입어 70-80년대 한국개신교는 세계선교사들이 놀랄 정도로 크게 성장했다. 여기에 탄력을 받은 한국개신교의 교단들은 교회 배가운동을 벌였다. 한마디로 이것은 1만교회운동, 2만교회운동, 하나님나라 선교 3천교회운동, 5천교회운동으로 나타났다.      

또한 교단 간, 교회 간의 불건전한 성장 경쟁을 야기했고, 이것은 교인쟁탈전이라는 결과를 불러 일으켰다. 여기에는 온갖 수단과 방법이 동원되었으며, 작은교회들은 중대형교회와 교단에 편입되는 결과도 초래했다. 또한 이러한 성장주의의 결과는 ‘하나님의 주권주의’를 이탈하는 반신적인 업적주의를 낳았다. 즉 한국개신교는 물질만능주의와 샤머니즘적인 축복주의의 온상이 되어, 맘몬과 바벨을 승리자로 찬양, 우상을 숭배하는 이단 및 사이비로 변질되었다.

특히 2010년도를 넘어서면서 한국개신교는 자본주의적 교회성장론의 한계를 드러내면서, 교단간의 통합, 또는 작은교단 흡수, 교단을 통째로 빼앗아오는 현상을 일으켰다. 최근 일어나고 있는 모교단의 무분별한 교회를 빼앗는 행위는, 교인을 기성교회에 침투시켜 교인과 교회를 빼앗은 신천지에 비교하고 있으며, 신천지보다도 더한 교단이라는 비난을 받기에 이르렀다. 한국교회의 모순으로 제기되고 있는 교인쟁탈전, 교회 빼앗기운동, 교회배가운동 등은, 교회분열, 교단분열이라는 악순환을 거듭하게 했고, 실적주의에 매몰된 나머지 영미의 제국주의 신학과 식민지신학, 지배자의 신학을 제3세계에 이식시키는 결과를 불러 일으켰다.

이 같은 한국교회의 잘못은 분명 가난한 이웃과 고난당하는 이웃을 멀리한 나머지 일어날 수밖에 없는 현상임에 틀림없다. 또한 한국개신교가 제국주의적 선교신학과 식민지신학, 그리고 지배자의 신학을 그대로 받아들인 결과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틈을 타고, 전국 방방곡곡에서 이단 및 사이비들의 극성이 도를 넘었고, 한국교회는 교파주의라는 혼란에 빠지게 됐다. 여기에다 이단 및 사이비들의 교단과 교단을 향한 도전은 도를 넘어, 한국개신교를 혼란에 빠트리고 있다.

   
▲ 사회적인 약자를 외면하는 행위는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이며, 신앙고백에도 문제가 있다.(사진은 특정기사와 관련 없음)

“사회적 약자 외면은 하나님을 부정하는 행위”

한국개신교, 식민지신학과 지배자신학 그리고 백인문화 극복 절실
‘목레기(목사+쓰레기)’는 사회적 약자 외면 결과에서 얻어진 이름

사회적 약자 외면, 곧 이단범죄

독일의 신학자 비서트 후프트는 1968년 세계교회협의회 움살라대회에서 “인종차별주의자와 같이 사회적 약자에 대해 책임지지 않는 자는 그리스도 신자가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가난한 이웃들을 위한 책임을 회피하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이며, 이단의 죄를 범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신앙고백’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사실 한국개신교의 교인들은 주일예배와 매 예배시 기도를 통해 가난한 자와 소외된 자, 그리고 고난당하는 민족을 위해 기도하며, 그들에게 하나님의 ‘은총의 해’가 임하기를 기도해 왔다. 하지만 이러한 기도는 구호에 끝나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며, 실천에 옮기지를 못했다. 따라서 세상 사람들은 한국개신교를 향해 말만 앞세우는 예수쟁이,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 바벨을 노래하는 사람 등으로 치부했다.

