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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극복을 위한 국민적 공감대 형성해야광복 70년, 분단 70년, 선교 130년 맞은 한국교회 행사를 점검한다

한국교회는 광복 70년, 분단 70년, 선교 130년을 맞아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 그리고 민족의 화해, 한국교회의 합치 등을 위한 여러 가지 굵직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사업들이 국민과 교인들로부터 공감을 얻지 못하고, 몇몇 목사의 행사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 그리고 행사를 통해 나온 헌금 역시 분단극복과 북한동포를 위해서 얼마만큼 사용되어지고 있는지(?)를 묻고 있다.

분단극복 행사의 헌금은 어디로(?)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사는 국민 모두의 소원이며, 북한에 고향을 둔 이산가족들의 꿈인 민족통일과 남북한 민족의 화해는 이제 시간이 없다. 그것은 이산의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산가족들의 이 땅에서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광복 70년, 분단 70년을 맞은 한국교회가 분단극복을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분명한 이유이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보아왔고, 한국교회의 선교현장이 그랬듯이 ‘민족의 화해’, ‘분단극복’을 바라는 마음보다는 반공궐기대회 이상의 행사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그것마저도 한국교회 몇몇 지도자들의 행사일 것이라는 지적도 일고 있다. 지난 봄 로얄패밀리 중 한 사람이 밝혔듯이, 광복 70주년, 한국선교 130년 기념행사를 대형교회 목회자 중심으로 진행하겠다고 밝힌 것만 보아도 그것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얼마 전 H단체의 광복 70년, 분단 70년 행사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한 회원이 광복 70주년 기념행사가 대형교단과 대형교회 중심의 행사가 아니냐고 따진 것도, 지금까지 연합집회 및 행사가 대형교단과 대형교회 중심으로 치러졌다는 사실을 증명하고도 남는다.

사실 한국교회는 겉으로 평화적인 민족통일과 민족화해를 노래하면서, 모든 행사가 반공궐기대회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또 평화적인 민족통일을 위해 기도하면서, 평화통일과 민족화해를 담은 내용의 기도문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대신 북한 김일성을 비롯한 김정일, 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세습과 독재를 비난하기에 바빴다. 그러면서 대형집회를 주도하는 일부 목사들은 담임목사 세습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교회를 독재적으로 운영하는 등 “똥 묻은 돼지가 겨 묻은 돼지를 비웃는 꼴”이 되어 버렸다.

특히 한국교회는 식민지신학과 지배신학이 뿌리를 내리면서, 선교의 현장은 보수화되어 버렸고, 반공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분단극복을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를 못했다. 때문에 일부 진보적인 신학자와 목회자, 그리고 교인들은 늦었지만, 한국교회가 분단극복을 향한 ‘민족화해’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광복 70년, 분단 70년, 한국선교 130년을 맞은 한국교회는, 이제라도 분단의 아픔을 극복하고, 남과 북이 하나 되는 민족의 화해와 평화적인 민족통일을 향한 행진을 벌여야 한다는 목소리는 바로 한국교회가 분단극복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말로 해석된다.

   
 
한국교회 모두가 분단극복의 주체가 되어야

행사의 모든 헌금 교인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공개하는 것이 바람직
모든 교단과 교회가 참여하는 행사가 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모습도

한국교회, 분단극복 주체가 되라

일본제국주의 아래서 한민족의 지상과제는 나라의 독립을 쟁취하는 것이었다. 개항부터 한일합방까지는 주권수호였다. 1876년부터 1910년까지 조선을 둘러싼 열강들은 경쟁적으로 조선의 주권을 침해했다. 이런 상황에서 조선의 백성은 한일합방 이전까지 국가의 주권수호를 위해 투쟁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절박한 상황에 있었던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한국개신교가 취한 태도는 무엇이었느냐(?)고 묻는 것은 당연하다. 한국교회가 해방 이후 지금까지 대한민국 국민들의 소원이며, 민족사적 지상과제인 분단극복을 위해서 무엇을 했느냐(?)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것은 한국교회가 반공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반통일적인 모습을 보여 주었고, 일본 제국주의 아래서 교회의 지도자들이 일본 국가주의에 굴복하며, 조선의 백성을 향해 일본 패권주의에 협력할 것을 소리 높여 외쳤기 때문이다.

