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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 특집 - 결혼은 하나님이 준 가장 위대한 창조적 선물사랑하여 결혼으로 낳은 아이…죽음을 넘는 생명

사랑은 선하고, 창조적 섭리

하나님은 인간의 생명 속에 성적인 욕망을 주었다. 성적인 욕망은 남자와 여자가 하나되려는 갈망이다. 이 갈망은 자녀를 낳음으로써 실현되고, 자녀 속에서 남자와 여자가 하나로 결합된다. 남녀가 서로 하나되려는 갈망을 주고, 결혼을 통해서 함께 살도록 한 것은 하나님의 창조적 선물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아담이 모든 가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창세기 2장 18-25절)

이 성경 구절은 남녀 간의 사랑과 결혼이 하나님의 축복이며, 선물이라는 사실을 잘 드러내 보이고 있다. 하나님은 아담의 일을 거들 짝으로 들짐승과 공중의 새, 집짐승을 지었다. 아담은 이 짐승과 공중의 새에게 이름을 지어주었다. 이름을 짓고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서로의 관계를 맺고, 의사를 소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담은 이 짐승들에게서 짝을 찾지 못했다. 인간은 짐승의 짝이 되지를 못했다. 서로 이해하고 사랑을 주고받아도 아담과 짐승 사이에서 형성 될 수 없었다. 하나님은 아담의 갈빗대를 뽑아서 여자를 만들어 주었다. 성서를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은 여자는 남자의 갈빗대로 만들었으니 남자에게 예속된 존재로 폄하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 열등한 존재로 취급하며, 종속시키려 하기도 한다.

아담이 흙으로 만들어지지 않고, 인간의 갈빗대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분명 아담도 똑같은 인간으로 만들어졌음을 말한다. 하나님이 만든 여자를 보고 아담은 외쳤다.

“드디어 나타났구나!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아담은 짐승들에게 발견할 수 없는 짝을 여자에게서 발견했다. 한마디로 아담과 똑같은 존재, 대화가 통하고,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존재, 그리고 공감하며 하나 될 수 있는 이브를 만난 것이다. 한마디로 내 마음에 꼭 드는 인간을 하나님께서 선물로 아담에게 주셨다.

남녀 간의 깊은 관계는 개인적으로 쾌락의 충족일지 모르지만, 인류의 생명을 보전하고, 종족을 유지하는 수단이다. 남녀의 애정은 죽음보다 위대하다. 그리고 깊다. 모든 젊은이들이 서로 만나 사랑하고, 결혼하여 아이를 낳음으로써 죽음을 넘어서는 생명을 실어 나르고 있다. 때문에 남녀의 사랑은 선하고, 창조의 섭리 속에 속한다. 때문에 이것은 결코 부끄러운 것이 아니며, 아름답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류가 탈락하고, 지배욕과 소유욕의 노예가 된 이후, 남녀의 사랑은 부끄러운 것, 아니 추한 것이 되어버렸다. 타락하기 이전에는 알몸으로 지냈어도 창피하거나, 부끄러운 줄을 몰랐다. 타락한 이후 부끄러워 나뭇잎으로 앞을 가려야만 했다. 그리고 인간과 인간 사이에 적대관계가 생기고, 남녀사이 지배와 피지배의 종속관계가 성립되었다.

순수하고 천진난만한 인간의 마음은 사라지고, 긴장과 대립, 그리고 불안과 갈등이 생겨났다. 자신을 상대에게 내 맡기고, 상대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마음적 여유는 모두 사라져 버렸다. 대신 상대를 평가하고, 비교하고, 의심하고, 자신을 숨기는 마음의 분열이 생겼다. 결국 남녀관계가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에 이르게 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가정, 반석위에 세우자

과거 봉건시대 부부가 완전한 생활공동체로 함께 일하고 생활
현대 산업사회 이혼율이 급증, OECD 34개 국가중 이혼율 1위
가정은 사랑 배울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평화 공동체로 존재

인간의 욕망에 의해 상처투성이

이러한 인간의 타락은 결국 자신에게 그대로 돌아와 상처로 남게 되었다. 오늘 우리 사회의 이혼율이 급증하고, 존속살인 및 형제살인, 이웃살인 등의 사건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는 것만 보아도 그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오늘날과 같은 산업사회에서 결혼생활을 지속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것만은 사실이다. 대한민국은 세계 이혼율 1위라는 불명예를 얻게 됐다.

