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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직 세습, 찬성/반대 역지사지(易地思之)오수강 목사
기독교한국신문 | 승인 2013.03.20 10:01

   
▲ 오수강 목사
선교 이세기의 문턱을 넘어 세계 속의 교회로 자리 잡은 한국교회는 이제 세계 교회의 리더격으로 부상했으며, 세계 교회가 한국교회를 벤치마킹의 대상으로 삼음을 감사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일제침략과 육이오 전란으로 폐허된 나라형편과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백성들은 오직 하늘을 의지하는 방법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복음을 전파한 선교국의 선교와 원조를 아끼지 않았던 사랑에 감동해 가난한 나라 백성들을 돌본 그들이 믿는 종교인 기독교를 적극 받아드렸다.

열악한 국내 학교 환경으로 인해 선진 학문에 꿈을 가진 청년들이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유학길에 올랐으며, 공부를 위해 수 없는 고난 속에 선진국 경험과 신학을 연구한 후 귀국해 교회를 개척하고 영혼 구원하는 일에 혼신의 힘을 쏟았다. 그 결과 세계가 부러워하는 교회성장을 일구었다. 열심히 목회하는 지도자 가정에서 자란 자녀들이 어려운 환경에서도 묵묵히 기도하며 오직 생명과 영혼 구원을 위해 애쓰는 부모님들의 신앙에 힘입어 장래의 희망을 목회자인 아버지를 롤 모델로 삼아 열심히 공부하여 목회자의 뒤를 잊는 경우도 있었다.

지금 한국교회의 일부 여론은 중 대형교회의 목회자 세습 문제를 죄악시하거나 세습이 교회의 부정과 비리의 온상으로 까지 매도하는 일이 오늘 한국교계 이슈가 되었다. 과연 성공한 교회의 목회자가 자신이 목회하던 교회를 자녀들에게 후임자로 세우는 일이 성경이 규정한 계시를 범한 죄악으로 비판 받아야 할 일인가? 또한 자신의 담임목사직을 자녀들에게 승계 한 목회자는 파렴치한보다 더 악랄한 죄인인가? 그리고 십사만 명이 넘는 목회자 자녀들의 인격은 없는가?

중 대형 교회가 되기까지는 그 교회를 개척설립한 지도자의 역량과 성도들의 헌신이 있었다. 그리고 개 교회는 개별 성장 역사가 다 따로 있다. 오랜 기간 담임 목사로 재직하던 개척설립자가 정년이 되어 은퇴 할 때에 일어나는 문제는 바로 후임 담임자와의 갈등을 들 수 있다. 강남의 어떤 대형교회는 은퇴자와 후임자의 알력으로 수 년 동안 고소고발 사태가 발발해 교회가 세상에 혐오감을 주었고, 교회 성장은 멈추고 오히려 교회를 떠나는 젊은이들에게 무어라고 설명 할 수 없는 추한 모습을 보였다. 문제 발생으로 교회의 혼란 보다는 세습을 선택한지도 모른다. 물론 담임자의 자녀들이라고 자격이 불비한 자를 무조건 승계는 무리다. 대형교회 담임자가 교인들의 반대에도 아들을 세운 후 후회하는 경우도 얼마 전에 있었다. 그렇지만 개별 교회가 사정에 의해 담임자의 후임을 뽑는 일은 먼저 그 교회의 주권자들의 결정을 존중해야한다. 타 교인들이나 외부 단체에서 개별 교회의 결정에 대해 간섭하는 것은 성도들의 주권을 침해 훼손하는 행위로 볼 수도 있다.

지금 목사직의 원조(?)격인 구약의 제사장은 어떻게 임직되었으며, 그 직위가 어떻게 유지하였는가를 참고하면, 제사장 직의 반열은 하나님이 지정 하셨고, 제사장이 세상을 떠날 때에는 반드시 그 아들들에게 그 직임이 이어짐과 동시 제사장의 반열은 영구적으로 제사장 가문이 이어가게 했다. 정경인 구약의 근거를 담임목사 세습에 참고하는 교회도 있겠으나, 아직은 그렇지 않은 교회가 더 많다. 그런데 일부 교단에서는 여론에 편승해 약삭빠르게 세습 방지법을 제정했다. 이는 칭찬 보다는 스스로 발목에 올무 씌움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선다.

담임목사 세습을 반대하는 세력들은, 성공한 교회 담임자의 자녀들이 담임 직을 세습으로 이어받는 일에 대해, 힘 안들이고 성공한 세상의 대기업 세습처럼 해서는 안 된다고 역설한다. 그런데 교회 부채만 잔득 남긴 농어촌 교회나 미 자립 교회에는 일반 지원자가 없어 교회 유지를 위해 세습이 필요한데도 무조건 반대하면 대책이 없지 않은가? 지금 한국교회 저성장과 위기해소가 더 급한데 일부세습 문제를 한국교회 전체로 매도하지 말고 조용히 내적으로 처리하였으면 한다.

대형 중형 교회에서 담임자 직에 대한 세습 진행여부는 개 교회를 이룩한 성도들의 선택이 중요하다. 이를 부정하는 단체나 외부 반대 세력은 해당 교회와는 직접상관이 없다. 다만 반대를 주장하는 것도 민주국가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 해도 해당 교회 앞에서 세속적 시위 보다는 부당하다고 생각한 세습 방지를 위해 기도함이 먼저 아닌가? 어떤 결정을 하던 결정권을 해당 교회의 성도들에게 맡겨둠이 바람직하다는 생각 어떻게 보는가? 세습의 찬성도 반대도 하나님의 섭리에 맡겨 두며, 반대자와 찬성자가 서로 역지사지함이 어떤가? 과연 세습은 까마귀며 반대는 백로일까?

필운그리스도의교회/본지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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