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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종교 사회에서 평화의 길을 모색한다이웃종교와의 대화 통해 민족화해의 길 모색해야…

여러 종교의 공존, 다원화된 사회와 개인의 자율성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

일부 보수주의자 ‘사찰 내 땅 밟기’ 등의 행동, 독선적인 기독교 모습 반영

다종교 사회, 다종교 공존

한국사회는 다종교 사회이다. 여러 종교들이 대등한 세력과 영향력을 가지고 공존하며, 평화를 유지하고 있다. 종교간 이렇다 할 갈등을 갖고 있지 않다. 한마디로 우리 사회는 불교, 개신교, 천주교, 유교, 무속종교, 신종교들이 존재하며, 이들 종교 모두는 평화를 노래하며 신도들에게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가 주고 있다.

우리사회의 최대종교는 불교이다. 그렇다고 불교가 한국 종교계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통계청의 조사에 따르면, 불교인구가 국민의 23%, 개신교 20%, 천주교 7%, 유교 0.5%, 원불교•천도교•대종교 0.4%로 나타났다. 이들 종교인구 중 상당수는 무속종교와 혼합되어 있다.

우리사회와 같이 여러 종교가 공존하고 있는 것은 사회의 다원화와 개인의 자율성에 따른 불가피하고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헌데 한국 개신교는 이런 다종교 사회를 인정하지 않고, 진리를 내세워 이웃종교에 대해서 매우 배타적이다. 한마디로 개신교의 신자 대부분은 ‘기독교 이외는 구원이 없다’며, 다른 종교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오늘 기독교인들의 입에서 ‘이슬람교’를 비롯한 이웃종교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는 것은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교는 거의 기본적인 진리와 나름대로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웃종교의 있는 그대로를 인정한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것은 자신이 믿고 있는 종교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한 신도들의 신념이기도 하다. 한 갤럽조사에 의하며, 천주교인은 77%가 이웃종교를 인정하고, 불교 64%, 기독교 51%로, 기독교가 이웃종교들보다도 매우 폐쇄적이다.

또한 종교지도자들 중 타종교를 인류사회를 위해 공존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경우는, 기독교 30%인데 비해 불교와 천주교는 80%이상이 긍정적으로 대답해, 기독교지도자들이 종교적 배타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극명하게 드러내 보이고 있다. 이것은 다종교 사회에서 한국개신교가 정신적 성숙이나, 문화 창달에 커다란 장애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극명하게 드러내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요소로 인해 한국의 개신교는 다른 사회단체로부터 독선적이며, 배타적인 집단으로 낙인 찍혀 세상을 향한 선교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인류가 종교를 통한 평화 기대

오늘 우리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부 극단적인 보수주의자에 의해서 벌어지고 있는 사찰 내에서의 땅 밟기, 장승 훼손, 불교사찰 방화, 단군상 훼손 등의 행동은 독선적인 기독교의 모습을 그대로 잘 반영하고 있다. 9.11테러와 미국의 대이라크 전쟁 이후, 정치학자 새무얼 헌팅턴이 제기한 ‘문명 간의 충돌’이 실감나기 시작했다. 또한 문명 간의 충돌, 아니 종교 간의 충돌은 오늘도 세계 도처에서 계속되고 있다.

1980년 사회주의 국가들이 해체되면서, 냉전시대가 마감됐다. 탈냉전시대인 오늘 우리사회의 갈등은 정치적, 경제적 갈등이 아닌 문화적 갈등이다. 그 중심에 종교가 있다. 그것은 종교가 사람들의 삶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결정해 주기 때문이라는 것이 숭실대학교 기독교학대학원 이혁배 교수의 주장이다.(2004년, 기독교서회, <개혁과 통합의 사회윤리>)

또한 종교는 산업의 발달로 인해 파괴되고 있는 공동체의 울타리적인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그만큼 인류가 종교를 통한 평화를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의 평화와 인류의 평화는 종교에 의해서 깨어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다. 여기에 계층 간의 갈등과 민족 간의 갈등, 인종 간의 갈등이 합치되면서, 무력충돌이라는 극단적인 사태로 몰아가고 있다. 최근 일어난 시리아 내전과 IS의 전쟁 역시 종교라는 이름을 내걸고 일어난 ‘거룩한 전쟁’이다. 이 전쟁으로 수많은 난민들이 보다 나은 삶을 찾아 지중해를 넘다가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여기에다 서방국가들의 IS공격 역시 평화를 앞세운 종교전쟁이다.
이렇게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분쟁과 갈등은 모두 종교적인 갈등이라는데 이의가 없다. 다종교 사회인 한국 역시 기독교의 공격적인 선교, 이웃종교에 대한 배타적인 모습은 앞으로 종교 간의 충돌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보다 한국개신교는 보수와 진보로 나누어져 끝없이 보이지 않는 전쟁을 수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는 극명해진다.

2년전 WCC 부산총회를 앞두고, 한국 개신교 보수와 진보의 혈전은 누가 보아도 기독교 내에서 일어난 전쟁이었다. ‘총’만 들지 않았지 전쟁 아닌 전쟁이었다. 보수와 진보의 갈등은 이웃종교와의 갈등보다도 더 심각한 상황을 그대로 보여 주었다. 이를 타종교에서 바라보는 기독교인의 모습은, 분명 전쟁 이상일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우려스러운 것은 한국 개신교의 피선교국을 향한 공격적인 선교는, 피선교국에서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 그것은 일부 한국선교사들이 피선교국의 문화와 종교, 그리고 역사를 몰각하면서 빚어낸 사건이다. 지난해 A선교단체가 인도의 불교사원에서 땅 밟기 행사를 벌인 것은 한국개신교의 선교의 공격적인 선교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마디로 이웃나라의 문화와 종교를 이해하지 못하고 공격적인 선교가 빚어낸 종교 간의 갈등이다. 이 사건은 외교적인 문제로까지 비화되었다.

