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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주민과 함께하는 능동적 교회로 전환하라추락하는 한국교회의 신뢰성을 진단한다 ②

신학생 자질에 대한 신뢰성

오늘 한국교회가 신뢰성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은 목회자에게 있다고 말해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이미 지적했듯이 신뢰성을 잃어버린 목회자의 위기는 곧 교회와 선교의 위기로 다가 왔고, 끝없이 일어나고 있는 교회 내의 분쟁은 지역사회 주민들로 하여금 정체성을 상실케 했다. 도무지 지역사회와 동떨어진 교회를 인정하지를 않으려고 한다. 한마디로 한국교회가 신뢰성을 상실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목회자의 도덕적, 윤리적 위기와 함께 찾아온 목회자의 신뢰성문제는 신학교육의 빈곤에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목소리이다. 수능성적이 낮아 각급 신학교에 입학한 일부 목사후보생은 학문에 뜻이 없고, 도덕적으로 깨끗하고 사회적으로 책임을 질 줄 아는 가정에서 태어난 일부 목사후보생은 목회의 성공을, 정당한 길을 통해서 달성하려고 하고, 비정상적인 방법을 통해 큰 교회에 대한 꿈을 이루려고 하는 것이 오늘 한국교회의 현주소이다.

기본적인 자질을 갖추지 못한 목사후보생은 지도자로서 권위를 행사하기 위해 왜곡된 교회성장주의와 거기에 기초한 경쟁원리를 탐닉하게 되는 것은 물론, 한국교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 이것은 오늘 한국교회의 신학생 훈련과 지도자 양성에 직면하고 있는 심각한 난점임에 틀림없다. 그럼에도 신학교는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는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래서 일부 교단에서는 신학생교육을 학문보다도, 투철한 사명감에 맞추고 있다.

과거 미국대사관은 한국의 개신교 목사를 믿기 어려운 집단으로 분류했던 적이 있다. 미국대사관은 개신교의 목회자가 비자를 신청하면, 가장 엄격한 심사를 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사실 과거 한국개신교의 목회자들은 약속대로 실천하지를 않고 목회를 한다면서, 미국에 그대로 눌러앉아 불법체류를 했다. 그들 중 일부가 많은 문제를 야기시켰다.

또한 은행권에서도 목회자들에 대한 신용카드를 발급하거나, 신용대출을 할 때도 가장 신뢰할 수 없는 직업군으로 분류했다. 그것은 목회자들이 신용카드를 제대로 사용하지 않고, 대출금을 제대로 반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뿐만 아니라 일부 목회자는 교회건축 과정에서 건축비를 주지 않고, 무조건 헌금하라고 종용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일련의 사건은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불신으로 이어졌다. 이것은 곧 한국 개신교회에 대한 불신을 말하는 것으로, 한국교회가 위기에 봉착했다는 것을 대답해 주는 것이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이것은 또 선교의 위기이기도 하다.

왜 한국교회가 이 지경에 이르렀냐(?)는 것이다. 그것은 한국교회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것에 대한 대답은 분명해진다. 연일 방송을 통해 방영되는 목회자들의 성공주의와 인본주의가 낳은 잘못이 걸러지지 않고 국민들에게 전달되고 있다. 이로 인해 한국교회의 정체성이 뿌리 채 흔들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방송에 방영된 목회자들의 모습은 종교인답지 못한 모습이라는데 문제가 없다. 한마디로 참담하다 못해 뻔뻔스런 모습이다.

   
 
새로운 세기 맞은 교회개혁 절실

21세기를 맞은 한국교회는 분명 복음으로부터 이탈, 신뢰성 상실로 인해 위기를 맞은 교회를 어떻게 개혁하고, 갱신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분명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 이 물음에 대해 많은 목회자와 신학자들이 대책을 내놓았지만, 이미 상업자본주의와 집단이기주의 그리고 맘몬에 길들여진 나머지 한국교회 목회자의 마음에 감동을 주지 못했다. 심지어 일부 목회자와 신학자들은 교회의 잃어버린 신뢰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주장해온 초대교회로, 아니 성서로 돌아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선교초기 한국 주재 선교사들은 사회적 약자들과 낙오자를 위한 치유적인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다. 그리고 가난하고 천박한 백성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며, 복음을 선포했다. 이때 한국교회는 세계 교회가 놀랄 정도로 크게 성장했다. 이 같은 치유적 목회는 일본식민지시대를 거쳐 6.25 한국전쟁 이후까지 계속되었다. 이들은 전쟁고아와 전쟁과부들을 돌보고, 삶의 터전을 만들어 주었다. 한국교회의 성장과 사회적 발전의 바탕에 교회의 치유적 임무가 깔려 있었다. 이 때부터 대형교회가 출현하기 시작했고, 목회자들은 맘몬을 노래하기 시작했다. 그것도 경쟁적으로 노래하면서, 교회는 빚더미에 앉게 되었으며, 한국교회가 제1금융권에, 20조원에 가까운 빚을 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러나 한국교회가 성장한 만큼, 외국교회의 재정적 지원으로부터 독립하고, 교회주의가 목회자들의 생각을 지배하면서, 교회의 치유적인 목회는 이제 거의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대신 ‘영적’, ‘영성’이란 이름 아래 교인들의 내적치유가 등장했다. 그것은 또한 교인들을 황폐화시켰다. 교회 내 갈등은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게 만들었다. 이런 틈을 타고 기독교에 뿌리를 둔 이단사이비 단체들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60-70년대 세계교회협의회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아 벌인 도시산업선교, 빈민선교, 사회선교 등 사회적 약자와 고난당하는 사람들의 편에서, 하나님나라선교를 충실히 감당했던 단체와 교회들마저도, 세계교회의 재정적 지원이 중단되면서, 기독교의 사회개혁운동이 약화되었다. 이 같은 사회개혁운동은 한국교회의 역동적 운동이었다.

