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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혐오적인 동성애 반대에서 벗어나라”영웅주의적 보여주기식 방식 탈피해 진심으로 회개해야

2015년 6월 서울광장. 동성애자들의 축제인 퀴어문화축제가 보수기독교의 거친 반대와 우려 속에서도 막힘없이 전개됐다. 성소수자들은 자신들의 인권을 존중해달라며, 보기 민망한 옷을 입고 거리를 활보했다. 여남은 살 먹은 아이들은 엄마의 손을 잡아끌며, 동성애자들을 향해 “뭐하는 아저씨들이야”를 외쳤다. 이날만큼은 대한민국 수도인 서울의 한복판이 동성애자들의 성지였다. 인권을 짓밟히는 성소수자라 하기에는 동성애자들의 당당한 워킹과 배짱은 일반인을 능가했다.

이에 뒤질세라 한국기독교총연합회를 비롯해 한국교회연합 등이 모여 구성한 한국교회동성애대책위원회는 같은 날 대한문광장에 모여 동성애조장 중단촉구 교단연합예배 및 국민대회를 개최했다. 뜨거운 태양 아래서도 약 1만 5천여 명의 교계 지도자 및 성도들은 ‘동성애 NO! 건강한 대한민국’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동성애 및 퀴어축제 반대를 위한 목청을 높였다. 한국교회 지도자들도 저마다 동성애가 분명한 죄이고,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사안이라며 퀴어축제와 같은 반성경적, 음란한 문화가 즉각 중단될 것을 촉구했다.

양측의 팽팽한 신경전은 계속 됐다. 가뜩이나 더운 도심을 더욱 뜨겁게 달궜다. 그런데 이상하게 동성애자들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는 시민들을 쉽게 찾기 어려웠다. 다소 의아한 표정을 짓기는 했으나, 성소수자들의 축제를 신기한 마냥 쳐다보기 일쑤였다. 보기 민망한 옷을 입은 동성애자들이 스쳐 지나갈 때에 눈살을 찌푸리기는 했으나, 그것도 잠시 이내 그들의 퍼포먼스에 눈을 뺏기고 말았다. 동성애를 반대하거나 찬성하는 차원이 아닌 말 그대로 축제를 즐기는 모습이다.

오히려 이들은 뜨거운 태양 아래 목이 아플 정도로 동성애 반대를 외치고 있는 보수 기독교를 향해 인상을 찌푸렸다. 시민들의 눈에는 자신들이 즐기는 축제를 방해하는 종교로 밖에 여기지 않는 눈치였다. ‘시끄러운 이웃’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시민들은 신경질적이며 날카로운 시선으로 ‘동성애 아웃’을 외치는 보수 기독교를 바라봤다. 왜일까? 그들이 동성애를 찬성하는 것일까. 아니면 축제를 즐기는데 시끄럽게 방해했다는 이유였을까? 분명한 것은 시민들은 동성애를 찬성하거나, 혹은 축제를 시끄럽게 방해한다는 이유만으로 한국교회를 향해 손가락질을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실 동성애 반대를 외치는 보수 기독교의 행동 자체에는 큰 문제가 없다. 시민들도 여기에는 특별한 악감정이 없다. 성소수자의 주장이 있듯이 기독교만의 입장도 있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 맞는 말이다. 동성애자들이 자신들의 입장을 거침없이 내놓듯이 기독교도 성경에 입각한 동성애 반대를 외칠 수 있다.

실제 ‘너는 여자와 교합함 같이 남자와 교합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레위기 18:22), ‘누구든지 여인과 교합하듯 남자와 교합하면 둘 다 가증한 일을 행함인즉 반드시 죽을지니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레위기 20장 13절) 등의 구절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성경에서는 동성애를 비판적 시각으로 바라본다.

성경에 입각해 살펴보면 동성애를 ‘가증한 일’로 보고, 반드시 ‘죽을지니’라는 말씀처럼 대가를 치를 것을 경고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동성애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아름답고 고차원적인 남녀의 성적 차이를 해체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의 정체성과 성의 정체성에서 빗나간 일탈행위다. 특히 하나님이 주신 가장 위대한 선물인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가정의 정서를 파괴하는 행위나 마찬가지다.

따라서 기독교의 입장에서 얼마든지 동성애자들을 향해 비판 섞인 주장을 펼쳐도 그만이다. 그런데 왜 동성애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위배하는 죄악임에도 일반 시민들의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고, 각종 비판이 나오는 것일까. 또 내부적으로도 동성애 반대집회가 오히려 동성애자들의 축제를 홍보해준 셈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한국교회가 기독교가 생명의 종교, 사랑의 종교, 평화의 종교라는 사실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모범을 보여야할 한국교회가 일부 목회자들의 온갖 윤리적 타락한 행위로 이미지가 땅바닥에 곤두박질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겨 묻은 개가 똥 묻은 개를 나무란다’는 것처럼 서로 결점이 있기는 마찬가지인데, 조금 덜한 사람이 더한 사람을 변변치 못하다고 흉보고 있다는 인식이 강하다.


