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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의 위기, 곧 선교와 교회의 위기추락하는 한국교회의 신뢰성을 진단한다 ①

   
 
신뢰성 위기에 처한 한국교회

국민들이 한국교회를 바라보는 시각은 참담하다. 한마디로 교회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것은 젊은 청년이나, 지식인들에게서 더욱 심각하게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다. 이 같은 현상은 선교초기부터 70년대까지 한국교회를 바라보던 인식과는 사뭇 다른 것이어서, 한국교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1970년도 이전까지 한국교회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의 동반자라는 인식이 국민들의 마음속에 깊이 뿌리 박혀 있었다. 또한 사회정의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의 집단으로 생각했다. 한마디로 한국개신교는 개화기에는 개혁의 등불로서, 일제 식민지시대에는 나라의 독립과 투쟁의 장소로서, 한국전쟁 그 이후에는 전쟁의 피해자를 돕는 충실한 종으로서, 이승만 이후 계속된 독재정권 아래서는 민주주의와 인권,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장으로서 인식되었다.

따라서 사회적으로 소외되었던 인사들과 가난한 사람, 전쟁고아, 민주화의 투쟁과정서 고난당하던 사람, 노동자들이 교회로 몰려 왔다. 전태일 사건 이후 한국개신교회는 노동자들을 위해서 일하는 종교회로까지 생각했다. 박해를 당하던 노동자과 민주투사들이 가장 먼저 찾아와 도움을 요청했던 곳이 바로 종로5가 기독교회관이기도 했다.

그런 종로5가가 80년대 중반이후 분열과 갈등, 범죄자의 소굴로 변질되면서, 이 땅의 가난하고, 소외되고, 고난당하는 사람들은 명동성당을 찾았고, 그 이후에는 불교 조계종을 찾아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 왜 이렇게 한국교회가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하는 종교로 변질되어 버렸는가(?)에 대해 의아해 하지 않을 수 없다. 심지어 교회는 멀쩡하지 않은 이상한 사람들이 모이는 집단으로 까지 비쳐지고 있다.

80년대 중반 이후 박해 당하던 노동자와 소외당하던 사람들이 종로 5가를 찾은 일은 거의 없는 것도 이를 잘 대변해 준다. 더 이상 노동자들은 개신교회를 찾지 않는다. 지난해 8월 이 땅의 소외된 사람들은 아니 한국교회로부터 버림을 받은 사람들은 국내 내로라하는 교회 지도자가 아닌 한국을 방문한 교황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한마디로 신뢰를 잃어버려 믿음이 없는 단체, 별 도움이 되지를 않는 단체를 찾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개신교의 일부지도자들은 차마 입에 담기 힘든 말을 서슴없이 내뱉어 한국교회의 신뢰도를 더욱 떨어트리고 있다. 단적인 예로 일부 지도자들은 지난해 4월에 일어난 세월호 참사로 인해 힘겨운 삶을 사는 희생자와 유가족들을 위로하기는커녕, “가난한 집안의 학생들이 경주로 여행을 갈 것이지, 배를 타고 제주도로 여행을 가다가 이 같은 사단을 일으켰는지 모르겠다”, “예수를 믿는 학생들은 천국에 가 괜찮은데, 예수를 믿지 않는 아이들은 지옥에 갔을텐데 안타깝다” 등등의 천박하고 쓰레기 같은 말로 이들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이도 모자라 국무총리 후보가 일본식민지를 ‘하나님의 뜻’이라 치부한 막말을 변호하는 대변자의 역할을 충실히 했다. 이는 결국 한국교회의 신뢰성 상실로 이어졌다. 이것은 앞으로 한국교회의 존속 또는 선교를 위해서 매우 심각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왜 한국교회가 이 지경에 까지 이르렀는지 교인 대부분은 의아해 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한국개신교가 영미의 잘못된 ‘식민지 선교종합모델’을 그대로 받아들여, 한국적 상황에서의 선교를 펼치지 못한 결과이다. 지하철이나, 서울역 광장에서 ‘예수 천당’, ‘불신 지옥’ 등을 외치며, 사람들을 윽박지르듯 하는 것은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과 하루를 피곤하게 보낸 사람들에게 위로는커녕, 오히려 심한 혐오감을 불러 일으켰다. 정상적인 사람들에게 교회를 신뢰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인본주의와 공로주의에 길들여진 목회자 신뢰성 추락 결국 세상으로부터 불신
하나님의 창조세계, 하나님 지배가 아니라, 맘몬이 지배하는 세계로 변질
자본주의의 망령인 ‘돈’이 있어야 장로, 집사, 권사도 되는 풍토 깊게 뿌리 내려

