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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교 졸업생과 신입생, 정의와 평화 신학 실현하라“교권의 눈치 살피고, 아첨하는 신학, 경쟁력 없다”

 거대한 종교적 레비아단 집단과 맘몬주의의 파도에 묻혀 학자의 양심을 저버려
신학교 졸업생과 입학생 고난당하는 이웃에게 하나님나라 선교의 복음 선포해야

각급 신학교의 졸업식이 끝나고, 3월 입학식을 앞두고 있다. 신학교의 문을 나서는 목사후보생과 신학교의 문을 들어서는 초년 신학생들에게 왜 신학을 했는가(?) 왜 신학을 하려고 하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먹고 살기 위한 수단으로 신학을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싶다. 또 하나님이 아닌 맘몬, 그리스도가 아닌 달러가 지배하는 세계화에 편승하기 위해서인지 오늘 맘몬과 바벨의 우상을 섬기는 한국교회의 모습을 보면서, 신학교를 졸업하는 목사후보생과 입학생들에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새로운 자본주의적 세계질서를 향한 세계화의 추세에서 신학을 공부한다는 의미가 애매모호하다. 그것도 바알의 물신숭배가 전 인류를 노예화하고, 세계 도처에서 인간의 생명을 제물로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신학교의 문을 나서는 졸업생과 입학생들은 자본주의 질서 속에서 고난당하는 이웃에게 어떻게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선포할 것인지(?) 고민해야 할 때에 이르렀다.
분명한 것은 한국의 신학이 장로교와 감리교의 정통주의와 경건주의에 치우친 나머지, 한민족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심성을 담아낸 그리스도 선교를 펼치지 못했다. 결국 정통주의와 경건주의자들은 한국적 토양에 맞게 태동한 토착화신학, 민중 신학을 이단으로 치부하는 우를 범했다는 사실이다. 또한 경건주의와 정통주의에서 벗어난 신학자들은 강단에서 쫓겨나고, 이단으로 정죄를 받았다.

정통주의와 경건주의 신학자들은 맘몬과 성공주의를 고무찬양하며, 분별력을 잃어버리지 이미 오래되었다. 맘몬주의자와 경건주의자들의 주변을 맴돌며, 잘 얻어먹고, ‘벙어리 개’같은 짓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 2015년도 졸업식이 끝나고, 입학식을 앞두고 있다. 신학교의 강단에서는 맘몬과 성공주의를 고무찬양하며, 분별력을 잃어버린 학자들이 교권의 눈치를 살피며, 아첨하는 변질된 신학만을 외치고 있다.

성서와 복음으로의 회귀

성서는 철저하게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대변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 역시 가난하고, 병든 자, 과부, 아이들의 중심에서, 이들에게 하나님나라를 선포하고, 역사하셨다. 신학교를 나오는 사람이나, 신학교에 입학하는 사람이나, 모두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고, 하나님나라를 선포해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비루들이 고통을 당할 때, 이들의 신음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파라오의 압제 밑에서 구원해 주셨기 때문이다.

“나는 이집트에 있는 나의 백성이 고통당하는 것을 똑똑히 보았고 억압 때문에 괴로워서 부르짖는 소리를 들었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의 고난을 분명히 안다. 이제 내가 내려가서 이집트 사람이 손아귀에서 그들을 구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데려가려고 한다(출애굽기 5장7절-8절”

구약성서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율법 가운데 사회법은 하나같이 민중들, 고아와 과부, 나그네를 돌보는 것을 최대 관심사였다. 한마디로 성서에 나타난 하나님은 억압과 착취로부터 가난한 민중들을 해방시키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복지로 인도하셨다. 한마디로 하나님은 고난당하는 민중들의 신음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이들을 구원하신 것이다.

신약성서의 예수님 역시 베들레햄의 마구간에서 태어나 목자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고난당하는 사람들의 중심에서 평화를 노래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찬가에서 “그리스도는 자기를 비워 종의 모습으로 사람과 같이 되었고 자기를 낮추어 죽기까지 복종했다.(빌립보서 2장 7절 8절)

한마디로 예수님의 시간과 장소는 고통당하는 사람, 즉 민중의 시간과 장소였다. 예수가 성육신한 장소인 교회의 시간과 장소도 고난당하는 사람들의 장소와 시간이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신학교를 졸업하는 목사후보생이나, 입학하는 학생들은 고난당하는 사람들의 시간과 장소의 중심에서 일해야 한다. 여기에서 벗어난 신학은 진정한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학이 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신학은 신민지신학, 지배이데올로기적인 신학이 아니어야 한다. 가난하고 억눌린 인간의 고통이 있는 곳, 전쟁과 기아로 고난을 당하는 인간이 있는 곳, 즉 하나님의 현현과 그리스도의 성육신한 때와 장소가 바로 신학의 출발점이고, 종착점이 되어야 한다.

