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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돈’이 곧 ‘하나님’이다상업자본주의의 지배를 받는 한국교회를 진단한다

상업자본주의 지배받는 교회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해지면서, 한국교회 역시 상업자본주의의 지배를 받고 있다. 이것은 한국교회가 해결해야 할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이다. 큰 교회와 돈 많은 성직자들이 교회의 목회를 상업적 경영으로 이해하고, 현장목회를 여기에 짜 맞추고 있는 것이 오늘 한국교회의 현실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 거액의 돈을 지불하고, 방송시간을 사서 설교하는 일이다. 이 전통은 처음 미국에서 들어왔다. 한마디로 자본주의의 논리에 따라 교인들을 조직하고, 그대로 실천하고 있다. 로버트 슐러나, 빌리 그레함 같은 세계적인 목회자가 정보매체를 잘 이용해서 성공했다. 한국교회의 성직자도 라디오 또는 TV를 통해 설교하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다. 유튜브를 통해 설교를 내보내는 경우도 있다.

정보 매체를 통해서 세속화된 현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일은 어찌 보면, 불가피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자본주의라는 물신숭배 체제에 예속되어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언론매체를 통한 설교는 중립적이고, 물질주의에서 자유롭지 않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이익을 창출하고, 타자를 극복해야 할 경쟁자로 보는 원리가 작용하고 있다는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뿐만 아니다. 부자교단과 부자교회의 목회자만이 연합기관의 기관장이 될 수 있다. 그것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부자교단과 부자교회를 받아들이면서, 연합과 일치정신을 상실한 것만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한마디로 타자를 밟고, 올라서야 하는 것이 오늘 한국교회의 현주소이다.

교인들의 신앙과 심령의 각성에 목적을 두었던 부흥회도, 교인들의 양적성장으로 변질되었다. 교인들의 친교와 교제에 목적을 두었던 구역 조직은, 다단계 조직을 방불케하고 있으며, 새신자 교육은 다단계 신입사원 훈련으로 변질되었다. 구역을 관리하고 책임지는 책임자에게는 적절한 교회의 지위와 함께 신앙적, 물질적 이윤이 배분된다.

오늘 대형교회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한마디로 당회장은 대기업의 회장 같고, 부목사는 사장의 기능을 하며, 전도와 구역장은 지점장이나 지사장의 역할을 한다. 은행이나, 대기업이 지점을 내듯 대교회들도 지교회 또는 지성전을 만들어 세력을 확장해 가고 있다. 이들 지교회의 목회자들은 자율권이 철저하게 통제되며, 당회장의 전권 하에서 움직인다. 이것은 분명 하나님 앞에서 좋은 모습은 아니라는데, 목회자나 교인 모두가 동의하면서도, 맘몬에 길들여진 나머지 쉽게 내려놓지를 못하고 있다.

이러한 대교회의 조직을 움직이는 것은 돈이다. 돈이 없으면 대교회를 움직일 수 없다. 일부 한국교회는 급한 나머지 대교회 형태로 교회를 운영하다가 빚더미에 앉은 경우도 있으며, 많은 작은 교회가 대형교회에 흡수돼 문을 닫는 경우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이것은 분명 대형교회의 목회자들이 이웃 작은 교회를 존중하지 않은 결과가 빚어낸 것이며, 맘몬을 노래한 결과이다. 작은 교회를 살린다고 말하는 목회자들조차도, 이웃교회의 교인을 빼앗아 교회를 살찌우고 있다. 오늘 한국교회가 어둠의 터널을 가고 있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이다.

   
 
돈의 위력을 입증하는데 급급한 목회자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대신 돈으로 대치, 교회정체성 상실
예수님 추구한 새로운 세상과 질서 위해 일하는 교회돼야

일부 대형교회의 목회자들은 세련된 신학적 논리로 돈의 위력에 대한 정당성을 입증한다. 한 목사가 CBS 방송에 출연해, ‘하나님의 속성 중 거룩성’ 즉 신의 능력을 가지고 설교했다. 이 목사는 아는 것이 힘이 아니고 군대가 강한 것도 아니고, 대통령이 강한 것도 아니고, 오직 돈만 강하다는 것이다. 강력한 힘을 소유했던 로마의 장군 시저도, 프랑스의 영웅인 나폴레웅도 사라졌다. 하지만 돈의 능력은 사라진 적이 없었다는 것을 열변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으로 명예와 권력도 살 수 있으며,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는 것이 돈이다.

돈이 바로 하나님이다

한마디로 돈만큼 강한 것이 없다. 돈이 있어야 나라도, 기업도, 교회도 운영되는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돈이 있어야 가난한 이웃과 교회를 도울 수 있다. 전도와 해외선교도 할 수 있다. 어린이와 청년도 양육할 수 있다. 교회도 건축할 수 있다. 한마디로 하나님이 전능하시듯이, 돈도 전능하다. 때문에 돈, 즉 맘몬이 하나님인 것이다. 오늘 한국교회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대신 돈으로 대치하고 있다.

