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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이념적 논쟁 벗어나 한민족 선교 나서야분열과 갈등으로 공존, 공생, 공영의 길 가지 못해

한민족 선교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남한과 북한을 따로 분류하지 않고, 한 몸으로 여기자는 생각에서다. 7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어느덧 고착화된 민족분단의 아픔을 ‘한민족’이라는 틀 안에서 새롭게 극복해보자는 주장이다. 이는 곧 분단 70년 한국교회, 통일운동을 어떻게 선도해야 하느냐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한민족 선교에 나약한 모습을 보였다.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부흥과 성장을 이룬 한국교회였지만, 유독 남북한 모두를 아우르는 한민족 선교에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는 남북분단이라는 지리적 제약도 있었겠지만, 이념적 논쟁에 휩싸여 하나된 모습을 보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소모적인 논쟁은 남북한의 간극을 좁히지 못했고, 오히려 진보와 보수의 틈만 더욱 헤집었다. 이에 한국교회가 통일과 민족화합 및 한민족 복음화를 위한 현실적이며 실천적인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내부분열로 한민족 선교에 소홀

사실 민족분단이라는 70년 역사 속에서 남과 북은 끊임없이 다툼을 이어왔다. 그 과정 속에서 한국교회는 선지자적 자세로 임하기도 했지만, 솔직히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성난 남과 북을 화해로 일치시키는 노력이 부족했다. 다시 말해 남과 북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화해의 주선자로서 모습은 보이지 못했다. 사회 전반에 짙게 깔려 있는 반공주의에 편승해 북한체제를 향해 비난하기 일쑤다. 한 달 전 한국복음주의협의회 월례 발표회에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김영주 목사의 발언대로 한국교회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라’를 실천하지 못한 채 우리 사회에 확산되어 있는 반공주의에 그대로 온존하고 있는 셈이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공존, 공생, 공영의 길로 나가야 하는데, 반목과 갈등의 미로 속에 갇힌 느낌이다.

이처럼 민족분단의 아픔을 극복하고, 통일의 대업을 이루는 선봉에 서길 원하는 사회적 바람과 달리, 한국교회는 이념의 틀, 지역의 틀, 빈부의 틀에 갇혀 한민족 선교를 온전히 기획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한국교회가 남과 북의 갈등을 풀기 위한 기본적인 자세조차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한국교회 내부적인 분열과 갈등의 굴레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누가 누구를 걱정하느냐”는 비난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솔직히 한국교회는 하나됨과는 거리가 먼 행보를 이어왔다. 숫자적인 수치로만 따져도 300여개가 넘는 교단들이 즐비하고 있으며, 단체의 숫자도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양산되어 있다. 이것도 모자라 지금 이 순간에도 아메바식 분열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다. 한국교회를 대표한다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이단문제를 빌미로 한국교회연합으로 쪼개진 것은 이를 잘 대변해 준다. 성경이라는 하나의 텍스트를 가지고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스스로 세속적인 잣대로 들이대 나누고 쪼개고 있는 것이다. 남한 교회도 하나가 되지 못한 채 나누어져 서로를 헐뜯고 있는데, 한민족 선교를 위한 힘을 한데 모으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그러면서도 남과 북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모순적인 발언만을 일삼고 있다.

한민족 선교 위한 교회 자정이 절실하다
통일시대 향한 교회의 준비 카운트다운 해야

한국교회가 하나되지 못하고 분열을 거듭하면서 더 이상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하는 종교로 전락하고 말았다. 연합기관이 몰려 있는 종로5가는 분열의 메카로 변질됐고, 과거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의 소망을 심어주었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일본제국주의 아래 독립운동의 요람이었고, 기독교농민운동, 기독청년운동, 기독학생운동의 산실이었던 현장이 돈과 축복, 그리고 바벨과 맘몬을 노래하는 범죄의 소굴이 된 것이다.

실제로 한국교회는 130년의 역사를 지내오면서 점점 가난하고 고통 받는 민족과는 담을 쌓았다. 오히려 지배자의 이데올로기에 빠져 본질을 망각했다. 언제나 가진 자의 편, 권력의 주변을 맴돌며, 부자들을 위한 첨탑을 높이 세우는 데에만 몰두 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들에게 민족의 화해와 평화, 그리고 용서와 분단극복의 의지를 찾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세상 사람들이 한국교회를 향해 분단극복을 이야기하지 말고, 교파주의나 청산하라고 쓴 소리를 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들은 한국교회에 더 이상 희망을 걸지 않는다. 지배자의 이데올로기에 빠진 한국교회가 분단극복이란 무거운 짐을 짊어질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작금의 사회가 기독교보다 불교를, 불교보다 천주교를 찾는 이유다. 한국교회에는 더 이상 소망이 없다고 결론을 내린 마당에 무엇을 바라겠는가.

