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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를 옹호하는 신학, 왜 이단인가?

기사승인 2018.08.09  21: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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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성애를 옹호하는 모든 주장을 이단으로 규정할 것과 동성애를 옹호하고 홍보하고 지지하는 모든 주장들과 행동을 이단을 규제하듯이 규제할 것을 요청합니다.


- 신학적이고 인류사적으로 본 기독교와 동성애의 본질적인 관계

이 시대의 화두인 ‘가짜 뉴스 fake news’가 아니고 역사적이고 생물학적인 사실(fact)임에도 불구하고 동성애자와 기독교가 극단적으로 다른 입장을 갖고 있는 사안이 있습니다. 동성애가 생물학적으로만 볼 때 부자연스러운 감정이나 행위가 아니며 역사적으로도 언제 어디서나 늘 혐오스러운 감정이나 행위로만 인식된 것도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동성애의 문제가 기독교에 갖는 의미가 무엇이며 또 왜 이 시대에 동성애를 옹호하는 신학을 이단으로까지 규정해야 하는지를 알려면 위와 같은 동성애의 역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이에 간단히 서술합니다.

1.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동성애 문화

- 인류 최초의 서사시라는 <길가메쉬 서사시>의 길가메쉬는 평생 친구가 되는 엔키두를 만나기 전에 꿈에서 그와의 만남을 봅니다. 그 장면을 묘사하면서 길가메쉬는 말합니다:

“나는 그와 사랑에 빠졌고 여인을 애무하듯이 그를 애무했습니다. 데리고 와서 어머니 앞에 놓았더니 어머니께서 그를 짝으로 만들어 주셨습니다.”(제1토판, 256~258행) 이에 그의 어머니가 말합니다:

“너는 그와 사랑에 빠질 것이며 여인을 애무하는 것처럼 그를 애무하게 될 것이다.”(제1토판, 273행) 반복되는 이 내용에 근거해서 학자들은 길가메쉬 이야기를 고대에 편만했던 동성애를 보여주는 최초의 기록물로 봅니다.

2. 고대 헬라의 동성애 문화

- 플라톤의 <향연 symposion>은 술잔치에 초대된 남성들이 에로스에 관해서 이야기한 내용을 담은 책입니다. 우리 말로 애인이라고 번역된 곳을 영어 번역으로 보면 대부분 boy-friend로 되어 있습니다. 당시 최고의 꽃미남이었던 알키비아데스는 자기가 소크라테스를 아무리 유혹해도 소크라테스가 자기의 성적 유혹에 넘어가지 않았다는 말도 합니다. <향연>의 사랑은 육체관계를 포함한 남자와 남자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인 것입니다. 소피스트들은 남자와 여자의 관계에서는 생명이 태어나고 남자와 남자의 성행위를 포함한 사랑의 관계에서는 고매한 인격이 태어난다고 가르칩니다. 대영박물관에는 기원전 485~480년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붉은 컵이 전시되어 있는데, 나체의 소년이 술시중을 드는 향연 곧 술잔치가 도안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기원전 5-4세기의 아테네 등에서는 10대의 미소년을 이런 시종으로 두고 성관계를 갖는 것을 자랑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3. 고대 로마의 동성애 문화

- 헬라의 동성애 문화는 로마시대로 이어집니다. 예루살렘에서 발굴되어 대영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워렌 컵 Warren Cup>이라는 은으로 된 술잔에는 머리에 월계관을 쓴 귀인이 미소년을 데리고서 항문섹스를 하는 두 장면이 컵을 돌아가며 선명하게 새겨져 있는데, 심지어 성기까지 새겨 넣었습니다.

그 장면을 음란하게 엿보는 나이 든 시종의 모습도 부조로 새겨 넣었습니다.

주후 5~15년경의 유물로 소개되어 있는데, 헬라에서와 마찬가지로 미소년을 애인으로 두고 성관계 갖는 것을 자랑으로 알았던 것입니다.

