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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독도 영유권 주장 등에 한국개신교 침묵하는가(?)“일본국가주의에 굴복한 한국교회 패권주의 부활에 할 말 없다”

 일본식민지 하나님의 뜻주장 펼친 인사 옹호하는 교회 무슨 말을
거리마다 일본자동차 넘쳐나도 누구 하나 제재하지 못하는 이 나라

   
▲ 일본국가주의에 굴복했던 한국개신교는 독도영유권 주장 등에 대해 침묵 할 수밖에 없다.
한국개신교 일본만행 할 말 없다

일본의 중학교 사회 교과서에 독도가 ‘일본의 영토’라고 기술하고, 일본 군국주의 부활, 집단자위권 행사, 정신대 만행 부정 등 일본의 패권주의가 부활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제국주의의 국가주의에 쉽게 굴복한 한국교회는 할 말이 없다.

여기에다 한국교회의 일부 목사는 일본식민지가 ‘하나님의 뜻’으로 치부하는 대학교수를 옹호하고 나선 상황에서, 일본 국국주의 부활과 민족의 자존심을 구기는 일본 정치인들의 막말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교회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할 말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일본 식민지 아래서 신사참배를 결의하는 등 국가주의에 굴복한 한국교회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 옳다.

오히려 한국개신교의 목사들은 천박하고 쓰레기 같은 말들을 쏟아내며, 민족의 분열과 교회의 분열을 일삼았다. 그것은 한국개신교가 과거 치욕스러운 역사에 대해서 반성 없이 ‘하늘의 뜻’과 ‘축복’만을 외쳐온 결과이다.

사실 한국개신교는 일본제국주의 아래서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심성을 담아내지를 못한 영미의 교파주의를 그대로 받아들여 분열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교회는 고난과 질병으로 소외당하는 민족의 역사 속에서 성장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개신교는 처음부터 국민들의 의식화와 민족적인 문제를 자각하는 것에 대해 철저하게 막았다. 오히려 선교사를 비롯한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은 피압박민족의 한을 달래주는 ‘한의 사제’로서의 역할보다도, 일본제국주의의 한국 신민지를 정당화 해 주는 일에 앞장섰다.

한마디로 권력의 주변을 맴돌며, 온갖 혜택을 받았다. 기독교인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독립운동은, 깨어난 지식인들이 교회로 흘러들어와 교회의 목사들과는 무관하게 가난한 농업농민, 천박한 교회여성들의 조직을 이용해서 독립운동을 벌였다. 3.1만세운동과 105인 사건이 기독교의 역사로 높이 평가받는 이유이다. 분명한 것은 당시 선교사들은 일본에 협력하며, 조선백성의 독립운동을 철저하게 막았다는 것이다.

이들 선교사 대부분은 ‘기복신앙’과 ‘축복’,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외치며, 교회부흥에만 몰두했다. 즉 교회다운 교회를 만들지 못했다. 그렇다보니 한국개신교는 일본국가주의에 쉽게 굴복하고, 젊은 여성괴 젊은 청년들을 향해 ‘황국신민’으로서, 일본군 또는 정신대로 나갈 것을 연설하고 다녔다. 오늘 한국개신교가 일본정신대로 끌려갔던 젊은 여성들의 ‘한’이 민족의 문제로 되돌아오고 있는데도, 침묵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리고 일본의 군국주의 부활에 대해서 행동으로 보여주지를 못하는 이유이다.

거리마다 일본차로 넘쳐나고

이스라엘역사 속의 하나님, 성서속의 하나님은 소외되고, 고난당하는 사람들 속에서 역사하셨다. 에수님도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하나님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포하셨다. 한마디로 이들 가운데 계시면서, 이들이 대망하는 하나님나라를 선포하신 것이다. 분명 하나님 나라의 주체가 이들이라는 것을 선포한 것이다.

헌데 한국개신교는 성서속의 하나님의 역사하심, 성서속의 예수님의 역사하심, 십자가의 정신을 몰각하고, 부자들을 위한 종교로 변질시켰다. 예수님은 정치적, 문화적, 종교적 이념을 뛰어넘어 가난한 사람들 속에서 이들과 함께 혁명을 일으킨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나라운동과 예수운동을 몰각한 한국개신교는, 일본의 게속되는 만행 앞에서 민족을 위해서 떳떳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 천박한 영성운동이나 말해야 하는 것 이외는 아무것도 없다. 이런 사정을 미루어 볼 때, 한국개신교가 일본의 만행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한국개신교가 하나님의 참뜻, 예수님께서 공생애 동안 보여주신 십자가정신을 몰각한채 ‘민족의 한’, 이웃나라의 만행을 보고도 침묵 할 것이냐(?)는 것이다. 한국개신교의 교회앞마당에 세워진 일본차들의 모습은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민족성을 상실한 채, 목사의 천박하고, 쓰레기 같은 설교만을 듣고 있다는 사실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라는데 이의가 없다.