한국교회의 치유적 목회나, 역동적인 목회 모두 외국의 재정적 지원이 밑받침이 되었다는 사실에 대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때문에 한국교회는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지 못했고, 영미교회의 종합선교모델에 따른 선교를 펼칠 수밖에 없었다.

한마디로 외국교회의 재정적 지원이 중단되면서, 한국교회가 할 수 있는 일은 상업자본주의에 길들여진 맘몬과 바벨을 노래하며, 십자가탑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높였다. 목회자의 신뢰성, 아니 교회의 신뢰성을 한없이 추락시키는 결과를 불러 일으켰다. 또 교회가 사회적 약자들을 외면하고, 부자들의 집단으로 변질되면서, 교회내 가난한 사람들과 노동자들이 교회를 떠나기 시작했다. 교회가 부자들의 집단으로 변질되면서, 교회는 이들의 정서에 맞게 교회당을 건축했고, 교회당 내부도 장식했다. 이러한 교회의 모습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위화감을 줄 뿐, 복음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부자들의 집단으로 변질된 교회

무엇보다도 한국교회의 변화는 목회자 중심에서 하루빨리 벗어나, 교회공동체 일원 모두가 참여하는 신앙공동체로 변화되어야 한다. 루터는 종교개혁을 단행하면서, 교회 안에서 성서를 성직자들에 의한 독점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리고 세례 받은 모든 이들이 참여하는 ‘만인사제론’을 강하게 제기했다.

당시 교황은 전지전능하고, 무오한 존재였다. 현재 개신교회에서는 폐지되었다. 하지만 오늘 한국교회를 깊숙이 들여다가 보면, 교회가 목사, 장로에 의해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한마디로 교회의 구성원인 목사를 비롯한 장로, 여신도, 청년 등 다양한 교인들이 동참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교회가 새로운 활력을 얻어 하나님나라 선교를 보다 구체적이면서도, 현실적으로 펼칠 수 있다.

또한 교회개혁은 지역사회의 변혁세력들과 협조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하비콕스는 자신의 저서에서 “교회가 세상을 버리면, 하나님은 교회를 버린다”고 했다. 하지만 한국교회는 지역사회와 분리된 채 하나님나라 선교를 감당했다. 그 결과 교회가 세상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걱정하는 세태가 되었다.

사실 오늘 보수적인 한국교회는 세상이 부패하고, 양심이 마비되었어도, 상업자본주의에 길들여진 나머지 양심과 진리의 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왜곡된 사회를 바로잡기 위해서 교회가 아닌, 시민운동 단체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한마디로 교회가 해야 할 일들을 시민단체들에게 빼앗겼다고 할 수 있다.
그래도 아직 한국교회에 희망이 있다. 교회가 사회의 변혁운동을 주도하는 시민단체를 적극 지원, 사회 변화의 중심으로 들어가야 한다. 교회가 지방자치운동에 물적, 인적으로 적극 지원, 시민운동을 바탕으로 교회성장의 발판을 마련, 교회가 지역사회 발전에 적극 참여할 수 있는 길 모색, 사회적 약자를 위한 프로그램 독자적으로 개발 등이 바로 그것이다.

“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이전의 하늘과 이전의 땅이 사라지고 바다도 없어졌습니다 나는 또 거룩한 도시 새 예루살렘에서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와 같이 차리고,. 하나님으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중략) …보아라 하나님의 집이 사람들 가운데 있다 …(중력)… 하나님이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 이제는 다시 죽음이 없고 슬픔도 없고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을 것이다 … (이하 생략) 요한계시록 21장 1-4. 22절) ”라고 기록되어 있다.

유달상 기자  yds127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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