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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누어 먹기식’ 연합과 일치운동 진정성 없다”소리만 요란한 한국교회의 연합과 일치운동을 점검한다.
   
▲ 한국교회의 진정한 연합과 일치운동은 민족적인 문제와 교회적인 문제를 몰각한 상황에서 말 할 수 없다. 사진은 하나가 되지 못한 채 따로따로 드려진 교단주도의 부활절연합예배 광경.

부자교회 중심 연합운동서 벗어나라

한국교회는 영미 교파주의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는 한국교회 안에서 연합과 일치운동의 중요성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는 원인 중 하나이다. 사실 한국교회는 영미의 가부장적 지배이데올로기와 식민지신학을 그대로 받아들인 결과 민족적인 문제와 세계적인 문제에 대해 몰각하고, 기독교를 분열의 종교로 변질시켰다. 즉 가난하고 고난당하는 민족의 공동체와 유리된 채, 성서에 어긋난 ‘맘몬’과 ‘바벨’을 노래하는데 경쟁을 벌이는 잘못을 범했다.

세계교회가 가난하고 고난당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나님의 정의와 평화를 실현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한국교회 역시 민족의 문제인 분단극복과 평화통일에 대한 문제를 몰각한 채, 겉으로만 연합과 일치를 부르짖고 있다. 사실 한국교회는 매일매일 강단에서 민족통일과 분단극복을 기도하고 있지만, 그것은 기도와 행동이 다른 꽹과리 소리에 불과하다.

그것은 맘몬과 바벨의 신학, 가부장적 지배자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지를 못한 영미교회가 전해준 식민지신학을 거르지 않고, 그대로 한국교회가 수용한 결과라는데 이의가 없다. 파라오 밑에서 종살이 하던 고난당하는 이스라엘 민족의 중심에서 역사하신 하나님, 1000년 동안 피압박 민족으로 살아온 이스라엘 민족의 중심에서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인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역사’를 몰각한 결과, 영미교회들은 맘몬과 바벨을 노래하며, 제3세계를 침략해 식민지로 삼는데 기독교를 이용했다.

연합과 일치운동이 부자교회, 부자교단들에 의해 주도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게 한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2013년 부산에서 개회된 WCC 총회 역시 부자교회와 부자교단에 끌려 다니면서, 교회연합과 일치운동에 대한 정체성이 상실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2015년도 부활절연합예배도 겉으로는 교단연합 및 단체가 주도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부자교회의 목사들에 의해서 주도되면서, 한국교회 전체의 축제로 드리지 못했다. ‘부자교회들만의 축제’로 끝나버린 것이다. 오히려 ‘따로국밥식’으로 제각각 사방으로 흩어져 부활절연합예배를 드림으로써, 부활하신 예수그리스도를 다시 십자가에 못을 박는 결과를 저지르고 말았다.

이러한 연합사업은 겉으로는 대성황을 이루었는지는 몰라도, 진정한 연합과 일치운동의 기초가 되지는 못했다. 한마디로 연합과 일치운동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분명 연합과 일치운동은 민족적인 문제를 몰각하고서는 말할 수 없다. 그렇다 보니 부활절연합예배에서 나오는 말들은, 분단의 아픔을 겪는 민족에게 희망을 주기는커녕, 단순히 개교회 설교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것이다.  

2015년 부활절을 앞두고 열린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기자회견 자리에서는, 동협의회 관계자가 “2014년 부활절연합예배의 설교가 개교회의 강단에서 설교하는 수준, 부흥사의 설교에 불과했다”고 일갈했다. 이는 오늘 한국교회가 진정한 연합과 일치운동의 진정성을 담보해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교단협의회가 주도한 2015년 부활절연합예배 역시 순서지에 실린 설교문과 달라, 이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도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다. 민족적인 문제와 세계적인 문제에 대해 몰각한 한국교회가 선교 130주년, 분단 70주년, 광복 70주년을 맞아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벌이겠다고 선언했다. 이것 역시 대형교회 목회자가 중심에 서 있다는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본국가주의에 쉽게 굴복하고, 남북분단의 중심에 있었던 한국교회가 선교 130년, 분단 70년, 광복 70년을 맞은 민족 앞에서 무슨 기념행사를 가질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고난당하는 사람들 속에서 역사하신 ‘성령의 역사’ 몰각”

과거 한국교회는 일본제국주의 아래서 고난당하는 민족, 아리랑고개를 힘겹게 넘나들은 이 땅의 고난당하는 사람들과 함께하지 못하고, 일본국가주의에 굴복하며 권력의 주변에서 온갖 혜택을 누렸다. 또 군사독재정권에 협력하며 고난당하는 이웃을 철저히 외면했다. 도리어 국민들 사이의 양극화를 부추기도 했다. 교회분열도 모자라 동서분열을 일삼았다. 예언자적인 사명을 감당하지 못한 잘못도 범했다. 이 같은 죄를 먼저 회개하고, 오늘의 상황에서 새로운 세계, 즉 교회를 향한(새로운 공동체) 논의, 민족적인 최대 문제인 남북통일과 세계통일에 대해 고민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망각하고 말았다. 이것이 지금까지의 교회의 연합과 일치운동의 현주소라고 말할 수 있다. 

