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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교 졸업생들 갈 곳 없어…한국교회 성장 동력 멈춰양질의 자원들 나와도 이를 수용할 곳은 태부족

한국교회의 성장 동력이 멈췄다. 각종 비리의 온상으로 낙인찍혀 마이너스 성장만 안해도 본전이다. 이름만 들어도 내로라하는 목회자들의 각종 추태는 한국교회를 향한 사회의 기대마저도 꺾어 버렸다. 그렇다고 다음세대를 향한 희망도 쉽게 갖기가 힘들다. 당장 한국교회의 미래를 이끌어나갈 신학생들이 졸업을 해도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제 아무리 양질의 자원들이 대거 쏟아져 나와도 이를 수용할 곳이 태부족이다.
 
설령 목회 임지를 찾았다 해도 끝까지 자신의 목회철학을 고수해 나가기도 힘들다. 경제적 여건이 앞을 가로막고 있어 하루에도 수십번씩 자신의 소명에 대한 갈등으로 외줄타기를 한다. 그나마 목회 임지라도 있으면 다행이다. 요즘에는 젊은 목회자들이 부목사를 청빙하거나 전도사를 구한다는 구인란을 보면 저 먼 곳 시골 깡촌까지 이력서를 들고 내달린다. 어느 지방의 중형교회에서 부목사를 한명 청빙할 경우 경쟁률이 적게는 수십에서 많게는 수백에 이른다. 그만큼 갈 곳이 없다는 것을 잘 대변해 준다.

그렇다면 이처럼 갈 곳이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출발점은 바로 무분별한 신학교의 난립에 있다. 또 각 교단 정통 신학교라고 불리는 곳조차도 학생모집에만 열을 올리는 행태에 있다. 사실 과거 교단의 분열과 교세확장 등으로 무분별하게 세워진 신학교에서는 무한대로 목사후보생들을 양산해내기에 바빴다. 물론 한 때는 양으로 승부한다고 이들의 역할이 통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단순히 그렇게 보인 것이지, 실상 이들에게 한국교회의 부흥과 성장의 공을 돌리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시간이 갈수록 이렇게 양산된 목회자들은 목회자 수급 자정능력을 상실시켰고, 스스로 그 어느 곳에도 설자리가 없게 만들었다.

사태의 심각성을 더욱 키운 것은 각 교단과 신학교의 안일한 대처에 있다. 학교운영의 대부분을 등록금에 의존해야 하는 신학교로서는 신입생 수를 늘리기에만 열을 올렸고, 교단에서도 외부적으로 교세 자랑에만 혈안이 되어 코앞에 닥친 위기를 알지 못했다. 설령 알았다고 해도 당장 수입이 줄어들 것을 우려해 나 몰라라 한 것이다.

그나마 정식으로 인가를 받은 신학교는 다행이다. 목회자 과잉공급의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곳을 바로 비인가 신학교다. 이들 신학교는 정규 신학교를 갈 수 없는 고령자나 학력 미달자, 사회적 범죄자 등까지도 모조리 받아들여 학위 남발을 하고 있다. 심지어 몇몇 신학교들은 최소한의 형식적인 신학교육마저도 무시한 채 어느 정도 시간만 지나면 학위를 수여하고 졸업생들을 배출시키고 있다. 이는 곧 가짜박사를 양산해 내는 결과를 초래했고, 가뜩이나 취업의 문이 좁은 신학생들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이처럼 넘쳐나는 신학교는 아무런 대책 없이 졸업생들만 세상에 내놓았다. 아무런 준비 없이 세상에 나온 졸업생들은 혹독한 시련을 맛볼 수밖에 없는 현실에 처했다. 넘어지고 또 넘어져 결국에는 스스로 목회자의 길을 포기하는 지경에 이르게 됐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를 단순하게 신학교만의 문제로 치부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한국교회도 수저 계급 존재, 빽 없는 신학생은 어디로(?)
금수저-편안히 교회세습, 흙수저-투잡 뛰어도 ‘막막’

이는 마치 오늘날 청년실업의 문제를 학교의 잘못으로만 치부해버리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실 졸업생들을 모두 수용할 일자리를 만들어내지 못한 정부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신학교에서 배출된 졸업생들이 소명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목회 임지를 비롯한 다양한 일자리를 만들어야 할 책임은 한국교회 스스로에게 있다. 특히 한국교회를 대표한다는 연합기관이나 각 교단, 단체에서 뚜렷한 대비책을 세워 양질의 목사후보생들이 마음 놓고 목회에만 전념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각 교단과 단체 등은 문제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조차 하지 못한 채 강 건너 불구경 중이다.

