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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찬 목사] 교회 섬김의 원리들
기독교한국신문 | 승인 2015.12.15 13:54

   
▲ 황 인 찬 목사
믿음으로 구원을 얻은 사람은 주님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자기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려야 한다. 그 제사란 하나님과 이웃을 위한 섬김과 봉사를 가리킨다.

교회는 주님의 몸인 동시에 우리의 몸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자기 몸을 먼저 극진히 섬기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믿음으로 주님의 교회를 섬겨 봉사하는 자가 반드시 따라야 할 원리가 있다.

첫째는 섬김과 봉사는 사랑으로 하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사랑 없이는 아무 것도 하지 말아야 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들이기도 하다. 사랑은 주님이 주신 새 계명이다(요 13:34). 옛 계명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지만 새 계명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이다. 옛 계명은 자기 몸을 사랑하는 것 같이 사랑하는 것이기에 섬김과 봉사의 색깔이 다분히 본능적이다.

그러나 새 계명은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 것 같이 사랑하는 것이므로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사랑에 뿌리를 두고 있는 사랑이다.

주를 믿는 믿음의 사람들이 사랑 없이 하는 일은 그것이 아무리 대단한 사역이라 할지라도 헛것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사랑하지 못하는 자에 대해 우리가 구원 받았다고 말하기도 곤란하다(요일3:14, 요5:24).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로 거듭났다는 뜻이다.

한 아버지에게서 난 형제들은 근원적으로 서로 사랑한다. 뜨거운 형제애를 느낀다. 믿음의 형제자매들에게 사랑을 느끼고 사랑하는 이것이 내가 구원받은 가장 확실한 증거 중의 하나이다. 그러므로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구원과 멸망의 차이는 무엇인가?

존재의 영원성에 있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 구원과 멸망의 차이는 사랑이다. 사랑은 주님이 명령하신 계명이기에 핑계하지 말고, 순종해야만 한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사랑은 자기 십자가에서 자기가 죽지 않고는 결단코 아무도 그 사랑을 할 수 없다.

둘째는 열심으로 주를 섬겨 봉사하는 것이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롬 12:11)고 하셨다. '열심을 품고'는 '영적으로 끓어올라서' 혹은 '성령으로 충만하여 가슴이 뜨거워서'라는 뜻이다.

그리스도인은 자기 심령과 뼈 속에 불을 가진 자들이다. 뜨거운 열정은 은혜 받은 자들에게서 나타나는 공통된 기질이다. 그러기에 어떤 사람에게 없던 열심이 갑자기 생겼다면 은혜 받았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기독교는 한마디로 열심의 종교다. 주님은 미지근한 것을 싫어하신다(계3:15,16).

일반적으로 독특한 열심을 비웃고 멸시하려는 경향들이 있는데 그것은 마귀의 술수다. 마귀는 미지근함, 온건, 중용이라는 것으로 새 포장을 장려한다. 하나님은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 두었던 종에게 "악하고 게으른 종"(마25:26)이라고 책망하신다.

주님의 교회 봉사를 온전히 하려면 뜨거운 열심이 있어야 할 것은 당연하다.

셋째는 어려워도 봉사하라는 것이다.

성경은 우리를 향해 고난의 때요, 역경의 때에 특별히 소망을 가지고 즐거워하라고 말씀하신다. 이를 악물고 참아야 하는 환경이라면 그것은 분명 환란의 때다. 전보다 기도를 더 힘쓰고, 매달려야 한다면 우리가 의지하던 것이 사라져 버린 암담한 상황일 수 있다. 이런 감당하기 어려운 때에 다른 사람을 섬기는 일이 몹시 힘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교회를 섬기고, 형제를 돕고 섬기는 일을 한다고 해서 현실이 항상 잔잔한 강 같은 평화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언제나 어려움은 상존하고, 사고처럼 닥칠 수 있다. 그럴 때 모든 것이 힘들고 귀찮으니까, 그 일이 주의 일이라도, 선한 섬김의 일이라도 하던 일을 그만 두고 싶어진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를 보고 더욱 힘내어 이웃을 섬기라(롬 12:11)고 하신다. 평안할 때 하는 봉사보다 어려울 때 하는 봉사는 몇 갑절 가치가 있음을 설파한다.

넷째는 나누면서 봉사하라고 하신다.

초대교회는 거의가 극빈자들의 공동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찾아오는 손님에게 내가 먹던 것을 나누고, 나의 잠자리를 양보해야 했다. 자기의 것을 나누고, 자기를 희생하지 않고, 교회 봉사를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래서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시험과 올무에 빠질 수도 있었다. 오늘의 우리들 교회 안에도 초대교회 때처럼 내가 섬기고, 나누어야 할 형제들은 얼마든지 있다.

당신은 구원 받았는가? 그렇다면 우리 몸도 우리의 삶도 구원 받았다. 구원 받은 자의 삶은 곧 산제사를 드리는 행위로 들어나고야 말 것이다.

의왕중앙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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