성직자의 위기, 곧 교회의 위기

또한 공격적인 선교전위대의 모순은 여기에서 끝나지를 않고, 자기들만이 구원받은 집단에 속하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지옥에 갈 ‘악마의 자식’이라는 확신을 갖고 활동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분명 이들에게는 극단적인 배타주의가 자리하고 있으며, 인간과 사회에 대한 균형 잡힌 판단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한국교회가 문제의 단체로 지적한 일부 단체와 교회, 그리고 기독교를 가장한 사이비단체들의 형태에서 해답을 쉽게 찾을 수 있다.

1990년 전국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말세론은 정상적인 사람들의 사회생활을 방해하고, 극단에 가서는 비정상적인 일들을 저질렀다. 또한 종교적인 생활공동체를 만들어 놓고, 이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의 노동을 착취하고, 여기에서 탈출하려는 사람들을 납치해 폭행하고, 여성교인들에게는 성폭행을 자행했다.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지를 않고 살해와 암매장까지 저질렀다. 이들 신흥종교 모두가 기독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은 크다.

그렇다고 기성교회라고 해서 건강하냐는 질문에 자신 있게 ‘그렇다’고 답할 목회자들이 얼마나 있을까. 기성교회의 목회자들의 도덕적, 윤리적 타락이 도를 넘은지 이미 오래되었다. 주차문제로 상대방의 가슴에 흉기를 휘두르는가 하면, 보이스피싱에 가담하는 목회자가 나타나고, 교인과 불륜관계를 맺다가 창문에서 떨어져 숨진 모 교단의 총회장 사건, 영적이란 이름아래 교인 성폭력 자행, 부인을 살해해 암매장한 목회자 등등의 사건은 세상에 알려지면서 교회의 신뢰성을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치게 만들었다. 이것은 반기독교적이고, 반사회적인 개신교 집단들의 극성으로 이어졌고, 한국교회 전체를 불신하는 결과를 가져다가 주었다.

성직자들의 신뢰성 위기는 곧 한국교회의 위기이며, 선교의 위기라는데 이의가 없다. 기존의 교회들 역시 ‘영적’, ‘영성’이란 이름 아래 광신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도 오늘의 현실이다. 교회의 강단에서는 ‘복음’ 대신 천박한 ‘돈’의 소리가 높아지고, 믿음의 척도를 헌금의 액수로 계산하는 현상까지 일어나고 있다. ‘돈’이 있어야 장로도 되고, 안수집사도 되고, 권사도 되는 것이 오늘 한국교회의 모습이다. 한마디로 자본주의를 등에 업고 화려했던 영미교회의 모습이 한국교회에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마이너스 성장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는 것은, 사회에서 돌아가는 중요한 사건들에 대해서 무관심하기 때문이 아닌가(?) 사실 교인들 특히 여성교인들은 사회현안에 대해서 무지몽매하다. 쉽게 말해 관심이 없다. 혹여나 관심이 있다고 해도 한국교회의 일부 목회자들은 교인들이 성숙한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설교로 일관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은 분명 미국에서 수입된 교회성장론이 가져다가 준 잘못된 선교의 결과이다.

코미디 같은 설교의 진정성(?)