하지만 한국교회는 명심해야 한다. 130년의 역사 속에서 부대끼며 오면서 선배들이 어떻게 이 사회를 지켜왔는지, 이 민족을 위해 기도했는지 되새겨야 한다. 일본제국주의, 한국전쟁, 분단, 독재정권 등 질곡의 역사의 터널을 지나오면서, 어떻게 하나님 나라의 선교를 위해 땀 흘려 왔는지 생각해야 한다. 평화와 통일, 화해를 향한 민족적 행진에 교회가 적극적으로 참여해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도운동으로 평화통일 준비해야

분열과 갈등의 온상으로 위상이 추락한 한국교회지만, 한민족 선교에는 부끄러움이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하지만 이는 스스로 한민족 선교에 선봉에 서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일 뿐, 실상은 다르다. 북한에 교회를 세우고, 먹을 것을 주는 등 사역을 하고 있으면 한민족 선교를 다하고 있다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물론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그렇다면 드러나지 않은 북한의 지하교회에 대한 대책은 무엇이며, 해마다 종교탄압을 통해 목숨을 잃는 북한의 현실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는 마치 후진국에 물자만 지원하고, 그들이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렇게 따지면 정부가 북한동포를 위해 지원한 것만을 보면 이미 한국교회보다 종교적 우위에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따라서 이러한 논리로 북한선교를 접근하는 것은 옳지 않다.

특히 진정한 한민족 선교는 남한선교와 북한선교를 따로 분리해서 말할 수 없다. 통일시대를 준비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면 밑 빠진 독에 물붓기와 같다. “우리 교회는 북한동포를 위해 얼마의 헌금을 내고 있다”는 근시안적인 생각은 미봉책일 뿐이다. 그렇다면 통일시대를 위한 한민족 선교는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긴다.

흔히 남북통일이 민족의 자주성과 동질성을 회복시키고, 한반도의 평화를 안정적이며 영구적으로 정착시키는 지름길로 인식되고 있다. 또한 남북통일이 정치, 경제적인 안정을 통한 민족 공동번영의 토대를 마련하고, 세계평화에도 기여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맞는 말이다. 남북통일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큰 파급효과를 낸다. 그러나 이보다도 남과 북이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따를 수 있다는 기대효과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의 파급력을 갖는다.

따라서 한국교회는 남과 북이 하나가 될 수 있도록 하나님 안에서 화해와 일치의 역사를 몸소 실천해 나가야 한다. 그것이 바로 한민족 선교를 향한 첫걸음이다. 보다 구체적인 대안에 대해서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이영훈 목사의 말을 빌려보자.

우선 한국교회는 기도운동을 통해 복음으로 이루어질 평화 통일을 준비해야 한다. 또한 심각한 자연재해와 경제정책의 실패로 인한 북한동포의 고통에 공감하고, 인도주의적 차원의 사회복지선교 실행해야 한다. 특히 통일 후 북한교회 재건에 대한 현실적 인식 제고와 재정적인 준비에 만전을 기해야 하고, 체제적 통합만이 통일이 아니라, 사회문화적 통합이 수반되어야 진정한 통일이 된다는 것을 아로 새겨야 한다. 다시 말해 민족 이질화를 극복하고, 새로운 차원의 통일민족공동체를 건설해 나가야 한다. 더 이상 환경에 영향을 받아 한민족 선교에 소홀하지 말고, 하나님 안에서 하나라는 마음으로 화합의 제스처를 취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와 더불어 난립되어 운영되고 있는 각종 북한선교 출구를 하나로 모아 집중적인 사역을 펼칠 수 있는 북한선교 컨트롤 타워를 구성하고, 각 교회에서도 북한교회 자립을 위한 지원자금을 훗날 통일시대를 바라보며 모아둘 필요가 있다. 이는 통일 후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북한선교의 동력이 될 지하교회나 가정교회가 무너지지 않고, 일어설 단초를 제공할 것이다.

유종환 기자  yjh448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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