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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찬 목사] Mentor, Mentee & mentoring
기독교한국신문 | 승인 2015.11.12 08:34

   
▲ 황 인 찬 목사
많은 이들이 멘토와 멘티 관계를 맺으려하는 것이 유행처럼 보인다.

기업들 중에도 ‘멘토링 시스템’을 도입해서 선배사원과 후배사원을 멘토와 멘티로 연결해서 자매결연을 하게하고, 멘토와 멘티의 신뢰관계를 통해 기업 효율성을 높이면서 Win-Win하게 하여, 기업의 추구하는 바를 가장 효과적으로 기여하기를 바라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멘토는 남의 인생을 잘 이끌어야 하는 사람이기에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자칫 멘토링을 잘못하면 멘티가 큰 곤란에 빠지거나 잘못된 인생의 길을 가게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혹 누구로부터 멘토의 제안을 받았다면 신중할 것은 ‘나는 과연 그가 원하는 방향으로 그를 이끌만한 자질이 있는가.’를 스스로 진중히 살펴봐야 한다. 멘토는 엄숙한 인생의 스승이 되기에 반드시 멘티를 잘 이끌어줄(lead) 수 있어야 한다.도와줄(help)수 있어야 하고, 점검(check)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이 세 가지 중, 하나라도 부족하면 멘토의 자격에 미달한다고 할 것이다.

근본적이고, 원초적인 멘토는 인생의 큰 길을 가는데 있어 자기 인생에 도움을 주는 내비게이터(navigater)가 되어야 한다. 따라서 멘토는 그와 인생을 같이 가면서 진정한 스승이 제자에게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하여 멘티를 바른 길, 옳은 길로 인도하고, 좋은 사람, 유능한 사람이 되게 하겠다는 각오가 없으면 절대로 멘토가 되어서는 안된다. ‘나의 멘토가 되어주십시오’ 라는 제안을 받았다면 신중하게 생각하고, 받아들였다면 죽을 때까지 진심을 다해야 하는 어려운 미션이 멘토이다

멘토가 되는 것도 어렵지만 멘티가 되는 것 또한 쉽지 않은 일이다.

멘티의 가장 성공적인 자세는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멘토에게 오픈하는 것이다.

멘토와 멘티의 관계는 의사와 환자의 관계로 비유할 수 있다. 가장 현명한 환자는 자기 주치의에게 있는 그대로 모든 것을 다 말하는 환자이다. 어떤 것은 숨겨두고, 말하지 않으면 의사가 환자를 정확하게 진단하여 처방할 수가 없다. 많은 멘토와 멘티의 관계에서 멘티는 멘토로 부터 '이것은 얻겠다.'는 생각이 앞서있고, 본인의 부끄러움이나 핸디캡(handicap)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방어적 자세를 갖고는 한다. 그러면 환자와 의사의 관계에서 본 것처럼 충분하게 병증을 말하지 않으므로 정확하게 진단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의사로부터 처방전 받아 약을 먹어도 치료될 확률은 그 만큼 낮아지는 것과 같다.

사실 멘티가 멘토한테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벽을 넘지 않으면 진정 소중한 인생의 길도우미로서 멘토는 엉뚱한 곳에서, 우왕좌왕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멘토는 멘티가 준 정보를 가지고, 의사결정을 하고, 멘티에게 방향성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멘티의 자세는 진정 솔직 담백해야 한다. 자기의 장점, 강점을 말하기 보다는 단점, 약점을 숨김없이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멘토가 멘토링을 하는 과정에서 장단점을 바르게 판단하여 멘토링을 해줄 수 있도록 협력해야 한다. 그 만큼 멘토와 멘티의 관계는 절대 신뢰 관계가 형성되기 까지 서로 그 신뢰를 쌓고,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다.

일반적으로 멘티들은 '청출어람 청어람(靑出於藍 靑於藍)'을 꿈꾼다. 청출어람이라 하면 ‘스승을 능가하는 제자’를 말함인데 청출어람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전제해야 할 것이 있다. 스승의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고, 플러스알파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스승에게서 받아들이고 싶은 것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면서 그를 능가하려하면 청출어람은 불가할 것이다. ‘제자가 마음을 열지 않으면 스승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바로 이런 뜻일 것이다.

큰 사람이 되려면 스스로 좋은 멘티가 되고, 성공하고 싶다면 자기의 치부나 약점을 과감하게 말할 수 있는 멘토가 있고, 멘티는 그 멘토에게 성실하고, 신의성실(信義誠實)에 의거해서 모든 것을 알게 하고, 도움과 가르침을 구하는 자세가 되어야 성공적인 멘토와 멘티, 그리고 멘토링이 될 것은 자명하다. 멘티인 나의 불변의 멘토는 언제나, 항상 나의 주, 우리 예수님이시다. 그러기에 더 이상의 멘토는 찾거나 구하지 않는다. 교만함인가.

의왕중앙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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