뜻 있는 한국교회의 소수 선교신학자들은 “한국교회가 기도하고, 연합과 일치운동의 진정성을 보일 때, 비로소 하나님나라가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진다”고 공통된 목소리를 내고 있다. 문제는 한국교회가 명예욕과 물욕, 탐욕에 길들여지면서, 이 같은 진리를 몰각하고, 강단에서 ‘악마의 금전’, ‘하늘의 뜻’, ‘기복신앙’ 등의 천박한 목소리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자신의 명예와 탐욕을 위해서 교회를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한국교회는 많은 교회가 모여 연합과 일치운동을, 부흥사들의 연합성회, 교단과 교파를 초월한 부활절연합예배, 연합기도회 등을 드리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그러나 민족적인 문제와 세계적인 문제에 대해서 몰각한 연합과 일치운동은, 분명 연합이 아니며, 일치가 아니다. 말 그대로 연합예배이며, 연합성회이다. 이것마저도 일부 목회자들의 탐욕과 명예욕 때문에 분열에 분열을 거듭하고 있다. 그것은 연합이란 이름 아래 수백 개의 단체가 우후죽순처럼 일어나는 것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그것은 연합과 일치운동을 강조하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도 마찬가지이다.  
     
평화와 정의의 공동체로서의 교회

이제라도 한국교회는 교회연합과 일치운동의 방향을 전면 수정, 교회를 교회되게 해야 한다. 교회가 교회되게 한다는 것은 바로 평화와 정의, 사랑과 생명의 공동체를 실현하는 것이다. 세계교회가 인류공동체라는 세계문제에 대해서 논의하였듯이, 한국교회도 연합과 일치의 과제를 민족공동체 갱신, 민족통일과 결부된 논제들을 놓고, 연구하고 실천하는 방향으로 전면 수정해야 한다.

그 이유에 대해서 박순경 박사는 자신의 저서 <민족통일과 기독교>(1986년, 한길사)에서 “서양기독교가 세계분단을 예비하고, 지속시키는 요인이 되어 왔듯이, 한국에서의 기독교선교와 교회도, 민족분단과 그 지적의 요인이 되어 왔다”면서, “이제 세계교회연합은 세계분단을 극복하고, 한국에서의 연합과 일치운동은 현재 민족의 고난의 원천인 분단을 위해 고민하고, 이를 위해 함께 논의해 가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박 박사는 또한 복음은 성서적으로 본래부터 교회의 소유물이 아니라, 교회선교에 위탁된 것으로서, 세계와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하심 자체이며, 분단극복은 교회내적 요인이며, 이것은 복음의 요청임을 말하고 있다.

한마디로 분단 상황에서의 교회 내적인 징조들은 교회를 새롭게 하는 누룩이며, 새로운 사건으로 규정짓고 있다. 교회의 예언자적 직분은 구약성서의 예언자에 의해서 예증되었듯이, 시대의 징조들에 직면해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복종하고, 평화와 정의, 그리고 사랑의 새로운 공동체를 향해 달려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한국교회에 주어진 진정성을 담은 연합과 일치운동이며, 기독교에 도전하는 세력에게 분명하게 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민족사적 책임을 다하는 교회 되자

박 박사의 말과 같이 민족통일의 문제는 한국교회 전체의 한 주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것은 정치적, 문화적, 사상적 통일의 기초 작업이 아니라, 복음과 신앙에 입각하는 위치에서 화해자와 중재자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또한 서양기독교의 오류를 넘어서는 새로운 한국교회의 방향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기독교가 내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 분단된 세계와 민족의 문제를 공동으로 규정하고, 극복한다면 그것은 분명 하나님나라운동의 새로운 선교가 될 것이다.

이와 같이 교회연합과 일치는 민족통일 극복과 통일된 새로운 민족사의 창출이며, 교회의 하나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것만이 교회연합의 주제는 결코 아니다. 교회연합은 세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에의 신앙에 근거하고 있다.

한국교회의 연합과 일치운동은 보수와 진보의 차이, 민족사적인 문제에 대해서 극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한국교회는 또한 지금까지 신앙의 통일적 근거도 추구하지 않았다. 이것은 교회신앙의 본질문제가 몰각된 것이며, 교회의 분파주의와 교파주의, 명예욕과 욕망에 가득 찬 교회지도자들이 가져다가 준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한국교회는 진정성 있는 연합과 일치운동을 담보해 내기 위한 교회의 근거자체에 관련된 주제들이 갖고 있는 중요성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민족사의 종말론적 구원을 증언해야 한다. 또 복음과 신앙의 통일성, 민족의 통일성을 동시적으로 설정, 교회연합과 일치운동의 방향을 구체적으로 설정해야 한다. 이것만이 분단된 한민족과 한국교회에 희망을 가져다가 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한국교회가 수행해야 할 연합과 일치운동이다.

유달상 기자  yds127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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