이 뿐만 아니다. 우리의 거리는 일본차가 질주를 해도 누구 하나 제재를 가하는 사람 없다는 것은 민족의 자존심은 구겨질대로 구겨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도 그럴 것이 백주대낮에 서울의 한복판에서 일본천황의 생일잔치가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차의 질주는 당연하다. 이 생일잔치에 국민들이 뽑아준 국회의원을 비롯하여 기업인 등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은 크다. 일제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한국지도자들의 모습은 한마디로 민족의 자존심마저도 구겨버리는 민족 앞에 큰 범죄를 저질렀다.

백주 대낮에 천황 생일잔치라니

이렇게 민족의 자존심마저도 구겨버리는 목사와 정치지도자, 그리고 경제계인사들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대제사장과 율법학자, 권력의 주변을 맴돌며 가난한 사람들의을 등쳐먹는 부호. 권력에 빌이 붙어 가난한 사람들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관리들과 비교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들의 잘못을 비판하고,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하나님나라를 선포했다. 그들과 함께하며, 하나님의 나라가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의 것이라고 했다. 이 말은 분명 부자들을 향한, 아니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을 향한 경고였다. 한마디로 로마의 식민체제 아래 있던 이스라엘 민족을 향한 구체적인 응답이었다.

이 응답의 모습이 한국 땅에서는 보이지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다. 한국개신교가 이 땅에 들어온지 130년, 그동안 한국개신교는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축복’을 이야기 하면서, 피압박민족에게 희망을 주지 못했다. 오히려 천박하고 쓰레기 같은 말로 민족간 싸움을 분탕질하고, 교회분열을 일삼았다. 또한 친일행각을 벌인 기독교지도자들은 과거의 잘못에 대해 회개 한번 않고, 세상을 떠났다. 이런 한국개신교가 국민들을 향해 교회에 나오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일본의 게속되는 만행에 대해서 반박할 수 있겠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우스운 것은 일본의 만행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교회의 지도자와 교인들은 ‘일본선교’라는 미명하에 아무 생각없이 즐기고 있다. 오늘 한국교회가 국민들부터 신뢰를 받지 못하고, 경쟁력을 상실하게 된 원인이 바로 민족과 함께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이지를 못한 결과이다.

분명한 것은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은 △가난하고 고난당하는 사람들과 하나가 되어 하나님나라 운동을 벌였다 △예수님의 삶 전체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과 나누었다 △예수님의 삶은 섬기는 삶이었다 △예수님의 삶은 하나님나라로 향해 있었다 △예수님의 삶은 가난한 사람의 갈망에 대한 구체적인 응답이었다

이스라엘 민족은 인간의 통치를 믿을 수 없어 하나님의 통치를 대망했다. 하나님은 이들 가운데서 분명하게 역사하셨다. 예수님도 인간의 삶과 인류 역사를 구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임을 선언했다. 이것만이 민족을 살리고, 인류를 구원에 이르게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를 믿는 한국개신교와 정치지도자들은 최소한 민족의 자존심을 구기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국민들도 스스로 이 땅의 거리에서 일본차의 질주만큼은 막아내야 한다. 그리고 일본을 향한 선교여행도 자제해야 한다. 독독가 우리의 영토임을 세계교회에 분명하게 외쳐야 한다. 일본 아베총리의 미국 국회상하원 연설도 막아야 한다. 그래야만 일본인의 손에 희생된 이 땅의 젊은 청년과 젊은 여성, 그리고 독립운동을 위해 만주벌판을 달렸던 우리의 선열, 아들과 딸을 정신대 또는 일본군에 보내놓고 아리랑고개를 힘겹게 넘나들은 어머니들의 ‘한’을 풀어 줄 수 있다. 한국교회의 목사들은 ‘한의 사제’로서 그 역할을 충실해야 한다는 지적의 목소리를 기쁜 마음으로 수용해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유달상기자  yds127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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