그럼에도 한국개신교의 목회자들과 교인들은, 세상 사람들의 외침을 듣지 않았으며, 그리스도인이기를 스스로 포기하고, 사회적 약자들의 울분을 달래주지를 못했다. 오히려 부자들의 눈물을 닦아주며, 이들의 입맛에 맞는 메시지를 선포하고, 일부 목사는 ‘가난도 죄’라는 쓰레기 같은 말도 거침없이 내뱉었다. 그것도 신성한 강당에서 말이다. 오늘 한국교회의 목사들이 ‘목레기’라는 말을 듣는 이유도, 강단에서 사회적 약자들의 아픔을 외면하고, 이들을 비하하고 참담하고 쓰레기 같은 말을 내뱉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일부 한국개신교의 목사들은 이것이 바로 ‘복음’이라고 현혹시키고 있다.

그리고 식민지신학과 지배자신학, 백인문화에 길들여진 한국개신교의 목회자들은, 유럽과 미국이 부자나라가 된 것을 극찬하며, 마치 하나님의 축복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떠들고 있다. 분명한 것은 이들 1세계가 가난한 나라를 세계화라는 이름 아래 침략해, 빼앗고, 착취했다는 사실이다.

세계교회협의회 경제백서에 따르면, 세계인구의 1/4인 13억 명이 절대빈곤에서 헤어나지를 못하고 신음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들 중 9억의 인구는 빈곤으로 인해 문맹에서 탈출하지를 못하고 있다. 여기에다 남반부의 대부분의 나라는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세계경제질서로 인해 갈수록 부채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이제 선교도 변화되어야 한다. 피선교국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피선교국 국민들의 심성을 담아내는 그리스도 선교로 말이다.       
  
하나님나라 선교신학으로 전환 절실 

예수님께서는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한쪽을 미워하고 다른 쪽을 사랑하거나, 한쪽을 중히 여기고 다른 쪽을 업신여길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맘몬)을 함께 섬길 수 없다.(마태복음 6장24절)”고 재물(맘몬)을 확실하게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오늘의 현실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속에서 하나님을 승리자로 찬양할 수 있는 그리스도 선교의 비전을 분명하게 제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인들은 한국개신교가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 하나님나라 선교를 위해서 활동했던 당시를 기억하고, 이들과 함께하는 선교계획을 세워야 하며 △공동체성과 연대성을 회복하고, 그리스도인들은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불의에 저항하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며 △오늘의 체제에서 식민지신학과 지배자신학에서 탈피하고, 이데올로기의 신격화를 배제하며 △성서 및 그리스도의 전통에 서서 세계 고등종교와 협력을 이루고, 분열과 갈등의 중심에서 중재자와 화해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분명한 것은 분열과 갈등, 목회자의 음주난동 및 윤리적 타락, 경쟁적인 담임목사 세습, 사회적 약자들을 외면하는 한국개신교는 먼저 부자들의 교회로 변질된 교회를 갱신하고, 중세의 식민지신학과 지배자의 신학을 극복해야 한다. 또한 한국개신교는 아집과 고집을 버리고, 하나님의 선교정신에 따라 건강한 시민운동단체들과 연대, 건강한 사회발전에 기여하고, 선교의 자원을 만들어내야 한다. 또 정의롭고 평화로운 자연을 보전하는 삶을 구현하고, 구체적인 실천의 삶을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세계화시대 기독교의 두얼굴> 2007년 손규태 저 한울아카데미 참조)

성경 아모스서 5장 21절부터 24절은 오늘 한국개신교의 상황을 적나라하게 적고 있다. 우리 모두 이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나는 너희가 벌이는 절기행사들이 싫다. 역겹다. 너희가 교회로 모여도 도무지 기쁘지 않다. 너희가 나에게 빈 재물이나 곡식을 바친다 해도, 내가 그 재물을 받지 않겠다. 너희가 화목제로 바치는 살찐 짐승도 거들떠보지 않겠다. 시끄러운 너의 노래 소리를 내 앞에서 집어치워라. 너희 거문고 소리도 나는 듣지 않겠다. 너희는 다만 공의가 물처럼 흐르게 하고 정의가 마르지 않는 강처럼 흐르게 하여라.”

유달상 기자  yds127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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