분단 70년이 지난 오늘도 한국교회가 분단극복을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분단을 고착화시키는 세력으로 남아 있다는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광복70년, 분단 70년을 맞은 한국교회가 한목소리로 ‘한민족의 화해’와 ‘평화적인 민족통일’의 주체가 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은, 분단된 조국과 민족에게 희망의 소리로 들려오고 있다.

한반도의 분단 고착화 발언 계속

한국교회가 반통일적인 모습을 보여 왔던 것은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개신교의 생태학적 환경이었던 결과적 독소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민족의 의지를 무조건 무시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한국교회의 일부지도자들은 남북 간의 화해와 평화를 향한 행진을 벌이기보다는, 이를 저해하는 발언과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는데 문제가 있다.

공군예비역 장군인 한모장로가 한반도 전역에 땅굴이 존재한다는 주장을 펼쳤고, 풀러신학교를 졸업했다는 홍혜선 전도사가 2015년 12월 한반도 전쟁설을 퍼트려 국민들을 불안과 공포로 몰아넣었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한국개신교의 목회자들은 SNS를 통해 검증되지 않은 이 같은 주장을 퍼 나르기에 바빴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한국교회 일부지도자의 이 같은 행태는, 교인들을 미혹시키려는 신앙의 일탈행위임에 틀림없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일부 개신교의 목회자들이, 교인과 국민들에게 불안과 공포의식을 불어넣는 잘못된 인사들을 초청, 강단에 세우고 교인과 국민들을 불안과 공포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이것은 분명 한국개신교의 신학자와 목회자들이 분단시대의 신학적 과제를 소홀히 여긴 결과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들은 흡수통일 등을 운운하며, 겉으로 자신만이 애국자임을 자처하고 있다. 이러한 애국자들은 6.25 한국전쟁 당시 쉽게 무너져 서울을 점령한 김일성을 위한 기도회를 주도했다. 이 뿐인가. 애국을 부르짖었던 한국교회의 목사장로들은 일본 식민지 당시, 일본국가주의에 쉽게 굴복하는 범죄도 저질렀다. 이것은 분명 민족과 하나님 앞에서 큰 범죄이다.

한마디로 한국교회는 민족의 역사성을 소홀히 한 나머지, 지배자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항상 가진 자의 편, 권력의 주변을 맴돌며, 기독교를 부자들의 종교로 만들어 놓았다. 영미 지배자의 신학을 받아들인 한국교회가 지배자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지를 못하는 단면을 그대로 드러냈다.

이러한 DNA를 물려받은 한국개신교가 민족의 아픔인 분단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 자체가 어떻게 보면 오산이었다. 한국개신교의 목회자들은 통일과 민족화해를 노래하는 대신, 오직 ‘맘몬’과 ‘바벨’을 노래하며, 부자들의 눈물을 닦아주기에 급급했다. 잠시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노래하던 종로5가 마저도, 이미 ‘범죄 집단’, ‘악의 축’으로 변질돼, 분열과 갈등의 모습만을 보여주고 있다는데 그리스도인들은 안타까워하고 있다.

한때 한국개신교 통일운동과 민주화운동,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민중운동의 주체였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마저도, 분열과 갈등에 휩싸여, 자기 정체성을 상실한지 이미 오래되었다. 또한 분열과 갈등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는 한국개신교가 분단극복을 향한 통일운동에 관심을 가질 여유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오히려 한국개신교의 지도자들은 분단극복의 반대세력으로 자리를 잡았다. 대신 교권주의와 명예주의에 사로잡혀 이권을 취하며, 교회분열의 중심축이 되었다.

한국개신교 목회자들의 입에서 천박하고, 쓰레기 같은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은 당연하다. 가난한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던 교회들마저도, 변질돼 분열과 갈등을 일삼고 있는 상황에서 더욱 그렇다. 가난한 민중들을 위해 일하겠다고 고백하며, 고난 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일하던 단체와 교회도, 그리고 인사들도, 이제 더 이상 민족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지 못하고, 자리다툼에 연연하고 있다. 이 뿐이겠는가(?) 역동적인 교회로서의 역할을 상실한 채, 영미선교사들이 이식시켜 놓은 성장주의에 매몰돼 교회의 공동체성을 상실해 가고 있다.

