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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신뢰성 회복만이 이웃종교와 경쟁 할 수 있다“교회의 공동체성과 사회연대성을 회복하자”

일하는 교회로서 하나님나라운동 벌여야 이웃종교와 경쟁에서 승리
교회사이즈로 목회자 평가하면서, 교회간의 ‘교인쟁탈전’까지 불사

교회의 신뢰도 갈수록 추락

한국교회의 신뢰도가 약화되면서, 한국기독교는 이웃종교와의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 갤럽조사에 의하면 한국교회 목회자의 신뢰도가 타종교에 비교해서 꼴찌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것은 한국교회가 사회적 소통을 상실하면서, 교회의 공공성과 연대성, 그리고 일하는 교회의 모습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교회는 신앙공동체가 지녀야 할 공동체성과 사회적 연대성을 상실한지 이미 오래되었다. 그것은 종교적 특정 개인주의, 교회이기주의, 목회자 이기주의, 목회자 영웅주의, 교파주의, 교회집단주의에 빠져 헤어나지를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교회는 개인주의적 기복신앙과 사회적 책임성 회피, 그리고 미온적인 분단극복과 연대성 상실로 인하여 교회의 거룩성과 그리스도의 복음이 변질되고, 나아가 교회의 가치가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또한 성숙하지 못한 교인들로 인하여 교회와 사회가 소통하지를 못하고 있다. 여기에다 한국교회 지도급인사들의 잘못이 언론을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비난을 한몸에 받고 있다.

최근 일어난 성완종 사건을 비롯한 무기중개상의 비자금 세탁장소로 교회가 악용된 사례, S그룹 회장의 세금포탈 등 기독교인들이 가담한 범죄 행위는 약화된 한국교회의 경쟁력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렇게 한국기독교가 사회와 소통하지를 못하고, 교회의 복음이 변질되고 있는 것은, 기독교가 고난과 수난, 그리고 십자가의 정신, 맑은 정신을 실종했기 때문이다. 또한 교회의 역동적인 모습이 상실되고, 강단에서 천박하고 쓰레기 같은 메시지가 선포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기독교는 선교 초기 가난하고, 소외되고, 고난당하는 사람들과 함께 봉사와 나눔의 선교를 통해 일하는 교회의 모습을 보여줬다. 선교사들의 정교분리에도 불구하고, 이 땅의 가난한 사람들과 소외당하는 사람, 고난당하는 사람들은 교회로 몰려와 민족주의를 형성하고, 일본제국주의에 맞서며, 나라의 독립과 하나님나라를 대망했다. 이는 교회가 역동적이면서, 피압박민족과 소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미의 신민신학과 지배신학이 뿌리를 내리면서, 한국기독교는 피압박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철저히 소외시키면서, 국민들과 멀어지기 시작했고, 교회의 강당에서는 돈!돈!돈! 돈의 돈!돈! ‘축복의 금전’이 외쳐지기 시작했다. 즉 십자가 대신 기복신앙과 축복만을 강조하는 종교로 변질됐다.

고난의 십자가 없는 종교로 변질

분명 한국교회의 기복신앙은 이기심에 기초하고 있으며, 전통적 종교인 샤머니즘의 틀에서 벗어나지를 못하는 결과를 불러 일으켰다. 이 같은 샤머니즘적인 기복신앙은 한국교회의 양적성장에 큰 영향을 주었을지는 몰라도, 기독교적인 교인들의 신앙을 변질시키는 결과를 가져다가 주었다. 따라서 목회자들이 강단에서 외치는 복음은 성서에 나타난 복음과 다르게 변질될 수밖에 없었고, 마치 기복신앙이 기독교의 진리를 포괄하고 있는 것처럼 비쳐지고 있다.

이는 곧 누가 누구를 이단사이비로 규정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했으며, 대부분의 교회가 이 굴레에 있다는 것이다. 오늘 이단사이비 연구가들이 도전을 받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으며, 일부 이단사이비연구가는 이단성 논란에서 헤어나지를 못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한마디로 한국의 기독교는 그리스도의 수난과 희생, 즉 십자가의 정신을 배제시켰으며, 기독교를 가장한 이단과 사이비들이 판을 치는 빌미를 제공했다. 또한 검증되지 않은 춤으로 강단을 오염시키는 무당들도 등장했다. 축복과 예언, 성령, 영성 등을 앞세워 교인들의 주머니를 털어내는 일들이 도심과 산, 전국의 교회와 기도원에서 일어나고 있다. 심지어 돈이 무기가 되었으며, 돈을 가진 목회자들의 주변에는 항상 파리 떼가 우글거리고 있다.

교회의 면면을 살펴보아도 그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돈 때문에 교회가 분열되고, 돈 때문에 교인들이 상처를 받고, 돈 때문에 교단과 단체가 갈라지고, 돈 때문에 교인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 심지어 돈 때문에 이단사이비가 되고, 돈으로 이단과 사이비에서 면죄를 받는 경우도 속출하고 있다. 일부 이단사냥꾼이 돈의 주변을 맴도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연스럽게 한국교회의 강단에서는 헌금을 강요하고, 헌금의 액수로 신앙척도를 평가하는 범죄를 저지르기에 이르렀다. 목회자들이 교인들의 고혈을 짜내는 것은 당연한 것이 되어버렸으며, 헌금을 잘 거두어 드리는 목회자가 대접받는 풍토가 한국교회에 자리를 잡았다.

