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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총회가 한국교회 살린다초심을 잃지 않는 일꾼으로 100년 향한 밑그림 그려야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장로교 제100회 총회가 끝이 났다. 몇몇 교단은 연금재단 등 교단 내부 비리로 곤욕을 치렀고, 풀리지 않은 숙제 ‘이단문제’로 시끄러운 교단도 있었다. 여전히 신임 임원선거는 치열한 각축전이었고, 교단 간 통합문제는 뜨거운 감자였다. 여기에 산재된 안건은 산더미처럼 쌓였고, 새로운 회기에 대한 기대도 부풀어 올랐다. 어찌 됐든 각 교단의 잔치는 막을 내렸다. 이제 새로운 회기, 즉 미래를 향한 첫발을 어떻게 떼어야할까를 생각할 때이다. 올해 장로교 총회가 지나온 100년을 종합하는 뜻 깊은 자리였다면, 이제는 새로운 100년을 설계해야하는 출발점이다. 그 출발점의 스타트를 어떻게 하느냐에 앞으로 한국교회 100년의 운명이 달렸다.

교단장으로 체통을 지켜라

대다수의 장로교 각 교단 신임 총회장을 비롯해 임원진이 모두 새롭게 구성됐다. 모든 부분에 있어 단독으로 입후보해 아름답게(?) 끝난 교단도 있었지만, 몇몇 교단은 2~3차 투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새로운 임원이 선출된 곳도 있다. 저마다 교단의 미래를 이끌 일꾼임을 피력하며, 최대한 낮은 자의 자세로 당선증을 따냈다. 당선소감이나 취임사 등을 통해 드러난 당선자들의 포부는 당장 교단의 앞날을 맡겨도 문제없을 것 같다. 그만큼 섬섬옥수 써내려간 당선소감은 교단의 모든 부분을 꿰뚫어 보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몇몇 인사들은 당선증 배부와 함께 태도가 180도 뒤바뀐다. 당선 전까지는 세상 누구보다도 낮은 자의 모습이었다면, 이제는 세상 그 누구보다도 목이 뻣뻣하다. 겸손을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다. “내가 총회장이다”는 각인이라도 새기듯이 전국 방방곡곡 노회를 순시하며 인사를 받기에 바쁘다. 얼마나 악수를 했으면 손바닥에 땀으로 흥건하다.

이들은 또 각 연합기관에 얼굴 알리기에도 혈안이 된다. 물론 새롭게 선출된 임원인 만큼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것이 당연하지만, 도가 지나치는 경우가 있다. 오히려 교단에서 임원으로 선출된 것을 발판삼아 중앙무대로 나서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인사들도 있다. “내가 이 교단 총회장인데 연합기관에서 한자리는 해야 하지 않느냐”는 시쳇말로 교단부심을 부리는 것이다. 각 연합기관의 신임 교단장 및 총무 만찬 자리에서 될 수 있으면 상석에 앉으려는 모습은 이를 잘 대변해준다. 교단을 위해 열심히 일하라고 뽑아준 총대들의 바람이 부끄러울 정도다. 새로운 회기에 대한 설계도를 그리는 모습은 어디에도 없다. 그저 자신의 대외적 이미지 제고에만 힘쓰는 모습이다.

이와 함께 몇몇 인사들은 교단의 정권을 움켜쥐고 복수를 단행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마치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불철주야 복수의 칼날을 간 아들의 모습처럼, 그동안 겪었던 온갖 수모를 되갚아주기 위해 복수를 단행한다. 철저하게 자신과 뜻이 반하는 사람들이 해놓았던 사업을 중단시키거나, 내사를 진행해 불법을 찾으려 애쓴다. 만의 하나라도 지적할 부분을 찾으면 철저하게 받은 만큼 돌려주려 야무진 노력(?)을 다한다. 법적 소송 등 세상의 모든 것을 동원해 복수혈전을 벌인다. 복수는 또다른 복수를 낳는다고, 결국에는 소모적인 논쟁만 벌이다 정작 교단과 산하 개교회, 목회자와 성도를 위한 사업을 소홀히 하는 우를 범한다. 이는 믿고 신뢰해준 총대들을 배신하는 행위로, 본인뿐 아니라 교단의 미래에도 먹구름을 드리우게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따라서 새롭게 선출된 각 교단의 총회장을 비롯한 임원진들은 본인들이 말했던 것처럼 “부족한 종이지만, 총대들과 함께 교단을 부흥 발전시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겠다”는 초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높은 자리에 있을수록 누구보다 낮아져야 한다는 점을 명심, 또 명심해야 한다. 아울러 새로운 회기와 새로운 100년을 향한 밑그림을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 주체자로서 제 역할을 해야 한다. 1년의 임기라고 소홀히 하지 말고, 열과 성을 다해 교단장으로서의 체통을 지켜야 한다.

