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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물질적 축복 결국 부자들만의 교회 잉태물질문명의 세속에 길들여져 가는 한국교회를 점검한다
기독교한국신문 | 승인 2015.02.11 11:39

 부자된 한국교회

한국개신교는 1970년대 경제적 번영과, 그 과정에서 크게 성장했다. 그 중심에는 한국개신교가 부자들의 교회, 중산층의 교회, 자본주의의 교회로서 정치적, 물질적 축복을 누린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로 인해 한국개신교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예언자의 전통을 상실하는 결과를 불러 일으켰다.

이때부터 교회 안에서는 성장신학과 축복주의라는 우상숭배사상이 크게 자리를 잡았고, 교인들은 경제윤리와 사회적 책임을 망각했다. 또 사회적 공공성도 잃어버렸다. 교회들은 부자들의 정서에 맞는 맘몬교회당을 건축하는데 경쟁을 벌였다. 결국 이것은 목회자의 탐욕으로 나타났고, 맘몬교회당의 좌석을 채우기 위한 교인쟁탈전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이로 인해 맘몬교회와 작은 교회 사이의 갈등도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 또 일부목회자들의 윤리적인 타락은 물론, 담임목사 되물림이 대형교회 중심으로 일어났던 것이, 중형교회로 번져나가는 결과를 낳았다.

한마디로 왜곡된 물질추구와 잘못된 소비문화가 그리스도인들의 안에서도 그대로 나타난 것이다. 이로 인해 교회의 질서가 무너지고, 교회의 직분을 비롯한 모든 사항은 돈과 직결되어 있었고, 아름다운 신앙공동체와 예배공동체도 무너졌다. 교회 안에서 물질로 인한 반목과 갈등은 계속되고, 목회자의 직위는 탐욕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최근 일어나고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H교단의 납골당을 둘러싼 다툼, T교단 은급재단의 비리 등도 예수님의 가르침, 성서의 경제정의를 무시한데서 발단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목소리이다.
이러한 개신교의 모습은 한국 선교초기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섬기는 성서에 나타난 경제관을 목회자들이 상실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오늘 교회 안에서 과거 목회자들의 맑은 정신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강단에서 복음을 외치는 목회자들의 입에서는 대부분 축복을 강조하며, 맘몬교회당을 건축하기 위한 ‘돈의 소리’만 들여오고 있는 형국이다.

이렇게 한국교회가 맘몬의 우상을 좋아하고, 부자들의 교회, 중산층의 교회로 변질된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경제적 번영의 과정에서 정치적, 물질적 축복을 누리며, 성서에 나타난 나눔과 섬김을 통한 사랑의 선교인 ‘성서에 나타난 경제정의’를 실종시켰기 때문이다. 사실 기독교는 2000년의 역사 속에서 교회가 처해 있던 사건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한마디로 기독교가 살아남기 위한 수단으로 정치적, 물질적인 변질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초대교회는 성서에 나타난 대로 로마제국 아래서, 종말론적 공동체로서 소수의 소외집단이었다. 경제활동에 있어서도 예수님의 가르침에 충실하려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사랑의 만나를 나누었고, 선교전략이 이들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그것은 성서의 사도행전에 나타난 성도들의 ‘생활공동체운동’에 잘 나타나 있다. 그러면서도 초대교회의 교인들은 정치적 권력의 박해를 이겨내며, 그리스도의 복음이 세계민족에게로 전파하는 일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한마디로 나눔과 섬김을 통한 사랑의 선교를 실천한 것이다. 기독교가 세계 모든 민족의 종교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따라서 한국선교 초기 선교사들은 가난한 백성들을 위해 의료사업과 사회사업, 그리고 교육사업, 양성평등사업 등을 구체적으로 펼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예수님의 가르침인 나눔과 섬김을 통한 사랑의 신앙공동체운동을 따랐기 때문이다. 이 때 한국개신교는 크게 성장할 수 있었으며, 여기에 영향을 받은 가난한 교인들이 민족의 고난에 적극 참여하며, 독립운동을 주도할 수 있었다. 오늘 한국개신교가 역사 속에서 그런대로 채면을 유지하며, 과거 민족과 함께 나라의 해방을 위해 노력했다고 말 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가난한 이웃과 유리된 채, 부자들을 위한 예배공동체, 중산층을 위한 예배공동체로 변질된 한국개신교를 향해 일각에서, “성서로 돌아가라! 초대교회의 신앙공동체로 환원하라!”고 부르짖고 있다. 그것은 교회가 성서로, 아니 초대교회로 돌아가지 않고서는 잃어버린 선교의 경쟁력을 회복할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세속화된 한국교회, 나눔 섬김의 초대교회 돌아가라”

물질주의와 축복주의에 빠진 한국교회 경제적 위기의 책임을 통감해야
청빈한 생활 영위하는 교회, 가난한 사람들과 연대하는 교회로 회귀(?)

   
▲ 한국교회는 물질주의와 축복주의에 빠진 나머지 초대교회의 신앙공동체의 핵심이며, 성서의 경제관인 나눔과 섬김을 통한 사랑의 선교정신을 실종시켰다.