   
▲ 한국교회는 타종교와의 경쟁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교회의 공동체성과 사회연대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
가진 자의 주변 파리떼 우글

이것은 교인들도 마찬가지이다. 교인들은 교회사이즈 크기에 따라 목회자를 평가하고 있다. 모 일간지가 조사한 한국교회의 차세대주자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가 대형교회 목회자 순으로 조사된 것은 이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그렇다보니 목회자들은 교회의 사이즈를 키우기 위해 교인쟁탈전도 불사하고 있으며, 작은교회는 중대형교회에 흡수되는 경우가 갈수록 빈번해지고 있다.

이것은 진보적인 교회나, 보수적인 교회 모두가 마찬가지이며, 교인들의 신앙생활을 오염시키는 결과를 가져다주었고, ‘축복’을 내세워 교인들의 주머니를 털어내는 기술자까지 등장했다. 이것은 또한 검증되지 않은 가짜목사들을 등장하게 했고, 검증되지 않은 여성목사를 경쟁적으로 양산하는 결과를 낳았다. 한국교회는 마이너스 성장과 함께 교인들이 급격하게 즐어들면서, 모자라는 재정과 교인들을 해우기 위해 성서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더욱이 우스운 일은 교인들의 고혈을 많이 짜내는 샤머니즘적인 목회자, 부흥사, 영성운동가들이 대접받는 풍토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성장 제일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목회자들은 특정목사의 샤머니즘적인 축복설교가 최고인 것처럼 모방했고, 음성과 제스처까지도 그대로 따라하고 있다. 문제는 이것이 복음인 냥 오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투리까지 그대로 모방하는 웃지 못 할 일도 일어나고 있으며, 교회의 공공성이 상실되는 결과를 가져다가 주었다.

한국기독교가 이웃종교에 비교해서 약화된 것은, 교회가 사회와 소통하지 못하고, 십자가의 정신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국교회는 분열과 갈등의 모습을 되풀이하며, 이웃종교와 끊임없는 갈등을 빚고 있다. 한국교회의 분열은 정치적인 분열이 대부분이며, 진리수호를 둘러싼 분쟁과 분열은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한국기독교가 축복주의, 개별주의, 성장주의, 개교회주의, 이기주의에 집착한 나머지 공교회성을 상실하고,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하는 종교로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또 한국의 기독교가 게토화되거나, 성직자 등 특정인의 사유물로 전락, 민족에게 희망을 주었던 교회는 세상 속에서 빛을 잃어 버리고, 말 아래 초라한 등불이 되어버린 지 이미 오래되었다. 또한 신학적, 교회정치적으로 많은 문제를 야기시켰다. 일부서 한국교회를 ‘범죄집단’, ‘악의 축’으로 단언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교회분열 대부분 정치적 다툼 결과

최근 한국교회가 벌인 퀴어축제반대운동만 보더라도 그렇다. 동성애가 분명 잘못이라는 것을 국민 모두가 인지하고 있음에도, 이 운동은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다. 그것은 윤리적, 도덕적으로 타락한 한국교회가 동성애자들보다도, 더 큰 잘못을 하고 있다는 인식이 국민들 마음속에 깊이 뿌리를 내렸기 때문이다. 또한 동성애 축제를 통해 얻어진 헌금은 몇몇 언론사를 살찌우는데 사용됐고, 몇몇의 교회지도자에 의해 강행된 행사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국교회가 축복주의, 개별주의, 성장주의, 개교회주의, 이기주의로 변질되면서, 개별교회들은 통제에서 벗어나, 교회를 사유화시키고, 이단화시키고, 사이비로 전락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것은 한국교회가 공교회성을 상실하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며, 사회와 멀어져가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오늘 한국교회가 마이너스 성장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교회가 60-70년대 크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선교초기 가난한 사람들과 소외된 사람들에게 민족해방과 하나님나라에 대한 소망을 주는 희망의 종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며, 전도자원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80년대 이후 한국교회는 성장위주, 개별주의, 특정인의 사유화에 치중한 나머지 전도자원을 만들어 내지 못했다. 한마디로 교회의 공공성을 상실하고, 특정인의 종교로 변질됐다. 오늘 중대형교회를 중심으로 이단사이비 논쟁이 끊이지를 않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따라서 한국기독교는 민족에게 희망을 주는 종교로 거듭나기 위해 몸부림을 쳐야 한다. 그것은 잃어버린 교회의 공공성을 회복하고, 사회적 소통을 통해 고갈된 전도자원을 만들어내고, 희망의 종교, 생명의 종교, 화해의 종교로 거듭날 때 비로소 가능하다. 한국기독교가 이 같은 사실을 주지하고,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해 예언자적 사명을 회복하기를 당부한다.

유달상 기자  yds127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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