나 몰라라 수수방관…교단 망쳐

지금까지 각 교단은 정기총회 이후 산재된 안건을 면밀히 분석해 처리하기보다는 덮어두기에 익숙했다. 그 안건이 복잡하면 할수록 1년이라는 임기동안에는 무엇도 할 수 없다는 입장으로 다음 회기로 넘기기 일쑤였다. 특히 정치적으로 얽힌 사안이라면 교단내외부적으로 여론이 어떻게 흐르던 교단 권력가들의 동태만 살필 뿐, 몸 사리기에 바쁘다. 교단마다 다르지만 정기총회 기간이 길어야 4일, 짧으면 하루, 이틀이면 끝나는 것을 감안하면 분명히 산재된 안건을 대부분 처리하지 못했을 텐데, 정작 총회 이후에는 모두 해결된 것처럼 안건처리는 뒷전이다. 말 그대로 나 몰라라 수수방관하고 있는 셈이다.

해마다 정기총회를 앞두고 이번만큼은 많은 안건을 처리하자고 호언장담하지만 말뿐인 것은 도돌이표 같다. 그렇다면 총회 이후에라도 중요한 사안이라면 면밀히 따져서 정확하게 처리해야 한다. 그렇지 않기 때문에 해마다 문제로 지적되면서도 다음회기로 넘기고 넘겨 결국에는 걷잡을 수 없이 사태가 커져 버리는 것이다. 예장 통합이나 합동의 연금재단 문제는 이를 잘 대변해준다. 초기에 대응만 잘했어도 커질 것이 아닌 문제가 늦장대처와 ‘나 몰라라’식의 수수방관이 사태를 키운 것이다. 결국 교단을 망친 것이 누구의 잘못도 아닌 교단 스스로인 셈이다.

때문에 각 교단에서는 새로운 100년을 향한 밑그림을 망치지 않기 위해서는 과거 문제가 됐던 사안들을 모두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 단순히 덮어둔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썩은 내가 진동하면 파헤쳐 잘잘못을 따지고, 두 번 다시 똑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예방해야 한다.

교단 스스로도 고인물이 되지 않기 위한 노력을 다해야 한다. 그저 연례행사에만 집중하지 말고, 교단의 미래를 위한 진취적인 사업을 전개하도록 고심해야 한다. 특히 앞서 선배들이 구상한 미래를 향한 중장기 사업이 중단되지 않도록 면밀히 검토하고, 수정·보완해 10년, 20년을 내다보는 사업이 될 수 있도록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 더불어 교단 부흥과 발전에 큰 효과를 주지 않는 소모적인 사업은 과감히 중단할 필요도 있다. 오히려 불필요한 사업을 줄이는 것만으로도 누리는 경제적 효과는 크다. 불필요하게 들어가는 경비를 교단발전과 한국교회 부흥을 위한 사업구상에 쓰는 것이 훨씬 스마트하다.

이와 함께 각 교단별로 역점사업을 하나쯤은 세우는 것이 좋다. 교단의 크기와 상관없이 중점적으로 전개해나갈 사업을 하나 정해서 100년을 바라보고 추진해 나가는 것이다. 사실 그동안에는 교단 이름만 달랐지 딱히 다른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마치 모두가 똑같은 옷을 입고 있는 듯한 착각까지 들었다. 물론 같은 뿌리, 신학이라고 자부하겠지만, 이와는 별도로 각 교단만의 특징을 살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거창할 것 없이 전도, 선교, 예배, 문화 등 다양한 것을 생각할 수 있다. 이는 각 교단에 색깔을 입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장차 그 교단의 ‘랜드마크’가 될 수 있다. 이는 분명 교단 크기로 모든 것이 좌지우지 되는 행태가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효과도 있다. 때문에 각 교단에서는 새로운 100년을 향한 옷 색깔을 먼저 정하는 것이 급선무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

각 교단의 100회 총회는 겉으로는 휘황찬란했지만, 속으로는 여느 총회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말만 100회지, 해마다 겪어왔던 일의 판박이다. 그도 그럴 것이 대부분의 교단은 마치 물이 고여 있듯이 똑같은 인물들이 자리하고 있다. 특정인물 몇몇에게만 권력이 집중되어 있어 교단의 모든 일이 그들의 손에 의해 돌아간다. 보무당당한 이들은 마치 장수처럼 맘에 들지 않으면 처단하고, 본인들이 원하면 불법이라도 자행한다. 또한 자신들의 휘하에 부하(?)들을 부려 대리청정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 이번 각 교단 총회에서는 이를 대변이라도 하듯이 곪을 대로 곪은 것이 터졌다. 예장 통합과 합동에서는 연금재단 문제로 골치를 앓았고, 합신총회에서는 이단문제로 곤욕을 치렀다.