부끄럽지만 그동안 한국교회 안에서 일어난 윤리적으로 크고 작은 일탈행위는 차마 입에 담기 힘들 정도다. 중대형교회의 목회자가 교회 청년들을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르거나, 일부 담임목사는 성도와 간통을 저지르거나 어린 아이를 유인해 성폭행한 일도 있었다. 내로라하는 서울의 유명 대형교회 목회자가 청년을 상대로 한 성폭행 및 성추행으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으며, 강남의 모 교회 목회자가 대전, 서울 등 새로 부임하는 교회에서 청년들을 상대로 파렴치한 성범죄를 계속해서 저지른 일도 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인도에서 고아원을 설립한 평신도선교사가 시설에 수용된 아이들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질러 이슈가 되기도 했으며, 제주에서는 9살 난 어린 아이를 성추행해 쇠고랑을 찬 선교사도 있었다. 전체 한국교회를 봤을 때 일부 타락한 목회자가 저지른 범죄라고 치부할 수 있으나, 그러기에는 너무 많은 목회자의 성범죄 관련 뉴스가 언론 가십면을 메우고도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치리해야할 교단의 지도자들은 영적이라는 이름으로 성폭행을 당해 고통 받는 어린 영혼을 치유하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성범죄를 저지른 목회자를 감싸기에 급급하고 이 같은 사실이 외부로 유출될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각 교단 재판국에서도 공정한 판결을 내리기보다는 학연, 지연 등에 얽매여 성범죄를 저지른 목회자를 향해 어떠한 채찍도 들지 않는다. 이런 와중에 제2, 제3의 성범죄자들이 한국교회 안에 독버섯 포자처럼 퍼져나가고 있다. 이를 바라보는 일반 시민들은 “윤리적으로 타락해 저지르는 성범죄는 하나님이 좋아하시는가”라고 되묻는다. 현재로서는 자신있게 대답하기 힘든 상황이다. 분명한 것은 일반 시민들이 기독교의 동성애 반대집회를 신경질적으로 바라본 이유 중 가장 큰 이유였음은 확실하다.


한국교회 내부적으로도 이번 대대적인(?) 동성애 반대집회를 바라보면서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어찌 보면 이번 기회는 한국교회가 하나가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고, 세상에 한국교회의 응집력을 보여줄 수 있는 찬스였다. 하지만 보기 좋게 기회를 발로 차버렸다.

사실 퀴어축제 개막을 앞두고 구성된 한국교회동성애대책위원회에 주요 연합기관과 개혁성을 표방한 단체들 까지 참여하면서 모처럼 한국교회의 힘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러나 대한민국을 강타한 메르스 사태로 인해 한국교회는 “메르스가 확산되는 가운데 대규모 집회를 하느냐”는 국민적 여론을 의식한 듯 퀴어축제 개막식 당일에 준비했던 대규모 반대집회를 취소했다. 그 과정에서 내부에서 잡음이 흘러나왔고, 결국 이를 극복하지 못한 채 또 다른 이름의 급조된 주최측을 탄생시켰다.

일부에서는 영웅주의에 사로잡힌 몇몇 사람들에 의해 주도된 반대집회가 한국교회를 하나로 결집시키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특히 이들이 교계를 외면한 채 일부 일간지에만 행사 일정을 광고로 게재한 부분과 반대집회와 관련된 헌금 등 재정사용에 대해서도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한마디로 한국교회를 외면한 급조된 동성애 반대집회 주최측이 동성애 반대를 외친 것이 오히려 동성애 축제를 대외적으로 홍보해준 꼴이라는 지적이다.

결국 보수 기독교에서도 하나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제각각 지방방송을 내어 효과가 반감됐다. 실제로 내로라하는 교단의 지도자들이 참석했다는 한국교회동성애대책위원회의 국민대회에서 몇몇 교단은 아예 참석을 안하거나, 순서자의 명단에 이름이 없어서 처음부터 뜻이 달랐던 것이 아니었냐는 의혹까지 나왔다. 하나님의 뜻이라며 거창하게 동성애 반대를 주창했지만, 서로 경쟁적 영웅주의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손가락질만 받은 셈이다.


때문에 한국교회는 성경에 입각한 분명한 원칙이 흔들리지 않도록 중심을 서야 한다. 이와 함께 동성애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그들을 무조건 정죄하지 말고, 그들의 아픔이 무엇인지, 사랑으로 품고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의 집에 혐오가 설 자리는 없다’는 구호처럼 차별적인 혐오는 어떠한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동성애를 해도 내 아들이고, 내 교인이라는 생각으로 임해야 한다. 동성애를 인정하라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자녀로 따뜻하게 보듬어줘야 한다는 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동성애에 대해 혐오적인 반대주장만 외치기에 앞서 스스로 윤리적으로 깨끗해지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동안 한국교회가 보여준 파렴치한 행위를 ‘나 몰라라’하고 대사회적인 입장을 제아무리 외친다고 사회가 제대로 들어줄리 무방하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교회 스스로 회개와 각성을 통해 재물과 권력, 탐욕에 얽매여 기독교의 본질을 잃어버린 모습에서 탈피해야 한다. 한국교회 내부적으로 썩은 상태인데 누구를 향해 돌팔매질을 한단 말인가. 이를 사전에 막기 위해서는 한국교회 스스로 윤리적, 도덕적인 타락을 막을 수 있도록 철저히 교육해야 한다. 교회의 목회자들이 강단에 서서 돈의 축복만을 강조할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동성애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교란하는 죄악이라는 점을 가르쳐야 한다.

유종환 기자  yjh448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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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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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믿음 2017-09-18 10:39:04

    동성애에 대해 혐오적인 반대주장만 외치기에 앞서 스스로 윤리적으로 깨끗해지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라는 말씀을 아프게 들어야하지만 지금은 반대를 외쳐야합니다. 우리 먼저 깨끗해지고 그 다음에 외치자라고 지금 우리의 입을 닫아서는 안됩니다. 외쳐야할 때 외치지 않으면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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