그것은 한마디로 생명의 가치와 인간관계가 상실되어 가정이, 아니 부부 관계가 파괴되는 결과를 불러 일으켰다. 그렇다보니 마음이 강퍅해진 인간들은 사랑을 사람에게서 찾는 것이 아니라, 개나, 고양이와 같은 애완동물에 찾고, 여기에 집착하는 결과를 가져다가 주었다. 이것은 분명 병적이라고 할 수 있다.

옛날 봉건시대에는 남자와 여자가 한번 부부의 연을 맺으면, 죽음에 의해 갈라지기 전에는 헤어지는 일이 없었다. 당시에는 이혼이라는 말도 없었다. 여자가 잘못하여 쫓겨나는 일은 있었어도, 합의해서 이혼하는 일은 없었다. 그것은 부부가 완전한 생활공동체였기 때문이다. 논농사, 밭농사를 지으면서, 부부는 하루 종일 땀을 흘리며, 함께 일을 했다.

아내는 길쌈하고 바느질해서 남편과 자녀의 옷을 만들었고, 밥을 지어 가족 모두의 생명을 책임졌다. 대신 남편은 지붕을 이어야 했고, 밭과 논을 갈며, 나무를 해서 가족들이 따뜻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쉬지 않고 일을 했다. 이렇게 부부는 생존을 위해 평생 함께 일하는 생활공동체였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오늘날의 부부는 함께 지내는 일이 아주 짧아졌다. 어찌 보면 직장의 동료들보다도 함께 지내는 일이 짧다. 부부간의 대화도 자연스럽게 짧아졌으며, 여성 역시 직장동료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이로 인해 많은 문제들이 야기되기 시작했고, 부부간의 관계가 남보다도 못한 관계로 변질되어 버렸다.

부부는 밤에 잠깐 보는 관계가 되어버렸으며, 남자나, 여자 모두 윤리적으로 타락하는 횟수가 잦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민국의 가정은 무너지기 시작했고, 이혼은 유행이 되어버렸다. 대한민국은 OECD 가입 34개 국가 중 이혼율 1위라는 불명예를 얻었다.

결혼은 분명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며, 축제이다. 그리고 인간생활의 기초이며, 토대이다. 그것이 물질문명의 발달과 인간의 탐욕에 의해 흔들리고 파괴되고 있다.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남편이 아내를 살해해 주검을 유기하고, 부인이 정부를 시켜, 또는 독극물로 남편을 살해해서 주검을 유기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자녀들은 부모를 살해하고, 형제를 살해하고, 이웃 친구를 살해하고 있다. 이렇게 죽어간 사람들의 피가 땅에서 울부짖고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벨의 울부짖음을 들으시고, 응답하셨다.

사랑과 생명공동체의 상징

가정은 인간이 사랑을 배울 수 있는 가장 기초적인 장소이다. 아직까지 부모의 사랑을 대신할 수 있는 인류사회는 어디에도 없다. 자신의 약점과 비밀을 스스럼없이 드러낼 수 있는 곳은 가정 이외는 아무 곳도 없다. 가정은 자신을 내놓고 맡길 수 있는 곳이며, 한 사람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는 곳이다. 경제적인 필요를 떠나서 정신적으로 근원적인 합일, 온전한 일치를 이루는 곳이다.

특히 어머니의 젖은 말 그대로 생명의 젖줄이다. 그리고 어머니의 태는 생명의 근원이다. 때문에 어머니의 젖과 태를 생명, 사랑, 평화, 행복이라고 말한다. 현대사회는 이러한 생명의 근원인 어머니의 젖과 태를 상품화시켜 버리면서, 범죄가 발생하고, 가정이 해체되고 있다. 여기에다 가정의 질서를 세워주던 가부장적인 사회제도는, 여권신장이니, 여성해방이니 해서 여성들의 도전이 거세지면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자녀와 부모사이에 존재하던 위계질서도 붕괴되기 시작했고, 가족 간에 반목과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한마디로 생활의 리듬과 생각, 느낌이 현대 물질문명에 젖어들면서 평화로운 가정, 사랑과 행복이 넘치는 가족공동체가 해체되고 있는 것이다.

사랑과 평화, 그리고 행복의 가족공동체는 자기기준이 아닌, 상대의 기준을 생각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에 근거한 가정,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가정, 반석위에 세운 가정이다. 또한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실현하는 평화와 사랑의 공동체이다.

유달상 기자  yds127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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