- 로마제국의 제14대 황제인 하드리아누스(AD 76~138)는 원정전쟁을 많이 한 것으로 유명한데, 50세가 되기 조금 전인 주후 123년경 터키로 원정전쟁을 가서 안티누스(Antinous)라는 그리스 미소년을 발견하여 동성애 연인으로 삼습니다.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어디를 가든지 안티누스를 데리고 다녔는데, 주후 130년경 애굽에 데리고 갔다가 안티누스가 나일강에 빠져 죽는 사고를 당합니다. 비통함을 감추지 못한 황제는 안티누스를 추모하는 기념비를 제국 곳곳에 세웠을 뿐만 아니라 안티누스의 초상을 새긴 동전도 만들어 제국에 통용시켰습니다. 헬라문화에서와 마찬가지로 로마문화에서도 동성애는 전혀 부끄럽지 않은 일이었던 것입니다.

4. 인류사적인 증언들에 대한 생물학자들의 설명과 동성애자들의 주장

- 세계적인 동물행동학자 최재천 박사 같은 분들의 연구에 의하면 동물세계의 동성애는 광범위하게 알려져 있어 그 예를 모아놓은 책이 작은 백과사전의 분량이 된다고 합니다. 동성애에 대하여 호의적인 생물학자들은 그러한 사실 관계에 빗대어 고대사회에 널리 퍼져있던 동성애를 설명하면서 동성애를 병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잘못된 것으로 보면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 동성애자들은 이런 역사적이고 생물학적인 상황들을 토대로 하여 자기들의 성적인 취향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정해 달라고 합니다.

- 그러나 결론부터 말씀 드리자면, 성경과 기독교의 입장은 같은 상황을 놓고 전혀 반대의 입장을 취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생물학적으로 동물이지만 그와 동시에 영적인 존재입니다. 욕망을 좇아 동물처럼 살 수만은 없는 것입니다.

인간이 사회적 존재인 것만을 고려하더라도 동성애자가 되었든 이성애자가 되었든 인간은 누구나 성욕을 좇아서만 살 수는 없는 것입니다.

- 성경과 기독교는 성욕을 좇는 곳에 만족과 행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과의 사귐이 있는 곳에 만족과 행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오직 성욕만을 좇아 사는 동성애적인 삶을 가증스럽다고 하시며 온 세상 사람이다 동성애를 행하여도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는 절대 동성애를 하면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오히려 동성애를 땅에서 몰아내는 일에 앞장서야만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함으로 세상에 하나님의 정의와 질서와 평화를 가져오고 생육하고 번성하는 가족을 이룰 수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적으로나 역사적으로 동성애에 관한 사안은 기독교인의 정체성과 불가 분리의 관계에 있게 됩니다.

5. 성경: 고대에 편만했던 동성애에 대한 가장 강력한 증언과 거부

- 레위기 18장과 20장은 동성애 금지명령을 담은 것으로 유명한데, 금지명령 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그 명령을 담은 두 본문의 맥락입니다. 레 18:3~4은 “너희는 너희가 거주하던 애굽 땅의 풍속을 따르지 말며 내가 너희를 인도할 가나안 땅의 풍속과 규례도 행하지 말고 너희는 내 법도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그대로 행하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고 말하는데, 그 맥락에서 근친상간(6~18), 간음(19~20), 몰렉 제사(21), 동성애(22), 수간(23)

등에 관한 금지명령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레 18:24-25에서 다시 그 의미에 대하여 분명히 말씀합니다: “내가 너희 앞에서 쫓아내는 족속들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서 더러워졌고 그 땅도 더러워졌으므로 내가 그 악으로 말미암아 벌하고 그 땅도 스스로 그 주민을 토하여 내느니라.” 요컨대, 이 말씀은 고대 애굽과 가나안에 동성애가 편만했음을 알려주고 있으며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그런 풍습을 가증스럽게 여기신다는 것과 그런 풍습을 멀리 하는 것을 당신 백성의 정체성으로 명령하고 계심도 알려 주고 있습니다.

- 레위기 20장의 금지규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동성애에 대한 금지규정은 반드시 죽어야 할 죄를 열거하는 중에 간음(10~11), 근친상간(12, 14), 수간(15~16) 등과 함께(13) 언급되고 있는데, 레 20:23은 이와 같이 주석과 같은 말씀을 전합니다: “너희는 내가 너희 앞에서 쫓아내는 족속의 풍속을 따르지 말라.