고 손규태 박사는 자신의 저서 <세계화 시대 기독교의 두 얼굴>(2007년 3월, 한울 아카데미)에서 “한국교회의 왜곡된 교회관과 선교관은 1970년-1980년대 초 사이 미국에서 들어와 한국교회를 휩쓸었다. 이른바 ‘교회성장론’과 여기에 기초한 ‘적극적 사고’, 그리고 실천이론으로 제기된 ‘하면된다’는 식의 명제는 개신교의 종교개혁 전통인 ‘은총만으로’ 혹은 ‘믿음만으로’라는 명제와 대립되는 인본주의, 공로주의적인 명제”라고 지적했다.

종교개혁자 루터는 가톨릭교회의 공로주의적인 왜곡된 면죄부 장사와 에라스무스의 인본주의적인 사고에 적극적으로 투쟁했다. 결국 공로주의와 인본주의적 사고는 오늘 한국교회에 들어와, 자본주의와 결합돼 모든 것을 성과에서만 판단하게 하는 가치관을 만들었다. 또한 이는 사람들을 경쟁과 업적주의의 노예로 만들어 버렸다.

사실 왜곡된 선교론은 일부 교회와 교단의 열광주의적 성령과 교회들로부터 시작되어 맘몬교회를 지향하는 대부분의 목회자들에게 빠르게 번져 나갔다. 일부교회가 왜곡된 선교론으로 성공을 거두자 장로교회, 감리교회 등 종교개혁의 중심에 서 있던 교회의 목사들마저도, 유명목사의 목소리를 비롯한 몸짓 등을 흉내 내기에 이르렀고, 눈을 감고 들으면 누가 설교를 하는지 착각이 들 정도로 대동소이하다.

이렇게 한국교회의 강단이 인본주의적 열광주의에 빠져들면서, 참된 복음을 전하고, 선한목자가 되는냐 하는 것에 대한 관심은 줄어들었다. 그렇다보니 교회를 성장시키기 위해 목회자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 교회 안에서 교회를 성장시키지 못하면 엉뚱한 이유를 들아 목회자를 추방하는 경우까지 한국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렇다 보니 교인들에게 작은 교회의 목회자는 초라하게 보이고, 아름답지도, 참되지도 않게 보인다. 대신 외형적으로 큰 것, 많은 것은 도덕적으로 선하고, 미학적으로 아름답고, 철학적으로 참되다고 생각하는 풍조가 한국교회에 뿌리를 내렸다.

이를 충족시키기 위해 목회자들의 설교가 코미디 또는 만담화되어 복음의 본질을 왜곡시키고 있다. 또한 도덕적, 윤리적 사고를 상실한 채 돈에 의한 총회장 선거가 만연되고, 교회 간 교인쟁탈전은 끊이지를 않고 있다. 한마디로 종교인답지 않은 ‘뻔뻔한 인간’으로 변질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 오늘 한국교회를 걱정하는 양심 있는 목회자와 신학자들의 목소리이다.

성공주의가 한국교회를 지배

오늘 한국교회는 자본주의와 결탁된 성공주의가 지배하고 있다. 이를 일부목사들은 말하기 좋게 자유주의라고 말한다. 본회퍼는 성공주의를 ‘성공우상화’라고 말했다. 그래서 한국교회 안에서 교회를 크게 성장시킨 목사를 ‘성공한 목사’라고 부르고, 이 교회의 장로도 성공에 동참한 사람으로 자부심을 갖는다. 그렇다. 이러한 성공과 성과를 바탕으로 해서 노회장도 하고, 총회장도 하는 것이 오늘 한국교회의 현주소이다.

아무리 덕망과 학식이 있어도, 대형교회를 만들지 못하는 목회자는 존경과 영광, 그리고 지위를 얻을 수 없다. 이 같은 사실 앞에 누가 ‘아니오’라고 당당히 대답할 수 있겠는가. 오늘 한국교회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분명 가장 낮은 자리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성육신하신 예수님,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다. 업적주의, 인본주의, 성공주의에 기초한 맘몬주의이다. 때문에 한국교회를 하나님 대신 ‘맘몬(돈)’을 믿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 세상은 하나님이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맘몬이 지배한다는 것이다.

유달상 기자  yds127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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