이런 이유로 인해 한국개신교는 더 이상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하는 종교로 전락하고 말았다. 가난하고, 노동현장에서 탄압받던 노동자들과 가난한 교인들은 교회를 떠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한국교회가 사이즈로 목회자를 평가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그 보다는 기독교가 화해의 종교, 생명의 종교, 평화의 종교로서의 기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이는 분열과 갈등을 부채질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민족선교의 메카 범죄 소굴로

연합기관이 몰려 있는 종로5가는 맘몬의 기독교연합회관이 건축된 시기부터 범죄의 소굴이 변질되기 시작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지적이다. 한마디로 연합회관의 건축은 ‘맘몬’을 노래하는 한국개신교의 상징이 되어 버렸다. 1910년 이전까지 종로5가와 동대문은,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나라에 대한 소망을 보여주었던 선교의 메카였으며, 일본제국주의 아래서 독립운동가들이 몰려들었던 독립운동의 요람이었다. 또한 목요기도회를 비롯한 기독교농민운동, 기독청년운동, 기독학생운동의 메카로 민중신학을 태동시킨 현장이기도 하다. 당시 가난한 농민들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 종로5가를 찾았으며, 노동현장에서 사업주들에게 맞서 싸우던 노동자들의 피난처였다.

이 뿐만 아니라 1970년대 이후 종로5가는 한국개신교의 민주화운동의 중심센터였으며, 통일운동의 물꼬를 튼 장소이기도 하다. 이러한 역사와 전통을 지닌 종로5가가 통일의 노래 소리, 민족의 화해와 평화의 노래 소리가 끊어진지 이미 오래되었으며, 분열과 갈등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한마디로 ‘종로5가’는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범죄자들이 모이는 장소로 변질되었다. 뿐만 아니라 종로5가 기독교기관에서 운영하는 강당은, 돈과 축복, 그리고 바벨과 맘몬을 노래하는 장소가 되었다.

사실 종로5가에 둥지를 튼 단체의 일부 목회자와 장로들은, 민족통일과 화해를 노래하던 모습 대신, 남남갈등과 남북갈등, 노사 간의 갈등, 지역 간 갈등, 세대 간의 갈등을 조장하고, 교회의 연합과 일치대신 분열을 노래하며, 한국개신교를 극한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 이들에게서 분단극복을 위해서 기도하는 모습을 찾아본다는 것은 옛말이 되어버렸다. 사실 한국개신교의 지도자들은 북한을 탈출해 남한에 정착한 인사들을 앞 다투어 강사로 초청, 반통일적인 강연을 아무렇지 않게 듣고 있다.

이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내용 대부분은 반통일적인 발언이며, 한국개신교의 목회자와 교인들은 자유이주민의 말에 힘찬 박수를 보낸다. 반통일적인 발언, 전직대통령을 아무렇지 않게 비하하는 발언은 과연 분단극복에 도움을 주는 것인지(?) 아니면 분단극복을 방해하는 것인지 국민들은 전혀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다. 1930년대 장로교 우월주의의 악령이 다시 살아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헌신하라

이렇게 분단극복의 저해요소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개신교가 분단극복에 기여하리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오히려 세상 사람들은 한국개신교를 향해 분단극복을 이야기하기 이전에 먼저 300여개로 갈라진 교파주의를 극복하고, 하나의 한국교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번 장로교의 날 행사 역시 교단중심의 나눠먹기식 행사에서 크게 벗어나지를 못했으며, 분단극복과 민족통일을 위해서 기도하겠다는 남북조찬기도회 역시 지금까지 한 번도 헌금의 사용내용을 밝히지 않았다. 그리고 이 행사는 한 개인의 행사에 불과하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민족과 세상 속으로 가까이 가지를 못하는 한국개신교의 목회자와 교인들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한국개신교가 지배자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이 땅의 사회적 약자들과 분단극복을 간절히 염원하는 국민들에게 어떠한 희망도 줄 수 없다는 결론이다. 그리고 분단의 아픔을 가슴에 품고, 통일을 고대하며 북한의 가족과 상봉하기를 기다리다가 지친 이산가족의 눈가에는 주름만 늘어나고 있다. 특히 한국교회가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분단 70년, 광복 70년, 한국선교 130년을 맞아 벌이는 대대적인 행사가 몇 명의 대형교단 정치목사와 대형교회 목사들의 축제로 끝나버리는 것은 아닌지 우려의 목소리를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유달상 기자  yds127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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