그들이 이 가증한 일을 행하므로 내가 그들을 가증히 여기노라.” 앞서 있는 레위기 18장과 마찬가지로 이 본문은 동성애가 이민족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었던 것을 알려주며 또 모든 민족이 다 동성애를 행해도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되며 그것이 정체성의 일부라고 알려줍니다.

- 신약시대에 와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롬 1:27에서 바울은 “남자들이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 듯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다.”고 적어서 동성애를 하나님의 보응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앞에서 하드리아누스 황제와 안티누스의 예를 들어 말한 것처럼 힘과 권세를 가진 이들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동성애를 행하던 사회를 향하여 바울은 이 준엄한 심판의 말을 한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동성애를 하고 높고 귀한 사람들이 하여도, 그것은 하나님의 심판인 것이니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행하면 안 된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 고전 6:9-10에서 바울은 남색하는 것 즉 동성애를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게 되는 일이라고 선언합니다.

- 딤전 1:9~10에서는 율법이 남색하는 자들을 위하여 있다고 말합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동성애를 하는 자들에게 그것이 죄인 것을 분명히 알게 하기 위하여 율법이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 요컨대, 구약시대와 마찬가지로 신약시대에도 동성애를 가증히 여기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있었던 삶의 표지였던 것이며, 또 그런 의미에서 세상과 구별되는 거룩한 정체성의 일부였던 것입니다.

6. 기독교의 전파와 지하로 숨은 동성애

- 기독교는 이처럼 세상 모든 사람이 동성애를 행하여도 하나님께서 그것을 가증스럽게 여기신다고 하며 동성애를 멀리하는 것을 하나님 백성과 자녀의 표지이며 정체성의 일부로 삼으라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보면, 동성애자들이 지하로 숨게 되고 20세기에 이르러 성소수자라고 불리게 된 것은 전적으로 기독교의 전파로 인한 결과였던 것입니다. 설명을 드리자면,

- 기독교는 313년에 콘스탄티노플 황제의 밀라노 칙령으로 로마에서 합법적인 종교로 인정이 되고 381년의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테오도시우스 황제에 의해 국교로 선포됩니다. 개인적 신앙의 체험이 있었던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391년에 모든 비기독교적인 의식을 로마에서 금지시키고 392년에는 모든 형태의 비기독교적인 이교 숭배를 불법으로 선포합니다.

-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기독교가 제일 먼저 로마에서 금지하고 몰아내었던 것이 동성애입니다. 성 어거스틴과 같은 교부는 동성애를 신과 인간 사이의 약속을 훼손하는 행위로 규정하며 동성애를 행하는 것을 악마와 손을 잡는 행위로 가르쳤고 교회의 그런 가르침에 의하여 기독교가 국교가 된 4세기 말 이후의 로마는 동성애를 범죄로 선포하고 동성애자를 사형에 처했습니다.

- 중세에 이르러 동성애에 대한 금지는 더욱 더 강화됩니다. 13세기의 토마스 아퀴나스는 자연의 법칙을 훼손하는 동성애를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라고 규정하였고 중세시대의 동성애자들은 사형을 피해 더욱 지하로 숨어듭니다.

- 대영박물관은 1730년 암스텔담에서 발행된 신문의 한 면을 소장하고 있는데 동성애자 75명의 화형 장면이 삽화로 그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천 건이 넘는 동성애자 관련 재판이 있었고 그 중 75명이 화형을 당했습니다.

- 20세기에 이르러도 영국의 예를 들어 보면 동성애는 여전히 범죄였습니다.

7. 동성애 재등장의 배경: 자본주의, 포스트모더니즘, 그리고 기독교의 쇠퇴

- 기독교의 전파와 더불어 지하로 숨었던 동성애는 20세기 중후반에 들어서 다시금 고개를 내밀고 사회의 전면에 등장합니다.