나눔과 섬김의 사랑의 공동체

그럼에도 한국개신교의 변화를 기대할 수 없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며, 이를 부르짖는 인사들마저도, 경제적 부의 유혹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최근 교인들 중에서 “’청빈한 그리스도인’, ‘맑은 마음을 소유한 목회자‘가 그립다”는 말이 자주 회자되고 있다. 한마디로 탐욕으로 길들여진 목회자의 설교는 꾕과리 소리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한국개신교의 교회들이 초대교회의 ‘신앙공동체’, ‘예배공동체’를 회복하지 않고서는 선교의 경쟁력, 피지배민족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심성을 담아낸 그리스도선교를 펼칠 수 없다. 기독교가 정치적, 물질적으로 적응하면서, 물질주의와 축복주의에 빠져, 교회의 질서를 무너트리고 있다.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정치적, 경제적 체제에 적응해 가는 동안 교회공동체는 세속화될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 반대하는 집단들은 수도원운동을 통해서 교회의 세속화를 철저히 반대하며, 수도원운동을 벌였다. 스스로 운둔 생활을 하며, 자신의 신앙을 지켰다. 또 세속에 동화되는 것을 거부하며, 스스로 고난의 길을 선택했다. 또한 경제적인 부의 유혹을 거부하고, 청빈을 선택했다.

그럼에도 313년 콘스탄티누적 전환이후, 교회는 로마제국 안에서 정치적으로 특권을 누리는 종교적 지위를 차지했다.

이 때부터 교회는 종말론적 차원이 완전히 사라졌다. 대신 세속적인 권력, 세속들과 하나되었다. 그리고 교회가 권력의 주변을 맴돌며, 부를 쫓기 시작했고, 아름다운 신앙공동체는 세속과 다를 바 없이 변질되었다.
중세교회는 봉건영주의 지원, 또는 지원자, 협력자가 되어 예수님의 가르침에 반하는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가 교황권의 강화와 함께 수많은 장원과 토지를 소유한 교회는 더 이상 가난하고, 소외된 사회적 약자들의 교회가 되지를 못하고, 부자들을 위한 교회로 변질돼 부를 쫓는 우를 범했다. 그리고 교회는 타락의 늪에서 깊숙이 빠져들었다. 한마디로 초대교회의 신앙공동체, 예배공동체가 깨지는 결과를 가져다가 주었다.

성서로 돌아가는 환원운동

개신교가 권력의 주변을 맴돌며, 힘을 가진 종교로 변질되고 타락하면서, 루터와 칼뱅은 종교개혁을 일으켰다. 그리고 타락한 중세교회의 성직자와 교인들을 향해 “성서로 돌아가라! 초대교회의 신앙공동체를 회복하라!”고 호소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의 것을 빼앗아 부자가 된 고리대금업자들을 강하게 비판했다.
하지만 종교개혁이 성공하고, 정착하는 과정에서, 군주체제에 편입된 지방교회는 정치적, 사회적 개혁에 전혀 움직이지를 않았다. 이같은 상황은 경건주의와 정통주의 시대에도 마찬가지였다. 계몽주의시대로 들어오면서 교회는 오히려 산업자본주의에 편입되어,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적이 되었다.

이 때 유럽을 중심으로 식민 신학과 지배자의 신학이 정착하는 결과를 불러 일으켰다. 한마디로 ‘복음’과 ‘축복’만을 강조하는 천박한 목소리가 교회 안에서 터져 나오고, 사회주의적 노동운동을 일으키게 하는 빌미를 제공했다.

이것은 교회 안에서 성장신학, 축복주의라는 물신숭배를 지배하게 하는 원인이 되었으며, 교인들은 경제윤리와 사회적 책임을 망각하게 하는 결과를 불러 일으켰다. 이것은 결국 독일의 신학자 칼 바르트로 하여금 위기신학을 태동시키게 했다. 결국 위기신학은 가진자를 위해 존재하는 교회, 정치적 권력에 편입되어 가는 교회로서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것이었다. 또한 정통주의신학에 정면 도전하는 것이었다.

기독교의 가치의 핵심은 믿음, 소망, 사랑이다.(고린도전서 13장) 그리고 인간들 사이에 참다운 관계성을 여기에서 찾는다. 그러나 부자가 된 교회, 자본주의적 교회에서는 믿음, 소망, 사랑의 모습이 실종됐다. 한국개신교 역시 사회적 책임과 강단에서 예언자적인 설교를 강단에서 외치지를 못했다.

오늘 경제적 위기에 처한 나라의 모습 속에서 교회는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 때문에 교회는 계속해서 선교의 경쟁력을 잃어가고, 분열과 갈등, 반목의 모습만 들추어지고 있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한국교회가 선교의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믿음과 소망, 사랑이 지배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한마디로 청빈한 생활을 영위하는 교회, 가난한 사람들과 연대하는 교회를 추구할 때, 비로써 상실한 교회의 신뢰도를 회복할 수 있고, 참된 선교의 길로 정진할 수 있다. 세속화된 한국개신교의 목회자와 교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의 길로 빨리 회복해야 한국교회에 희망이 다가온다는 사실을 빨리 깨달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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