종교, 세계분쟁의 중심에 서 있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종교적 분쟁은, 종교적 차이에서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경우 국적이나, 계급의 차이에 근거한 인종간의 갈등이 종교적 차이와 합치되면서, 무력충돌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종교학자 밀러 잉거의 주장이다. 그러나 종교적 차이가 폭력분규의 한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지적하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다종교인 우리사회는 계층 간의 경계선이 종교의 구분선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각각의 종교집단들이 충돌을 일으키지 않고, 나름대로의 활동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다 단일민족으로 구성돼 종교분쟁의 직접적인 원인인 인종간의 분쟁도 없다. 하지만 다민족이 밀려들어오고, 외국종교들의 활동이 활발해 지면서, 다종교사회인 우리사회도 종교적인 분쟁과 인종적인 분쟁 등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이슬람교의 유입과 이들의 포교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매년 이슬람교도가 1000%씩 증가하고 있다. 반면 기독교인들은 교회를 떠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밀턴 잉거가 주장했던 사회에서 종교적 배타주의가 존재하게 되면, 이것은 민족 감정과 결부되어 종교 간의 갈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게 만든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사회에 계층 간의 격차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종교 간의 갈등이 첨예화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그러나 한국 개신교의 타종교에 대한 배타주의, 특정종교를 믿는 특정지역의 민족에 대한 배타성은, 종교 간의 분쟁을 일으킬 수 있는 충분한 원인을 제공할 수 있다. 여기에다 극단적인 선교형태를 취하고 있는 이슬람교를 향한 비난과 이슬람교도들의 유입은 이를 뒷받침 해 주고 있다. 여기에다 기독교인들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이슬람교도들을 향한 비난의 목소리와 할랄식품공장 설립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고조되고 있다.

이미 한국 개신교와 이슬람교 간에 충돌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오늘 우리사회에서의 개신교 교인들의 입에서 이슬람교도들을 향한 비난의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한마디로 기독교인들의 배타적인 모습을 그대로 보이주고 있다. 개인이 자기가 속한 여러 준거집단들과 자신을 합치하면 서로 갈등을 일으킨다는 이론적인 학문이 있다. 이 같은 형태를 한국 종교가 따라가고 있다는 것이 종교학자, 사회학자들의 주장이다.

그래도 아직까지 우리사회는 여기에서 자유롭다. 종교적, 인종적, 민족적, 계층적 경계선이 일치하지 않는다. 우리사회의 구성원들이 자신이 속한 종교집단, 인종집단, 민족 집단, 계층집단 등에 헌신하며, 그 헌신의 방향을 잃지 않고, 나름대로 사회발전에 공헌하고 있다.

평화를 내세운 종교분쟁

종교적인 모든 분쟁은 ‘평화의 이름’으로 수행되고 있다. 그것은 중세이전에 일어난 십자군전쟁도 그랬고, 70년대 이후 중동에서 계속되고 있는 중동전쟁도 마찬가지다. 중동전쟁은 인종적 갈등과 종교적 갈등이 합치되면서, 일어난 평화를 내세운 ‘거룩한 전쟁’이었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테러 역시 ‘평화’를 내세운 종교적 테러이다. 여기에다 공격적인 선교활동은 종교간, 인종간의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다종교, 다민족 사회로 치닫고 있는 우리사회는 계층 간의 경계선이 종교의 구분선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종교분쟁이 다른 나라에 비교해서 매우 약하다. 지금까지 우리사회는 단일한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고, 인종집단을 강제할 수 있는 압력이 그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교가 정치, 경제, 문화에 개입하면서, 앞으로 종교 간의 충돌을 피하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의 목소리도 높다.

그것은 오늘 개신교의 타종교에 대한 배타적인 모습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사실 한국개신교인들은 ‘기독교 이외는 진리가 없다’며, 매우 배타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종교 간의 갈등을 줄이고, 화합과 대화를 위해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가 조직되어 운용되고 있다. KCRP는 기독교를 비롯하여 천주교, 불교, 유교, 원불교, 민족종교, 천도교 등 7대 종단이 가입하고 있다.

KCRP는 국회의원 선거를 비롯한 대통령선거 등 국가적인 행사에서, 공명선거를 다짐하는 담화문 발표 등 종교 간의 대화 창구로 활용되고 있다. KCRP는 종교 간의 갈등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 정부주도로 조직되었으며, 국가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협의를 통해 공동대처하고 있다.

하지만 보수적인 한국교회는 나라의 사정과 역사, 그리고 문화를 몰각하고, 영미의 정통적인 보수신학을 그대로 받아들여 기독교 내부의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물론, 이웃종교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 보니 한국개신교는, 이웃종교와 갈등을 빚고 있으며, 이웃종교에 대해서 매우 배타적이다. 그래서 진보적인 교회와 일부 종교지도자들이 종교 간의 대화와 화해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민족화해의 길이며, 평화의 길이라는 사실도 주지시키고 있다.

유달상 기자  yds127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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