이 목사의 설교는 가난에 찌든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것 같이 보이지만, 복음의 본질에서 크게 벗어났다. 목회자들 중에는 ‘가난이 죄’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따라서 가난한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다. 오늘 한국교회가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서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 바로 자본주의의 상업적 맘몬주의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무능력한 목사도, 부자 목사 아버지를 만나면 대형교회를 상속받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그는 능력 있는 목회자로 평가를 받고, 또 아버지 목사가 그랬듯이 아들 목사 역시 그 전철을 그대로 밟는다. 오늘 한국교회 안에서 담임목사 세습을 둘러싼 논쟁이 끊이지를 않는 이유이다. 또 세습을 찬성하는 교인과 세습을 반대하는 교인 간에 분쟁이 끊이지를 않고 있다. 분쟁의 중간에 있던 교인들은, 분쟁에 염증을 느끼고 교회를 떠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휴면상태에 들어간다는데 문제가 있다.

요즘 세상은 아무리 공부를 잘하고, 영리해도 돈 없으면 상놈이고, 공부 못하고 불성실해도 돈만 있으면 양반이 된다. 한마디로 돈이 양반을 만들고, 신분을 높여주고, 사회를 엉망진창으로 만든다. 오늘 한국교회가 그 모습을 그대로 닮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사회에서는 돈 많은 사람이 양반이고, 교회 안에서는 헌금의 액수가 신앙의 척도가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교회가 세상을 향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교인들은 묻고 있다.

오늘 한국교회의 면면을 살펴보자. 장로를 만드는 것은 신앙이 아니다. 돈이 장로, 안수집사, 권사를 만든다. 신앙이 돈독하고 믿음이 좋아도 돈이 없으면, 장로, 안수집사, 권사가 될 수 없는 것이 오늘 한국교회이다. 내놓으라는 교회 대부분은 ‘헌금의 액수’로 신앙을 평가하고, 장로가 되려면 무조건 1억 원을 교회에 바쳐야 한다. 그리고 안수집사 1천만원 권사 5백만원을 교회에 헌금해야 한다. 교회가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했을 때, 이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임직식을 갖는 교회들이 늘어나는 것만 보아도 한국교회가 중세교회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한마디로 교회를 지배하는 것은 돈을 그렇게 배척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이 아니다. 오직 돈이 있어야 한다.

예수는 마태복음 6장 24절에서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고 선언했다. 이것은 재물과 하나님이 양립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한 것이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의 이러한 선언에 비웃었다.

돈의 능력 앞에 무너지는 성직자

기독교 2000년의 역사를 보면, 교회는 항상 하나님과 맘몬을 하께 섬기고자 했다. 오히려 하나님보다도, 맘몬을 더 섬기려 했다. 오죽하면 하나님께서 탐욕에 길들여진 인간을 향해 “나 이외는 다른 신(맘몬신)을 섬기지 말라”고 했겠는가(?) 이것은 맘몬과 바벨을 노래하며, 십자가탑을 높이는데 경쟁을 벌이는 한국교회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싶다. 오죽하면 “돈!돈!돈! 돈의 돈!돈! 악마의 금전”이라는 노래 가사가 있겠는가. 이 노래는 80년대 교회 내에서 소외당하던 가난한 교인들의 입에서 자주 불려졌다.

오늘 한국교회의 일각에서 제2의 종교개혁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한국교회가 돈으로 성직을 매매하고, 천국의 열쇠를 헌금의 액수로 평가하고, 맘몬에 길들여진 목회자들의 입에서는 돈!돈!돈! 돈의 돈!돈!이 자연스럽게 외쳐지고 있는 상황에서, 예수님이 선언한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고 한 말씀이 가슴을 울린다. 사실 한국교회의 강단은 이미 맘몬을 노래하는 목소리로 오염되었고, 교인들의 주머니에서 돈을 잘 꺼내 헌금하게 하는 부흥사 및 영성운동가가 대접받는 풍토가 뿌리를 내렸다. 이런 상황에 처한 일부 목사들의 입에서 천박하고, 쓰레기 같은 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예수님의 비유는 어찌 보면 맘몬에 길들여진 이 세상에서의 하나님 나라,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도래할 새로운 질서와 그 질서의 내용을 알았기 때문에 이와 같이 선언한 것이라는데 목회자와 교인 모두는 동의하고 있다. 그럼에도 목회자와 교인들이 이를 실천하지 못하고, 맘몬과 바벨을 노래하며, 교회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는 데는 복음의 본질을 상실하고, 세속화되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질서, 새로운 시대, 하나님이 통치하는 시대는 오늘 한국교회를 비롯한 세계교회는 기독교적 세계관의 꿈이다. 한국교회는 잊지 말아야 한다. 구약성서의 하나님은 가난하고, 소외되고, 고통당하는 이스라엘 민족 속에서 역사하셨다는 사실과 예수 그리스도가 가난하고 소외되고 고난당하는 사람들 속에서 역사하셨다는 사실을 몰각해서는 안된다. 또한 한국교회가 일본제국주의 아래서 가난하고 천박한 백성, 해방과 6.25한국전쟁 이후 가난하고 고난당하는 이웃과 함께 할 때, 하나님나라 선교가 왕성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당시 신앙의 척도는 돈이 아니었다.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이었다.

유달상 기자  yds127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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