여기에 졸업생들 스스로 일명 스펙쌓기에 실패한 것도 주된 요인이다. 사실 일반대학 졸업생들도 똑같은 상황에 처한다. 기업에서는 같은 조건이라면 보다 좋은 스펙을 쌓은 자원을 먼저 뽑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다면 기업이 원하는 인재로 거듭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신학교 졸업생들도 그저 학위만으로 자신이 무엇을 해보겠다는 생각보다는, 남들과는 차별적인 목회철학을 갖고 스스로 한국교회에 자원으로 쓰임 받겠다는 각오로 임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이력서만 툭 던지면 ‘어디든 날 쓰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임하면, 돌파구를 찾기 힘들다.

신학교 졸업생들이 갈 곳이 없는 데에는 앞서 살펴 본대로 무분별한 신학교 난립, 교단과 단체, 기관의 안일한 생각, 신학생 스스로의 경쟁력 약화 등이 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문제는 바로 한국교회가 본질을 잃어버린 채 방황하고 있다는 점이다.

작금의 교계 환경은 교인들이 감소하고, 그로 인한 교회 예산도 줄어들어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 누구보다 모범을 보여야할 지도자들이 오히려 한국교회의 얼굴에 먹칠을 해, 그나마 한국교회에 남아있는 이미지마저 실추시킨 대가다. 혹자는 한국교회 붕괴론까지 들고 나와 심각성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케 한다.

이런 상황에서 신학생들이 큰 뜻을 품고 소명을 다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경제논리가 팽배한 한국교회에서 살아남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보다 어렵다. 우선 신학생들이 학교의 문턱을 넘어서는 순간, 당장 먹고 살 걱정부터 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주요 교단 산하 신학대학원까지 나온 A 전도사나 B 전도사 모두 현실과 다른 교계 환경에 고개를 숙였다. 월세도 내기 힘든 환경 속에서도 소명을 다하기 위해 이곳저곳 지원서를 냈지만,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뿐이다. 몇몇 전도사들은 주중에는 택시기사나 영어강사 등 파트타임 직업으로 일하고, 주일에만 전도사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군소 교단이나 무인가 신학교의 경우 더욱 심각해진다. 목회 임지는 정해져 있는데, 군소 교단이나 무인가 신학교 출신의 졸업생들까지 챙길 자리는 없는 것이다. 이는 군소 신대원이나 무인가 신대원 졸업자들이 사역지를 찾을 비율이 20%가 채 되지 않는 것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개척을 꿈꿀 수도 있지만, 개척한 교회의 1%만이 살아남는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버텨내기가 더욱 힘들다. 때문에 여기저기 지원서를 넣는 것이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기다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내 맥이 풀린다. 겨우 연락이 와서 큰 기대를 했는데, 사례비를 보는 순간 눈앞이 캄캄하다. 교회에서는 88만원 세대에도 절반도 미치지 않는 액수의 사례비를 내민다. 울며 겨자 먹기로 이빨을 깨물지만, 현실은 더욱 참혹하다.

이것도 혼자 생활하거나 혹은 나이가 어린 경우에는 ‘경험’이라 생각해 버틸 만 하다. 하지만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책임이 주어진다면 말이 달라진다. 파트타임이나 아주 적은 비용의 사례비만을 받고서 삶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현재 한국교회에서는 정당한 대가보다는 헌신만을 강요하고 있다. 혹시라도 자신의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면은 아주 파렴치한으로 몰고 간다. 때문에 먹고살기조차도 힘든 상황에서도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그렇게 큰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그렇다고 투잡(two job)을 뛰기에도 벅차다. 육체적인 고통보다는 이중직을 바라보는 시선이 따갑다. 몇 년 동안 택시운전과 대리운전을 해 온 모 목회자는 어디 가서 떳떳하게 자신의 신분을 드러내기가 두렵다. 혹시라도 목사가 얼마나 변변찮으면 설교가 아닌, 택시운전이나 하고 있을까라는 시선 때문이다. 때문에 이 목회자는 자신이 운전대를 잡는 순간에는 철저히 신분을 속이고 있다. 간혹 같은 목회자가 손님으로 탔을 때에도 반갑게 맞아주지 못한다.