합동에서는 이례적으로 납골당과 관련한 비리자들의 명단을 전격 공개하고, 치리에 나서겠다고 총회가 나섰다. 숱하게 문제로 지적됐음에도 뒷짐을 지고 있던 총회가 이제야 제 모습을 찾은 것이다. 물론 말로만 끝이 나면 또다시 똑같은 일이 반복되겠지만, 이 기회에 썩은 물을 퍼내는 일을 단행한 것만으로도 진일보한 셈이다. 통합의 경우도 수년 전부터 주요 문제로 떠오른 연금재단 사태가 이사회를 전원 해임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어찌됐든 교단의 불미스러운 일을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이다.

하지만 몇몇 교단은 여전히 제자리걸음만 했다. 개혁을 단행하기보다는 현실에 안주했다. 소위 이단전문가로 알려진 모 목사의 경우는 무분별한 이단정죄로 인해 그 어느 때보다 위기를 맞았지만, 결국에는 별 탈 없이 자리를 보존했다. 교단 내부적으로도 개혁의 바람이 불어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는 한순간에 사라졌다. 교회 정치의 씁쓸함을 그대로 드러낸 대목이다. 여기에 만년 총회장이라는 별명이 붙은 교단도 여전했고, 새롭게 만년 총회장이 되기 위해 통합에 통합을 거듭하고 있는 교단의 모습도 여전했다. 심지어 몇몇 교단에서는 총무가 모든 것을 좌지우지 하는 기이한 현상까지 일어났다. 곳곳에서 썩은 내가 진동했다.

이러한 모습으로는 새로운 100년을 맞이할 수 없다. 설혹 맞이한다고 해도 부끄러운 자화상일 뿐이다. 이제는 새롭게 거듭나야 한다. 그동안 잘못했다면 회개와 각성을 통해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 그 첫 발은 고인 물을 퍼내는 것이다. 더 이상 교회 정치에 휘둘리지 말고, 교단 스스로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솜방망이 처벌이 아닌 강력한 처벌을 통해 교단에 해를 끼치는 이들을 치리해야 한다. 또 교단의 이미지를 훼손하는 이단전문가들을 과감히 내칠 수 있는 용기도 필요하다. 이는 장차 그 교단의 위상뿐 아니라, 한국교회 전체의 이미지 제고에도 절실하다. 특히 아무런 잘못도 없이 정치적 희생양으로 이단으로 정죄되어 고통을 받고 있는 교회를 위한 피해보상이다.

100년을 향해 전진하자

해마다 각 교단의 총회에서 기대를 걸지만, 실망감으로 돌아오는 안건이 있다. 바로 여성정책과 관련된 것들이다. 하지만 여전히 여성과 관련된 정책들은 제자리걸음이다. 통합은 여성 총대 할당제 등 여성 관련 안건을 부결시켰고, 고신도 여성 안수(장로·권사)를 총회에서 논의했지만 ‘불가’로 결론 냈다. 대다수의 교단에서는 여성정책에 대해서는 인색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으로는 한국교회가 새로운 100년을 향해 전진할 수 없다. 오히려 이러한 정책을 고수하다가는 마이너스 성장을 부채질하는 격이다. 여성 대통령이 나올 정도로 이미 사회에서는 여성 진출이 대폭 확대 되고 있는데 교회만 평등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결국 이들은 교회를 떠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때문에 각 교단은 여성을 위한 자물쇠를 채우기보다 문을 활짝 열고, 여성만 가질 수 있는 섬세한 면을 최대한 활용해 세련된 총회로 거듭나도록 노력해야 한다.

아울러 각 교단은 목회자들의 노후를 책임지는 연금제도의 개혁을 단행해야 한다. 연금제도가 단순이 몇몇의 배를 부풀리는 도구로 사용되지 않도록, 법적 조치를 마련해야 한다. 또 단순히 연금재단을 비전문가에게 맡기기보다, 전문가를 영입해 재정 투명성을 확보해야 한다. 더불어 전문 금융기관에 기금 운용을 맡기고, 외부특별감사를 실시해 가입자들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이밖에도 무분별하게 이단으로 정죄되는 일이 없도록 올바른 이단연구 문화가 정착되도록 해야 한다. 특히 이단성 유무를 떠나서 최소한의 소명 기회조차 주지 않는 관행을 탈피하고, 성심성의껏 들어줘서 무엇이 문제인지 고칠 점은 없는지 따질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또한 동성애와 목회자 납세 등 각종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도 촉각을 곤두세워 민감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동성애는 나쁘다, 목회자는 납세의 의무가 없다는 논리만 내세우지 말고, 왜 그런지 논리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자칫 무턱대고 반대하는 모습은 한국교회에 역효과만 낼 뿐이다. 모두가 납득할만한 이유로 그들을 설득하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새로운 100년을 향해 한국교회가 전진하려면 이 땅에 소외된 이웃을 향한 사랑을 실천에 옮겨야 한다. 교회의 외형적 성장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모든 것을 내려놓아 소외된 이웃과 함께할 수 있는 내면적으로도 성숙한 한국교회가 되어야 한다. 각 교회의 성장위주의 예산편성도 이제는 소외된 이웃을 위한 사랑실천에 먼저 초점을 맞춰야 한다.

유종환 기자  yjh448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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