- 그 배경에는 자본주의의 발달로 인한 물질적인 부요함이 있습니다. 물질의 부요함을 이루어 욕망대로 살 수 있는 막대한 힘을 얻었는데, 동성애를 죄로 여기는 기독교로 인해서 욕망을 추구할 수 없었던 동성애자들이 자신들의 욕망을 원 없이 채우기 위해서 동성애를 변호하고 옹호하는 운동을 막대한 자본을 들여 삶의 모든 영역에서 지속적으로 펼쳐온 것입니다.

- 포스트모더니즘의 발흥은 그런 일을 돕는데 지대한 역할을 했습니다. 소외 되었던 주변적인 것의 가치와 중요성을 이야기하며 주변과 중심의 경계를 허물고 모든 사람의 의견과 감정과 가치를 존중하여야만 한다고 요청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경향성 덕분에, 그간 지하로 숨어 소수가 된 동성애자들은 밖으로 자신 있게 나올 수 있었고 호시절을 만나 자신들의 주장을 한순간에 극대화시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 결정적인 것은 이 모든 시대적인 상황 하에서 날로 쇠퇴하고 있는 기독교의 현실입니다. 인류사에서 동성애자들의 거의 유일한 장애는 기독교였었는데, 기독교가 물질의 부요함으로 인한 극대화된 맘몬주의와 21세기를 주장하고 있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발호 속에서 영적인 권위를 상실해가고 있는 것이 동성애 재등장의 가장 결정적인 요인입니다.

8. 동성애를 옹호하는 모든 신학, 왜 이단인가?

- 성경은 일관되게 동성애를 하나님께서 가증하게 여기시는 죄라고 규정하고 동성애를 삶에서 멀리하고 이 땅에서 몰아내는 것을 하나님 백성과 자녀의 정체성의 일부로 말씀합니다. 옛적 애굽과 가나안 땅에서와 같이 동성애가 규례가 되고 풍속이 된 공동체는 그 땅에서 토해지는 역사, 망하고 쫓겨나는 역사의 전철을 밟게 되리라고 말합니다.

- 그래서 역사적으로 신앙의 선조들은 동성애를 범죄로 규정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단으로 규정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성욕을 좇아서 살라고 부추기는 어둠의 영과 격렬하게 싸워온 것입니다.

- 동성애의 근본적인 문제는 사실 동성애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동성애를 죄로 여기지 않고 자기들의 성적인 욕망 추구의 권리를 인정해 달라는 영적 어둠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죄인이지만 죄 짓는 것으로 인해 내적으로 부끄러워하며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죄를 끊으려고 애쓰면서 살아가는데, 동성애자들은 성경이 사형에 처할 죄라고 하는데도 말씀을 무시하고 계속 죄를 지으면서 살겠다며 그 주장을 인정해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는 롬 1:32의 말씀을 기억하며 이 거대한 영적 어둠의 세력과 싸워야 합니다.

- 성경의 일관된 가르침, 교회의 결정과 가르침의 전통을 왜곡하고 부정하는 주장들을 이단이라고 하기에, 기독교인임을 표방하면서 교회 안에서 성경이 분명하게 사형에 처할 죄라고 말씀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는 죄라고 이야기하며 교회가 수천 년의 역사를 통하여 싸워 온 동성애를 옹호하고 홍보하고 지지하는 일은 이제 이단으로 단죄해야 합니다.

9. 단합해서 생명 걸고 싸우지 않으면 이길 수 없는 동성애와의 전쟁

- 동성애와의 싸움은 욕망대로 살라고 부추기는 영적인 어둠과의 싸움입니다. 성적인 욕망을 가로막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되었든 하나님이 되었든 그 어떤 것이든 부정하고 제거해 버리라고 명하는 영적인 어둠과의 싸움이고 거짓의 아비인 마귀와의 싸움인 것입니다.

- 유럽은 수천 년에 걸친 기독교전통을 갖고 있으며 동성애자들을 화형으로 극단적으로 다스려왔지만 21세기를 맞으며 전부 동성애의 물결에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거의 모든 나라들이 동성애를 법적으로 인정하는 것에서 나아가 동성결혼과 동성부부의 입양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허용한 상태입니다.