이 같은 명제에 대해 진보적인 신학자나, 보수적인 신학자나 모두가 부정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신학교 문을 나서는 목사후보생이나, 신학교의 문에 들어서는 초년신학생들은 정통주의와 경건주의에 길들여진 나머지 경제적, 사회적, 종교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에 대해 멀리하며, 반그리스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한마디로 선배 목회자들이 밟은 맘몬과 바벨의 우상을 숭배하며, 장밋빛 교회성장주의와 축복주의에 빠져 있는 것이다.

맘몬 지배하는 세계서 정의 실현

1990년 세계교회는 올림픽경기장에 모여 ‘정의, 평화, 창조질서보전’이라는 주제로 세계대회를 열었다. 이 대회에서 세계교회는 하나님과 계약을 맺은 대로 맘몬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정의를 실현하고, 전쟁과 기아로 고통당하는 이웃과 인간의 탐욕과 욕심을 채우기 위해 파괴되는 자연을 살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과제라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세계교회가 이를 위해 공동 대처키로 했다.

이 같은 결의에도 불구하고 보수적인 한국개신교는 세계교회의 이 같은 결정에 대해 이해하지를 못했다.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았다. 따라서 한국개신교는 권력의 주변을 맴돌며 군사독재권력을 정당화 해주며, 온갖 혜택을 누렸다. 사실 한국개신교는 사회적 약자들을 외면하며, 정의와 평화를 노래하는 사람들을 용공으로 매도하는 잘못을 범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파헤쳐 기도원 및 수양관을 조성했다. 그것은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기도원 및 수양관이 여지없이 들어선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이때부터 일부 한국교회의 목회자와 환경운동가들은 인간과 자연과의 화해를 부르짖기 시작했다. 이것은 맘몬과 바벨을 숭배하는 세계에서 정의를 실현하고, 하나님이 통치하는 세계를 만들고, 난개발로 인해 신음하는 자연을 되살려 한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라는데 문제가 없다. 이것이 바로 신학교의 문을 나서는 목사후보생이나, 신학교의 문에 들어가는 신학생들이 신학을 공부한 이유이고, 신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이다. 하지만 맘몬과 바벨을 노래하는 한국교회의 상황에서 이들이 과연 이 일을 해낼 수 있느냐(?)는 문제는 의문으로 남는다.

신학교에서 하나님의 창조질서보전과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종교적 소외를 당하는 이웃을 위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배운 현장의 목회자들은 이 같은 하나님의 분명한 명제를 망각하고, 분열과 갈등의 중심에서 평화를 파괴하고, 분열을 일삼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신학교를 졸업하는 목사후보생과 신학교에 입학하는 신학생들이, 세계정의 실현과 평화실현을 위해 헌신할 수 있겠는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새로운 교회를 향한 개혁

한국개신교는 올해로 선교 130년을 맞고 있다. 또한 2015년은 광복 70년, 분단 70년을 맞는 해이기도 하다. 과연 한국교회는 지난 역사 속에서 하나님나라 선교를 위해서 얼마만큼 활동을 하고,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심성을 그리스도 선교에 어마만큼 담았는지 냉철하게 생각할 때이다.

한국개신교의 목회자와 교인들은 맘몬과 바벨의 우상을 섬긴 나머지 정의와 참 평화를 실현하는데 매우 인색했다. 그것은 한국개신교가 성장주의와 축복주의에 매몰된 나머지 기아와 전쟁으로 고난당하는 이웃, 기업주에 의해서 생존권을 박탈당한 이웃, 각종 사고로 눈물을 흘리는 이 땅의 어머니들의 눈물을 닦아주지를 못했다. 또한 장애인들과 가난한 이웃을 외면했다.

오히려 한국개신교의 목회자들은 권력의 주변을 맴돌며, 온갖 혜택을 누렸다. 그리고 분열과 분쟁의 중심에서 사회적, 교회적 갈등을 부추겼다. 이것은 분명 예수님이 원하시던 참 평화의 모습은 아니다.

여기에다 한국교회의 ‘성공주의’를 찬양하는 신학자들은 분별력을 잃고, 대접을 받으면서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또한 교회를 집어삼킨 거대한 종교적 레비아단 집단들과 맘몬주의의 파도에 묻혀 침묵하며, 배불리 얻어먹고, 학자의 양심을 저버린 상황에 와 있다. 강단에서 바른말을 하는 예언자, 신학자들은 신학대학에서 쫓겨났다. 대신 교권주의에 아첨하는 소인배 신학자들만 양산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신학대학의 졸업생과 입학생들은 스스로 하나님나라 선교신학을 정립해야 할 때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것만이 진정한 목회자, 신학자의 길이며, 하나님의 나라가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룰 수 있다. 

따라서 오늘 한국교회를 걱정하는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신학교를 졸업하는 목사후보생이나, 입학하는 신학생들이 지금까지 선배목사들이 걸어온 그 길을 그대로 따르지 않을까(?) 우려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유달상 기자  yds127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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