이런 의미에서 기독교대한감리회가 목회자 이중직을 통과시켰다는 점은 반가운 소식이다. 생계유지도 힘든 목회자가 스스로 살 방도를 찾는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 다만 목회자 이중직 허용 자체가 목회자들의 삶의 질 개선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열쇠는 아니라는 점이다. 목회자는 목회에만 집중해야만 올곧이 하나님 말씀을 전할 수 있다. 목회자 스스로 생계문제에 내몰리는데 과연 좋은 설교가 나올까 의문스럽다.

하지만 이보다 더욱 어깨를 처지게 만드는 것은 바로 한국교회 안에서도 일명 수저 계급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오직 주님만을 의지해 사명을 감당하는 자보다, 능력 있는 아버지 목사를 만나 부족함 없이 살다가 교회를 물려받는 것을 높이 평가한다. 말 그대로 금수저로 태어나 아버지 목사에게 자연스럽게 바통 터치를 하는 것이 관례가 되어 버렸고, 흙수저로 태어나면 제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한계가 있는 것이다. 이는 단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그치지 않고, 사위, 혹은 사돈에 팔촌까지 그 영역을 확대하면서 거대 맘모스 집단을 만들고 있다. 일개 신학교 졸업생들이 비집고 들어갈 공간이 그만큼 줄어드는 셈이다.

이를 막기 위해 각 교단에서 세습방지 법안을 만들고, 시행하고 있지만 직계세습만 줄어들었을 뿐, 현실은 보다 구체화된 세습관례를 확산시키고 있다. 바로 징검다리 세습, 교차세습, 합병세습, 지교회 세습 등 직계세습의 틀에서 벗어난 세습으로 법의 망을 교묘하게 벗어나고 있다. 이렇게 세습까지 자행하면서 자신들의 가족, 친지 등이 장악하고 있는데, 신학교를 이제 갓 졸업한 졸업생들이 갈 곳은 없다.

따라서 신학교 졸업생들이 방황하지 않고, 올곧이 하나님 사역을 감당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보다 구체화된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우선 난립하고 있는 신학교의 숫자를 줄이고, 각 신학교에서도 대의적인 명분으로 신학생들의 정원을 줄여나가야 한다. 당장은 경제적 손실이 있겠지만, 이는 먼 훗날 한국교회를 바라본다면 투자나 마찬가지다. 더불어 여러 개로 나뉜 신학교를 하나로 통폐합하고, 무인가 신학교의 경우는 체계화된 신학교육 시스템을 도입해 가도록 이끌어야 한다.

또한 각 교단이나 단체, 기관에서는 졸업생들의 처우 개선을 위한 다양한 방법을 모색해야 하고, 이들이 마음 놓고 목회에만 전념할 수 있는 경제적인 후원자가 되어야 한다. 각 교회에서도 현재 관행처럼 되어 있는 헌신만을 강요하는 것이 아닌, 능력에 따른 사례비를 적절하게 지급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더 이상 목회자 세습과 같은 악행이 독버섯처럼 확산되어서는 안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정신만을 물려주려는 노력을 다해야 하고, 교회는 온전히 주의 몸으로 남도록 가만히 둬야 한다.

아울러 한국교회 자체적으로 다양한 사역지를 만들어 해마다 쏟아지는 졸업생들이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는 사역에도 전력을 다하고, 이 사회와 국가를 발전시키는 데에도 꼭 필요한 인재로 자랄 수 있도록 일자리 창출에 기여해야 한다.

이는 특별한 단체나 기관, 교회만이 나서서 해결되는 것이 아닌, 한국교회 목회자나 성도들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다. 한국교회연합이 턴업 운동을 하듯이 이제는 한국교회 전체가 개혁과 갱신을 위한 회개운동에 나서야 한다. 그것이 바로 신학교 졸업생들이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유종환 기자  yjh448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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