- 청교도들이 세운 미국도 2015년 6월 26일에 연방대법원이 동성결혼을 허용 함으로써 영토 어디에서나 동성애자들이 결혼할 수 있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 유럽이나 미국은 이렇게 무너지기까지 사실 오래 싸웠고 힘써 싸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질의 부요함으로 인해 거대하게 자란 욕망과의 싸움에 결국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 이 땅의 신학교와 교회가 유럽과 미국이 동성애와의 싸움에서 패한 원인을 분명하게 분석하지 않는다면 이 영적인 싸움에서 마찬가지로 패할 수밖에 없는데, 아마도 이대로 가면 분명 패하게 될 것입니다.

- 왜냐하면, 이 모든 싸움의 중심전장이며 최후의 보루는 신학교인 것인데, 이 땅의 거의 모든 신학교 교수님들은 이미 패배한 땅의 신학을 배워서 오신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동성애를 이해하고 옹호하려고 애쓰는 신학을 배워서 왔기에 교회가 묻고 총회가 물을 때 원칙적인 대답 즉 옛 신앙을 좇아서 교회가 원하고 총회가 원하는 대답을 하지만 실천적으로는 유럽교회가 갔던 길, 미국교회가 갔던 길을 다시 걸을 수밖에 없습니다. 신학 교수님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작금에 장로회신학교만이 아니라 이 땅의 거의 모든 신학교들에서 일어나고 있는 동성애 관련한 일들을 생각하면 이런 현실을 부인하기가 쉽지 않은 것입니다.

- 신학교부터 회개하지 않으면 절대로 이 동성애의 물결을 막을 수 없습니다.

신학교가 회개하여 동성애에 대하여 한 목소리를 내고 실천적으로 동성애를 막는 결단을 보이지 않으면 동성애의 물결에 무릎을 꿇고 어둠의 마귀에게 무릎 꿇게 되는 일은 시간문제일 것입니다.

- 총회도 마찬가지로 회개해야 합니다. 동성애는 미워하되 동성애자는 용서와 기다림의 대상으로 본다는 말을 언제 누구로부터 배웠는지 모르겠으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유럽과 미국이 다 똑같이 그 말을 하다가 동성애 물결에 무릎을 꿇게 된 것을 분명하게 알고 깨달아야 합니다. 총회가 정신을 차리고 성경 앞으로 가야 하고 총회장이 그 일에 앞장 서야 하는데, 그런 영적인 전사의 모습이 총회에 안 보이고 총회장에게 안 보입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한국교회는 곧 동성애의 물결에 무릎을 꿇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후손들은 속속 교회를 떠나 성적으로 문란한 사회에서 힘든 인생을 살게 될 것입니다.

- 동성애자들을 죽이자는 것이 아니라 신학교에서, 교회에서, 동성애적인 모든 영적인 어둠의 세력들이 발호하지 못하도록 막자는 것입니다. 교회가 이제 이 문제에 대하여 한 목소리를 내자는 것입니다. 신학교에서부터 다른 소리, 다른 말이 나오면 안 되는 것입니다. 총회가 어정쩡한 소리를 멈추지 않으면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하기에 이제 우리가 다 영적 분별력과 결단을 새롭게 하고 한 목소리를 내자는 것입니다.

- 현재 상황을 타파하고 한 목소리를 내며 한 방향으로 가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겠기에 그 방안으로 1) 동성애를 옹호하는 모든 주장을 이단으로 규정할 것과 2) 동성애를 옹호하고 홍보하고 지지하는 모든 주장들과 행동을 이단을 규제하듯이 규제할 것을 요청한 것입니다.

- 당장 이 이슈에 특별한 의지 없이 휘말렸거나 혹은 앞으로 휘말릴 수 있는 학생들을 보호하고 또 교수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장신대 총장부터 뒤로 숨지 않고 전면에 나서서 책임 있게 대처해야 하겠기에 장신대를 향해서도 구체적인 요청을 드린 것입니다.

 

신학과 윤리 포럼 – 신학자 팀 공동연구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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